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리옹, 본
아비뇽을 떠나는 걸음이 영 개운찮았다. 리옹에서는 카우치서핑을 구하지 못한 탓이다. 리옹은 파리, 마르세유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인만큼 호스트가 많긴 했지만, 하나같이 '미안. 그땐 안돼'라며 거절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큰 도시에서는 카우치서핑을 하기가 쉽지 않다. 호스트는 많지만, 그만큼 방문객도 많은 바람에 언제나 재워줄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고, 리퀘스트도 많이 받다 보니 굉장히 깐깐하다. 그런 만큼 차라리 큰 도시에서는 호스텔에서 자는 게 이득이다. 큰 도시엔 호스텔도 많으니만큼 싸고 좋은 호스텔을 알아보는 게 더 편하기 때문. 하지만 리옹은 왜! 도대체 왜인지는 몰라도 호스텔조차도 없었다. 그나마 하나가 있긴 했는데, 딱 하루밖에 잘 수 없었다. 다음날부터는 예약이 꽉 차 있다나.
그런 고로, 리옹은 하루 안에 다 둘러보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으로 일찍 도착한 탓에, 시간은 꽤 많이 남아있었다. 급하게 여행하는 건 내 취향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머무르자니 눈덩이처럼 불어날 숙박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직 여행은 한참이나 남아있었던 것이다. 리옹도 관광으로 그렇게 유명한 도시는 아니었기에, 하루 안에 둘러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아 그러기로 했다. 호스텔 역시 1박 25유로 정도로, 스페인에서 묵었던 호스텔들의 평균 가격을 생각해보면 비싼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시설은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리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강이다. 리옹의 중심부는 론 강을 두 갈래로 나누고 있는데, 왼쪽으로 흐르는 줄기는 손(Saône) 강이 되고, 오른쪽으로 흐르는 줄기는 그대로 론 강이다. 양 옆으로 큼지막한 강 두 개를 끼고 있는 만큼, 경치는 아름다웠다. 날씨도 쨍쨍한 덕에 '디스 이즈 유럽!'같은 느낌이었달까(물까지 깨끗했으면 금상첨화였을텐데). 숙소는 론 강 오른쪽에 있었기에, 손 강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건너오는 식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첫 목적지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
너무 커서 한 장에 다 담기지도 않는 노트르담 성당을 보려면 상당히 발품을 들여야 한다. 언덕 위에 있으므로 근성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면... 대충 삼십 분 정도가 걸린다. 언덕길도 조금은 가파른 편이므로, 최대한 편한 옷 입고 편한 신발 신고 오르기를 권한다. 어쨌든 노트르담 성당은 순백으로 단장한 외관도 아름답지만, 언덕 위라는 위치 덕에 리옹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메리트.
프랑스 제3의 도시답게 상당히 규모가 컸고,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의 이미지와는 달리 고층빌딩이나 아파트가 드물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와 프랑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르니만큼, 우리나라의 풍경이 그르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할 때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저 많고 많은 건물 중에 호스텔은 기껏해야 한두채 정도밖에 없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고 말이다.. 프랑스엔 왜 그리 호스텔이 드문 것인지는,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노트르담 성당을 보고 언덕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로마인 극장이 남아있다. 로마 제국이 '갈리아'라고 불리던 북이탈리아-프랑스 일대를 정복한 것이 기원전 51년 즈음이니, 이 극장 역시 거진 2000년 정도를 이 자리에서 보낸 셈인데 그런 것 치고는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오락거리가 마땅치 않았을 그 옛날의 로마인들이 무대 위의 배우들이 펼치는 연극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봤을 생각을, 그리고 지금에 와서도 연극은 여전히 살아남아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참 묘해졌다. 항상 수많은 것들이 달라지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도 항상 있다는 것. 먼 미래까지 전해질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근처에 마로니에 거리가 있다기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마음 울적한 날에~ 거리를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라는 노래를 기억하시는지.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다. 사실 마로니에는 나무 이름으로, 가로수로 흔히 쓰여서 우리나라에도 대학로에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하지만 이 마로니에 거리는 왠지 걸으면 저 '칵테일 사랑'이 귀에 은은할 것만 같아서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가로수가 늘어선 길 양 옆으로 세련된 카페나 바가 늘어서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는 가로수는 없었고 그냥 식당가였다. 조금 깼던 점.
리옹은 딱 하루만 있어서인지,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던 도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쉬움이 별로 남지 않았다고나 할까. 물론 리옹 일대에는 '보졸레 누보'로 유명한 보졸레 지역, 코트 드 론 등의 와인 산지가 자리하고 있지만, 그렇게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기에 굳이 찾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 리옹을 벗어나면 '부르고뉴'의 심장부인 본과 디종 일대, 그러니까 코트 드 본과 코트 드 뉘 지역에 발을 들이게 된다. 정상을 목전에 둔 등산가의 심정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 고양감과 기대감 때문에 리옹은 좀 빛이 바랬다. 그렇게 나는 리옹에서의 짧은 하루처럼 본과 디종에서도 과하게 맑은 날들이 이어지리라고 믿으며 다음날을 맞았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이번 여행을 넘어 인생 내내 후회를 할 것만 같은 역대급의 호구딜을 하게 된다. 본에 도착하자마자 쏟아져내리는 비. 그 비를 뚫으며 미리 알아놨던 그나마 싼 호텔로 걸어가는데, 지나치게 외진 곳에 있어서인지 인도는 끊기고, 이런 빗길에 차도로 걸어가다가 숟가락을 놓게 되는 경우가 생길 것만 같았다. 다시 본 시내로 돌아가기에도, 더 가기에도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있었기에, 근처에 보이는 호텔로 들어가게 되었다. 1박에 무려 75유로를 받는다는 그 호텔에서 카드를 긁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고 속이 쓰린다. 위의 사진이 바로 그 호텔이다. 저 호텔에서 다시 묵느니 차라리 오버룩 호텔에서 잭 아저씨 도끼를 갈아주겠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는 것 정도.
이튿날, 심지어 조식까지 불포함이었던 그 호텔에서 터덜터덜 걸어나와, 본 시내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였고 언제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짐을 맡겨놓을 곳도 없는 상황. 캐리어를 끌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다니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본이란 도시에 오만정이 다 떨어진 상태였기에, 그냥 디종으로 바로 떠나버리려고 했었지만 그래도 본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바로 떠나는 것도 영 개운치 않았다. 결국 관광안내소에 문의 결과, 시내에 와인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관람 후 디종으로 가기로 결정.
하지만 본은 이번에도 나를 주저앉혔는데, 와인박물관은 점심시간 동안 관람객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나마 박물관의 별관은 열려있었기에, 비도 피할 겸 거기서 기다리기로 했다. 별관에는 과거에 쓰던 포도 착즙기들을 전시해두고 있었다. 본래 포도주를 만들 때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착즙 방식은 사람의 발이다. 그래서 최근 대형 할인마트 와인 코너에 가면 볼 수 있는 싸고 좋은 와인 브랜드 중 하나인 베어풋(Barefoot) 역시 포도를 으깨는 맨발을 의미한다. 지금도 생산규모가 크지 않은 영세 와이너리들은 발로 포도를 으깨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본이나 디종처럼 몇백 년 전부터 와인 생산규모가 커진 도시에서는 이런 대형 착즙기를 사용하는 게 당연했던 것.
와인 박물관이라고는 해도 사실 전시품목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사실 본 자체도 애초에 규모가 큰 도시는 아니니만큼 이런 곳에도 투자를 많이 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달랠 정도는 되었다. 혹시나 마지막에 와인 시음 같은 건 있으려나, 싶었지만 없었다. 하긴, 있었다면 입장료가 더 비쌌겠지. 그렇게, 나는 와인박물관까지 관람을 마치고는 터덜터덜 본 역으로 걸어갔다. 어이없을 정도로 비싼 호텔료를 뜯기고, 가방 속에는 비에 젖은 옷들이 비닐봉지에 담겨 세탁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일어나서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지쳐있었다. 어쩌면 이때의 나는 '숙박비라는 괴물에게서 헐레벌떡 도망치고 있는 가난한 여행자 1' 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난 이제 디종으로, 부르고뉴의 심장으로 가기 때문이었다. 그곳이 보여줄 포도밭들이 이미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