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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quaviT Apr 11. 2016

B sides : 코임브라

유럽에서 만난 술들 이야기.01

  


  말라가에서 머무는 이틀째의 밤, 사람들 다 나가고 혼자 남은 호스텔에서 시간을 때울 궁리를 하다가 생각난 게 바로 이 짓이다. 유럽 여행기 <스. 삼. 여>를 연재하고는 있지만(예. 제가 줄인 겁니다.) 사실 거기에 등장하지 못한 술들도 그간 좀 있었다. 어쨌거나, 벌써 3주째 여행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여행기를 쓰다 보면 본의 아니게 생략되는 술들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좀 아깝기도 하고 해서,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 소개를 해보기로 했다. 여행기에 등장 못한 사진들도 좀 올려보고 말이지. 그런 만큼 평소보다는 훨씬 더 가벼운 투로 쓸 예정이니, 적응 안 되시는 분들은 살포시 뒤로 가기를...


그나마 코임브라에서 가장 예쁜 사진이 나오는 곳. 


  여행기엔 쓰지 않았지만, 사실 포르투갈에서 리스본과 포르투만 간 게 아니다. 코임브라도 갔었다. 이름이 생소하신 분도 있으실 텐데, 사실 그렇게 유명한 도시는 아니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자 명문 대학교인 코임브라 대학교가 있다는 것을 빼면, 사실 그 외엔 유명한 게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왜 갔느냐. 대학 동기 하나가 코임브라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어서였다. 오랜만에 돌도 씹어먹을 나이의 남자 둘이 만났으니 할 일이라곤 술 푸는 일밖에 더 있겠는가. 그간 쌓인 얘기를 하려면 목구멍에 기름칠 좀 해줘야 하니, 일단 술 몇 병 사서 친구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친구가 준비해둔 술은 스미르노프 보드카였고, 그 한 병으론 부족할 것 같아서 시내 바틀 샵에서 산 술이 바로 위의 저것이다. 콥케 파인 토니 포르토. 어렴풋이 눈치채셨겠지만 포트 와인인데, 우리나라에도 슬슬 들어오고 있는 듯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들렀던 가로수길의 매그넘 더 바틀 샵에서도 찾을 수 있었으니까. 투박한 디자인의 병이 나름 매력이라면 매력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나니(라기엔 얘는 여기가 홈이지만) 반가워서 덥석 한 병 구입.



코임브라는 아니지만, 포르투 테일러 와이너리의 루비 와인 숙성용 거대 오크통.

 


 셰리 와인도 피노와 올로로소로 나뉘는 것처럼, 포트 와인 역시 다양한 종류가 있다. 따지자면 많지만, 크게 나누자면 루비(Ruby)토니(Tawny)다. 브랜디나 다른 주정을 첨가해 발효를 멈춘 포도주를 숙성시키기 위해서 몇 천 리터에 달하는 커다란 오크통에 부어 넣는데, 이 상태로 통상 3년을 넘기지 않고 병입해 출하하는 게 루비. 그 루비를 좀 더 5~6백 리터 정도 되는 작은 오크통에 집어넣어서 추가적으로 숙성시키는 게 토니(Tawny). 



  당연히 루비가 숙성이 덜된 만큼 더 싸며, 큰 오크통에 있어서 산화가 적은 만큼 오크통의 풍미는 '핥은 듯'만 하고, 포도주 자체의 과실 향이나 꽃 향기 등의 가벼운 향기가 살아있게 된다.



역시 코임브라는 아니지만, 포르투 샌드맨 와이너리의 (상대적) 저용량 오크통.



   그렇다면 토니는? 작은 오크통에 담긴만큼 공기와의 접촉 면적이 넓어 활발히 산화하며 오크통에서 숙성된다. 포도 자체의 특징은 조금씩 엷어지고, 오크통의 특징이 배어들면서 세월의 무게가 묻어나오게 되는 것. 


   즉 저 콥케 토니의 토니는 그런 뜻이다. 먹고 마시느라 바빠서, 그리고 언젠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라서 잔에 따른 사진과 시간 들여서 시음을 한 기록은 없다. 다만, 뒤에 만난 샌드맨이나 테일러의 포트 와인에 비교한다면 좀 떨어지는 수준이었단 건 확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근 1년 만에 만난 우리는 술들을 다 거덜 냈고, 맛있고 없고는 따로 상관이 없었다는 게 중요하다. 술은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가운 친구와 함께라면 더 맛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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