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지 말아주세요.

프롤로그

by 일라

나는 서른다섯이 되어서야 알았다. 내가 30년 동안 같은꿈을 꾸어왔다는 사실보다 그 꿈이 단순한 악몽이 아니었다는 것을. 난 누구나 다 똑같은 꿈을 꾸고, 하나의 꿈을 반복해서 꾸는 줄 알았다. 이 꿈이 사실 평생의 내 트라우마임을 몰랐다. 지금에서야 사람들은 늘 다른 꿈을 꾸고 좋은 꿈, 나쁜 꿈. 이 둘을 번갈아 가며 꾼다는 것을 알았다. 국민학교 1학년, 처음 시작되어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늘 한결같은 이야기. 이 꿈의 시작은 어느 커다란 공간에 내가 떨어지며 흘러간다. 한없이 넓은 평지의 사막 같은 곳이 아니라, 여러 층이 레이어 된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하얗고 커다란 건물이다. 어느 날엔 백화점, 어느 날엔 오래된 영국 공작의 궁궐이다. 그리고 그날은 콜로세움이었다. 중앙은 광장처럼 트여있지만 겉은 꽤 오래된 것 같은 외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벽을 따라 끝없는 층이 계단식으로 휘감겨 올라가고, 계단을 한층 올라갈 때마다 복도가 펼쳐지며 무수히 많은 방이 나타난다.


그렇게 나는 불특정 공간에 떨어진다. 마치 게임 퀘스트가 주어진 것처럼, 하염없이 달린다. 똑깍똑깍 주어진 시간 내 도망치며 쫓긴다. 때때로 불특정 사람들이 그 공간에 지나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쫓기는 것에 그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고 도와주지도 않는다. 사실 도움을 청할 생각을 못한다에 더 가깝다. 아무도 믿지 못했다. 나는 나 자신만을 믿었다. 얼굴도 보지 못한 검은 안개와 같은 이에게 쫓기는 채로 끊임없이 뛰고, 달리고 또 달린다. 하필 그곳의 나는 달리기를 못하는 캐릭터다. 이건 현실과 또 동일하다. 촉박한 내 마음과는 달리 한없이 무거운 두 다리로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올라간다. 그리고 하나의 특정한 문을 찾는다. 몇 층 몇 호는 주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내 두 눈과 감으로만 알 수 있다. 전체 층을 올랐다가 뛰어 내려갔다가 끊임없이 복도를 달리고 헤매는 것의 연속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발견한다.


“아, 이문이다…”


마지막 힘을 다해 복도를 달려 그 문을 열고 닫는다. 피하는 그 상대방은 복도의 제일 끝에 다가가고 있고, 내가 닫는 그 문은 낡고 낡아 부서지기 직전이다. 문의 형태는 조금씩 달라진다. 어느 날엔 100년은 족히 넘은 듯한, 곳곳에 나뭇결이 뜯겨나간 채로 겨우 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어느 날엔 조금 더 문이 단단하고, 두껍고, 강한 나뭇결이다. 문 사이사이로 구멍이 뚫려있고, 잠금걸쇠는 낡고 녹슨 쇠 두 개. 하나는 톡 하고 잠그는 회색 문고리, 다른 하나는 체인을 걸어 잠그는 형태다. 그 둘을 단단하게 잠그고 문을 잡은 채로, 이 문이 열리지 않게 도와줄 물건이 있는지를 필사적으로 찾는다. 거미줄이 쳐진 작은 침대가 왼쪽에 있고, 한 번도 열지 못한 것 같은 작은 창문은 뿌연 먼지인지 입김인지로 가득 차 있다. 그 안으로 작은 햇빛이 들어오지만, 그 햇빛은 이 방의 극히 일부분이다. 방의 오른쪽엔 때때로 의자와 책이 있다. 하지만 문을 막는 것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문고리를 잡고 둘러보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 이 공간에 떨어졌을 때부터 피해야 했던 그 누군가가 문 앞에 도착한다.


그 칠흑같이 어두운 존재가 낡은 문 틈 사이로 문을 열려고 하며 나를 죽이려 달려든다. 그 존재는 무기를 들고 있을 때도 있고, 아예 없을 때도 있다. 나는 늘 그에게 쫓긴다. 하지만 도망친 적은 없다.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같다. 문이 열리지 않게 버티는 것. 나는 7살 어린 손으로 필사적으로 문고리를 붙든 채로 문이 열리지 않기를 기도하며 안간힘을 다 쓴다. 문고리는 작은 내 손만큼이나 하찮다. 난 늘 이 문고리가 참 맘에 들지 않았다. 그 곳곳에 뜯겨나간 채로 형태만 유지되고 있는 그 문은 결국 부서지고 문고리는 정말 약하디 약해서 이것만큼만 더 강했으면 하는 소원을 빈다.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보다도. 그 감정이 강하다. 나는 버틴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버틴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것을, 더 이상 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