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취미이자 특기가 된 이유

by 한사랑

신경성 위염이 있는 엄마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마음 어지러운 일이 있는 날이면 여지없이 배가 아프다 했다. 그날도 무언가 속 시끄러운 일이 있었는지 엄마는 핸드폰 너머 나에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저 정성껏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이건만. 이제 나도 나름대로 인생 좀 살아봤다고 자꾸만 참견하고 판단하게 된다. 어쭙잖은 조언으로 잘난 척을 하려다 그 날만큼은 그만두었다. 얼마 전 엄마가 나에게 말했던 유일한 소원이 떠올라서다.


'갑자기 무언가 결정해야 할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는 것.'


엄마는 혼자 골머리를 앓는 일이 두렵다고 했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의논할 남편이 없다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아냐며 고개를 저으셨다. 그래도 그렇지. 남은 인생 딱 한 가지 소원이라면서, 육십이 넘은 중년에게 이토록 소박하고 현실적인 소원이라니.


"역시 우리 엄마는 걱정이 취미이자 특기지!"


걱정이 많던 엄마에게 우리 남매가 장난치듯 했던 말이다. 마음이 어수선한 엄마에게 잠시나마 웃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말. 그만큼 엄마는 걱정이 많고 근심이 많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근심은 손님처럼 왔다가 재빨리 주인이 되곤 한다. 얼른 그것을 떨쳐버리지 않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엄마가 그랬다. 집안에 대소사가 생기면 엄마는 도무지 다른 일을 손에 잡지 못했다. 그것이 마무리되거나 안심될 때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했다.


엄마 말이 맞다. 마음의 번민을 나눠 가질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가족의 모든 결정이 오롯이 엄마의 몫이어서 그렇다. 엄마는 너무 젊은 날에 남편을 잃은 것 같다. 삼십대면 남편과 아내가 함께 머리를 맞대도 부족한 연륜인데, 그 나이에 어린 두 남매만 남기고 혼자가 되었으니. 그것이, 걱정이 엄마의 취미이자 특기가 되어버린 까닭이다.


언젠가 엄마가 신세한탄을 하다 딸 입장에서 듣기에는 다소 신박한 이야기를 했다.


"느그 아빠랑 결혼하기 전에 다니던 직장에 엄마 좋아하던 남직원이 한 명 있었시야. 직급도 높고 일도 잘했제. 엄마가 쪼까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제, 그때 그 사람이랑 결혼했으믄 시방 사는 모양이 바뀌었을 텐디 그래야."


뭐,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내 딴에는 엄마의 힘들었던 인생이 짠하게 느껴져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그랬으면 오빠랑 나를 만날 수가 없었잖아."

"오메, 그때는 또 다른 예쁜 아이들이 생겼겄지."

"... 어?"


엄마의 현실은 절박했던 거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마음을 붙잡아 둘 필요가 없을 만큼, 살아온 현실이 팍팍했던 거다. 당황은 했지만 서운하지는 않았다. 이미 생겨버린 나를 버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영 틀린 말도 아니다. 사별 후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혼자 우리 남매를 키웠던 엄마의 가슴속엔 별의별 이야기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힘겨운 싸움 같았을 그 고단한 인생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는 엄마에게 더 이상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런 인생이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엄마도 인생이 그리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인생의 유일한 '소원'이라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루어질 수 있는 것만 꿈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하지 않나. 어느덧 내 인생에도 예기치 못한 선택의 순간들이 찾아오고 있다. 건강, 인간관계, 자녀, 경제적인 문제.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점점 그 결정이 어려워진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또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녀와 우리 가족의 문제일수록, 그 결정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하지만 내 나이는 고작 서른넷. 아직은 너무 어리고 미숙하다. 마흔이 넘으면 엄마가 마음껏 의지할 수 있는 딸이 될 수 있을까? 쉰이 넘으면 그럴 수 있을까? 엄마를 생각하면 나이 먹는 것도 싫지만은 않다. 무럭무럭 늙어가자. 나이만큼 포갬 포갬 쌓아 올린 나의 연륜으로 엄마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도록. 엄마에게 갑자기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마음 놓고 나에게 기댈 수 있도록.



*커버 이미지 출처: evidentlycochra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