도시의 마지막 인상도 사람이 결정한다

by 일월



계속 말하지만, 영국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았던 탓일까. 파리로 넘어가기 전부터 두려움이 엄습했다. 워낙 주변 사람들과 불호 후기와 악평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글래스고 공항에서부터 지레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친구에게 보이스톡이 왔고, 나의 반응과 목소리를 듣고 왜 이렇게 다운되어 있냐고 묻는다. 나라를 이동한다는 게 마치 또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여행은 설레지만 사실 두렵기도 하니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걱정이 펼쳐지기 마련이니까. 특히 친절한 영국 사람들을 경험하고 나니 사람이 제일 두려웠다.



4일간 경험한 파리는 불친절했던 빵집 직원도 한 명 있었지만, 영국 못지않게 친절한 사람도 많았다. 처음으로 갔던 케밥 집에서는 주문할 때 소스를 고민하니까 조금씩 맛볼 수 있게 도와주시고, 친근하게 프랑스어를 알려주시기도 했고, 먹는 중에 옆 테이블 오셨다가 케첩을 못 뜯는 걸 보시고 가위 가져오셔서 잘라주시고, 소스들도 더 가져다주셨다. 기차역에서도 우리가 헤매고 있는 걸 보고 먼저 다가와서 길을 알려준 직원도 있었다.



맛본 소스들과 케밥



그렇다면 왜 파리는 불친절하다는 프레임이 씌어져 있을까? 언어의 문제가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지인에게 이탈리아도 썩 친절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 나라의 언어를 모를 때 나오는 적대감이 있나 보구나(왜인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한인 민박 사장님이 카페에서 불어로 주문을 쓱쓱 하니까 엄청 친절하셨다. 역시 언어를 잘해야…



사실, 두려웠던 마음에 더해 파리의 첫인상마저 좋지 않았다. 그러나 파리 사람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만난 인연 덕분에 그 기억은 조금씩 미화가 된다. 아직 파리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고. 마크에게도 파리보다 영국이 훨씬 좋다고 말하자 파리도 파리의 매력이 있다며 다독였다. 물론 파리의 매력이 분명 있다. 개인적으로는 밤에 걷는 파리의 거리가 참 좋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파리의 낭만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하며 걷기도 하며.



파리의 거리



7년 전, 첫 유럽 여행을 동유럽 패키지로 갔을 때도 사람 덕분에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유럽 패키지는 보통 모녀 여행객이 많다는데(실제로 스페인 패키지는 그랬다) 우리의 첫 유럽 패키지에는 유독 중년 부부가 많았다. 그런데 모두 어쩜 그렇게 사이가 좋으신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모두 기본적으로 항상 손을 꼭 잡고 다니셨고, 키 차이가 큰데도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몸을 낮춰주는 남편, 스무 살 터울의 막둥이를 최근에 낳으신 부부 그리고 자기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던 인솔자까지. 또, 우리와 비슷한 또래 딸에게 줄 에코백을 선물하려고 같이 골라달라고 부탁하던 부부, 가족과 다녀온 캠핑 경험이나 유럽 여행 경험을 들려주던 분들을 보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아니라 여행 중에도 따뜻함이 전해졌다. 유럽이 처음이라서 그랬을까, 날씨와 풍경이 좋아서였을까? 아니, 여행의 기억을 오래 빛나게 하는 건 도시가 주는 느낌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힘이 더 강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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