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몽펠리에
보르도에서 여기저기에 아쉬움을 잔뜩 묻히고 도착한 몽펠리에는, 툴루즈와 비슷하게 별다른 사전 지식 없이 도착하게 된 도시였다. '꼭 가고 싶었던 도시'였던 보르도와 아비뇽 사이에 있는 적당한 크기의 도시였고, 호스트 해주겠다는 사람도 있었기에 일단 가고 본 것이었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몽펠리에에 도착한 건 해가 저물어갈 즈음의 늦은 오후.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집까지 가는 길에 얼핏 봐도, 아담한 도시라는 것 정도는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몽펠리에... 사실 그렇게 좋은 기억은 없는 도시다. 와봐서 그렇게 좋은 것도 없었고, 안 왔어도 딱히 아쉬울 건 없었을 듯한, 그런 곳. 빼어난 자연경관이나 아름다운 건물들이 사방에 널려있어서 사진기만 들이대면 작품이 나오는 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곳도 아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면 프랑스에서 여덟 번째로 큰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게 여행자에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런 데다가 카우치서핑 호스트는 다른 게스트를 더 받더니 자기들끼리만 쑥덕대기까지. 리퍼런스도 별로 안 좋게 써줬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아비뇽으로 가기 위해 미리 끊어놓은 기차표를 잃어버려서 다시 사기도 했다(이건 무조건 내 잘못이지만). 결국, 이것도 그다지. 저것도 그다지. 몽펠리에는 정말 무난하고 별 거 없는 곳이었다. 한 마디로 좋게 봐주려야 좋게 봐줄 수가 없는 그런 곳이어야 하는데... 몽펠리에를 갔던 걸 그다지 후회하지는 않고 있다. 정말로! 뭔가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은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우리네 인생의 어지간한 일들이 기억이란 옷을 입으면 조금 더 예뻐 보이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만, 몽펠리에가 줬던 그 기묘한 느낌은 여전히 특별하다.
몽펠리에에서 보낸 어느 하루 동안, 나는 느리게 걸었다. 꼭 가봐야 하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걸음은 가벼웠다. 조금 구름이 낀 화창한 날씨만큼은 나를 반겨주었고, 조금 동선이 꼬여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작은 도시였기에, 지도도 없이 그냥 걸었다. 길을 잃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고 무료한 도시에서 보낸 한나절은 어쩌면 그 덕에 특별했던 것 같다.
그냥 큰 도시만 휙휙 지나다녔다면 못 만났을 수도 있는 이 도시를 다니면서 깨닫게 된 점이 있었다. 여전히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보르도에서의 아쉬움을 어떻게 소화시켜야 하는지. 아니, 어쩌면 이후의 여행에서도 자주 마주치게 될 아쉬움을 어떻게 흘려보내야 하는지. 전번에 말했듯,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는 걸 인정하는 건 첫걸음이었다. 이 글을 쓰며 되돌아보면, 모든 여행지에서는 크든 작든, 조금씩은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힘들거나 몰라서, 별로 멋질 것 같지 않았기에, 입장료가 비싸서, 공사 중이어서., 비가 와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방문하지 못한 곳이 있었고, 가끔은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고서는 예상외로 꽤 멋진 곳이었고, 그 돈을 내면서라도 가볼만한 곳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그곳을 가보지 않기로 한 나의 다짐은 고스란히 아쉬움이 되어서 여기저기 쌓이게 된다.
하지만, 한 치의 아쉬움도 남지 않는 여행은 없을 것이다. 툴루즈에서도 미련 없이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카우치서핑 호스트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걸 그랬나, 혹은 툴루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아쉬움들은, 어쩌면 이유일 것이다. 언젠가는 그 아쉬움을 찾아서 다시 이 곳을 방문하겠노라고 다짐하게 만드는 이유. 그리고 그때는 또 다른 아쉬움을 남기고 오게 만드는 이유. 모든 여행은 저마다의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을 여행을 하고 싶어 하지만, 아쉬움이 남아도 기쁠 여행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몽펠리에에서 겪었던 자질구레한 일들도 언젠가는 내가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나를 기억 속에서 반겨줄 것이다.
내 여행은 그렇다. 아쉬움을 쌓아가는 과정이고, 또 그만큼 깨달음을 쌓아가는 길이다.
나는 그 길을 느리게 걸어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