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그 곳,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
브뤼셀에서의 일정을 뒤로 하고, 늘 그랬듯 기차를 타서 안트베르펜에 도착했다. 안트베르펜은 브뤼셀과 브뤼헤에 비하면 많이 알려져있는 도시는 아니다. 축구팬이셨던 분이라면 우리나라의 설기현 선수가 몸을 담았던 '로열 앤트워프 FC'를 기억하실 수도 있겠는데, 그 앤트워프가 바로 이 안트베르펜이다. 또, 우리에게 보다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는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네로와 파트라슈가 우유 배달을 하던 동화 '플랜더스의 개'가 바로 이 안트베르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실 그렇게 유명한 도시가 아님에도 이 곳까지 온 이유의 큰 지분을 바로 '플랜더스의 개'가 차지했다.
역에 도착한 후 호스텔로 걸어가노라니 멋지구리한 기찻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 길을 한참이나 걸으려니 지루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맞은편은 그냥 별 특징 없는 사각형 빌딩 뿐이었던 것이다. 안트베르펜이라는 도시의 매력에 슬슬 의문부호가 들기 시작하던 찰나, 마침내 호스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 수 있었다.
호스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꽤 번화가가 있었다. 이런 저런 상점 외에도 명품 브랜드 상점이 즐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안트베르펜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패션 학교인 '왕립 미술 학교'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 당시는 그걸 몰랐기에, 수도인 브뤼셀보다도 명품 상점이 많아 의아했던 게 생각난다.
또 의아한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들렀던 유럽의 어떤 도시보다도 유대인이 많았다는 것. 당시만 해도 새까만 양복에 중절모나 넓은 원기둥형 털모자를 쓰고, 구레나룻을 길게 길러서 땋아내린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보여서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대인들의 전통 복식이라는데, 왜 하필이면 이 곳에 유대인들이 그토록 많이 정착했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르는 일.
조금 더 걸어보면 마침내 안트베르펜의 랜드마크이자 '플랜더스의 개' 팬들이라면 꼭 한 번 보기를 바라 마지않는 '성모성당'이 보인다. 시계가 달려있는 첨탑의 설계가 남달라, 유럽에 즐비한 성당 중에서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이 성당의 유명세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바로 그 앞에 서있다. 루벤스의 동상이다. 그는 독일 출신이지만 14살부터 안트베르펜에서 미술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머지 않아 유럽 전역에 큰 명성을 떨치게 된다. 나중엔 그의 작품이 인기가 하도 많아 루벤스는 대충 윤곽만 잡고 문하생들이 다 완성시키는 경우도 있었다니, 한국의 한 만화작가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무튼, 이 성모 성당은 루벤스의 그림 4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리스도'는 '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인 네로가 마지막에 보면서 죽었던 그 그림으로 유명하다. 아무래도 아까부터 계속 '플랜더스의 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 작품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재수를 하던 시절, 세계지리 선생이 '플랜더스의 개'는 '쌩 구X'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아무리 겨울이라고는 해도 성당 내부인데다가 우유 수레도 끌고 다니는 털북숭이 대형견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자는데 네로가 얼어죽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트베르펜은 겨울에도 평균온도가 영하로 떨어지기는 커녕 10도 위를 유지하는 매우 온난한 곳이다. 실제로는 굶어서 죽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의 동심파괴를 당한 까닭에 안트베르펜에 가서 실체를 꼭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들렀던 도시들 중, 가장 구구절절한 방문 목적을 가진 도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밖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큰 성당이다. 하지만 웅장하다기보다는 왠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더 든다. 유럽의 성당에 있게 마련인, 어딘가 고압적인 성상들보다 회화가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만났다.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리스도'다. 상기한대로 이 성모성당에는 이 그림을 포함해 '십자가에 올려지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부활', '성모승천' 등 루벤스의 그림이 총 4점 걸려있는데, 개중에 아무래도 가장 큰 응어리를 남기는 것은 바로 이 그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부활'과 '성모승천'은 아무래도 경사이기 때문이다.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와닿는 법 아니겠는가. 과연 네로는 어떤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을지 궁금해진다.
관람을 마치고 나온 후, 아직도 날이 밝으니만큼 주위를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현대적인 건물이 대부분인 도시 외곽과는 달리, 중심부 쪽으로 오니 전통적인 형태의 건물이 많이 남아있었고 구시가지도 여러 갈래로 뻗어 있었다. 성모성당밖에 없는 곳인 줄로만 알았는데, 안트베르펜은 꽤 큰 도시였던 것이다. 실제로 브뤼셀 다음으로는 아무래도 브뤼헤를 많이 알고 있겠지만, 벨기에 제 2의 도시는 안트베르펜이라고 한다.
그 이유인즉슨, 안트베르펜은 영국해협으로 흘러나가는 에스꼬 강을 끼고 있는 데다가, 브뤼셀과 브뤼헤로부터도 가까운 편이어서 물류 및 항만이 일찍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강변으로 나가보면, 과거의 부를 반영하는 다양한 건물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시에, 여전히 그 가치를 간직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다양한 하역 시설이 여전히 쓰이고 있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니, 우리나라의 이름이 보였다. 잘 모르고 있었는데, 벨기에 역시 대한민국 측에서 6.25 전쟁에 참전했던 국가였다. 전쟁 발발 후, 벨기에는 간부와 사병을 모집한 뒤 룩셈부르크와 함께 카미나(Kamina) 호를 타고 안트베르펜에서 출발해 1951년 1월 31일 부산항에 도착한 뒤 다수의 전투에 참전하였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우리 나라와의 연결고리를 찾게 되어 기분이 묘했고, 또 동시에 만리타향까지 와서 우리를 도와줄 생각을 한 벨기에의 참전 용사들에 대한 고마움이 솟구쳤다.
아침 일찍부터 기차를 타고 와서 짐만 푼 뒤 관광을 시작했던만큼, 슬슬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때를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근처에 보이는 가게에서 맥주나 적당히 사서 숙소에서 홀짝인 뒤, 몇 시간 자고 일어나 야경을 보러 나가는 것이다. 특히 벨기에같은 맥덕후들의 성지에서는 더더욱 현명한 방법이다. 벨지언 에일들은 조금 달다구리한 느낌이 있어서 내가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곳에 와서 안 마시면 섭섭하지 않겠는가? 저 둘 이외에도 벨기에 맥주인 Jupiler, MAES, Debowe 등등을 마시고,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해가 져 있었다.
안트베르펜은 참 알 수 없는 도시였다. 왠지 유대인들이 많았고, 왠지 패션으로 유명한 도시였으며, 알고 보니 플랜더스의 개는 벨기에에선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고, 알고 보니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는 도시였다. 그런 생각들을 발자국마다 남기며 걷다 보니, 어느새 낮동안 한참을 돌아다녔던 구시가지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여행지에서 맞는 밤은 언제나 특별하다. 땅거미가 질 무렵부터, 도시의 가로등이 주변의 어둠을 힘겹게 몰아내는 한밤중이 되기까지 시시각각이 아름답다. 특히 불야성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을 것처럼 어두워지는 유럽의 도시들에서는 더더욱 그렇고, 마침내 한 나라를 떠나기 전날 밤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워낙 계획 없이 왔던 여행이었던만큼, 벨기에를 꼭 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브뤼셀, 브뤼헤 그리고 안트베르펜까지. 나름 알차게 여행했던 벨기에에서 맞는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파리. 그리고, 그 다음은 마침내 내가 염원했던 영국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