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하면 손녀들이 말로 온 집안을 헤집어놓는다. 침대를 보여달라, 화장대를 보여달라, 옷장을 열어봐라.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다. 얼마 전엔 하다 하다 냉장고를 보여달라 했다. 그냥 대충 보여주셔도 될 걸, 손녀들에게 맞춰주시느라 아예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셨다.
"할머니, 감 젤리(말린 감) 있어요?"
"미역은요?"
"그 쩝쩝 씹는 오징어(진미채)는요?"
"김도 있어요?"
그동안 할머니가 캐나다로 보내주셨던 식재료들을 하나하나 읊어대는 손녀들. 그러고 보니 7년 동안 참 많이도 받아먹었다. 남편도 없는데 하나 있는 딸마저 외국에 있으니 무슨 소용이냐고 불평하시면서도 딸 가족 먹을 것은 정성스럽게도 챙기셨다. 부모는 자식 못 먹는 꼴은 볼 수가 없나 보다.
냉장고 살림 다 꺼내겠다고 만류하다가 문득 혼자 사는 엄마의 냉장고가 나도 궁금해졌다. 밥은 잘해서 드시는지 아이들 등 너머로 휴대폰 화면을 빠끔히 들여다보다 물었다.
"혼자 사는데 뭐 좀 잘해서 먹어?"
"그라제! 맨날 뭐를 만나게(맛있게) 해서 먹을까 고민하는거시 일이여, 일!"
오빠와 내가 독립하고 엄마 혼자 살게 된 지 벌써 15년이다. 우리 남매가 엄마 집에 갈 때마다 엄마의 부엌에는 생기가 돌았다. 엄마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너희들이 오는 김에 엄마도 간만에 '가지게( 가지가지 차려놓고)' 먹는다 했다. 독거노인이 따로 없다며 엄마가 가끔씩 던지는 농담이 해외에 오래 살면 살수록 재미있지가 않다. 삼시세끼 당신 손으로 만들어 혼자 먹는 끼니가 늘 걱정이다. 혼자 먹는 밥은 맛도 없을 텐데. 엄마의 식탁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속상하다. 엄마의 씩씩한 대답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의 모든 순간에는 늘 엄마의 음식이 있었다.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잊히려야 잊힐 수가 없는 엄마의 음식. 아주 어릴 적 주말이면 구워주시던 풀빵, 고기를 꼭 챙겨주셨던 학창 시절 아침밥, 우리 남매가 좋아한다고 명절마다 유일하게 부치셨던 육전, 생일마다 튀겨주시던 새우튀김, 입 짧은 딸내미도 밥 한 그릇 뚝딱이던 게장. 엄마의 식탁은 늘 자식들을 향해 있었다.
"갑자기 웬 육개장이야?"
"아따, 인자 느그 오빠도 스무 살이 넘었시야. 인자 이런 거 좋아할 때 됐제."
대학생이 되어 서울 갔던 오빠가 내려오는 날, 엄마가 육개장을 끓이겠다고 했다. 전화만 하면 늘 아들의 끼니가 걱정인 엄마에게, 오빠가 서울 국밥이 칼칼하니 맛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나 보다. 엄마는 '이제 네가 다 커서 어른 입맛이 되나 보다'며 신통해하셨다. 어느새 어른이 된 아들을 생각하며 고기와 제철 나물을 듬뿍 넣고 얼큰하고 든든하게 끓인 육개장. 그게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온 첫 육개장이었다.
서른을 훌쩍 넘긴 자식들을 서울로, 캐나다로 보내시고 이제는 혼자 무슨 재미로 요리를 해서 드실는지 마음이 편치 않다. 아빠라도 살아계셨다면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웠을 거다. 두 분이 좋아하는 음식 차려두고 오손도손 사이좋게 드실 수 있을 테니까.
캐나다의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니 온 가족이 좋아하는 소꼬리 곰탕이 생각났다. 나라고 우리 엄마와 다르지 않다. 내 식구 입에 맛있게 들어가면 그게 제일 배부르고 행복이다. 망설임 없이 꼬리뼈를 집어 쇼핑카트에 넣었다. 힘들어도 한 솥 끓여두면 우리 둘째가 제일 좋아하는 떡국도 끓여먹고, 부들부들한 고기를 발라 넣으면 첫째 딸도 잘 먹을 거다. 거기에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파김치를 만들어 뜨끈하게 올려 먹을 생각에 마음이 분주해졌다. 깨끗하게 다듬은 파에 엄마가 보내 준 한국산 멸치액젓과 고춧가루를 아낌없이 털어 넣었다. 슥슥 문질러 때깔을 살리고 반나절 숨이 죽은 파김치를 저녁 식탁에 올렸다.
지난 7년 동안 해외에 산다고 온갖 한국산 식재료를 받기만 했지 보낸 적이 없다. 오늘은 우리 집 식탁을 통째로 한국으로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혼자 사는 우리 엄마의 작은 식탁, 그 외로운 숟가락 위에 알싸하게 맛이 밴 파김치를 얹어, 막내딸이 오래도록 끓인 진한 꼬리곰탕 한 숟갈 떠드리고 싶다.
*커버 이미지 출처: dreamti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