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째 날의 문] 대학교수, 처음으로 무너지다.
문을 열고 돌아온 집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조용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날은 처음으로, 문이 나를 막고 있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고 해서
곧바로 자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생각이 멈추면, 흔들리지 않는다.
엄마는 부산스럽게 짐을 챙기고 있었다.
가방을 세 번이나 다시 열었다 닫았다.
이미 챙긴 물건을 다시 꺼내 접었다.
”병원에 가볼 수 있겠어? 한동안 집에 못 올 것 같은데. “
“나 시험기간이야, 엄마.”
그날 엄마도 병원 짐을 챙겨 떠났다.
그 첫날을 잊지 못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문을 열어두고 공부했다.
그날 내가 먼저 알아차린 것은
병이 아니라, 비어 있는 집이었다.
방 정중앙에 정사각형의 네모난 책상이 있다.
책상의 위치는 중요했다. 정중앙이어야만 했다.
내 세상에서만큼은 내가 중심이어야 했으니까.
위치가 흐트러지면, 견딜 수 없었다.
세상의 정면에는 서양 전집책 시리즈 80권, 해리포터, 그리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있다. 내가 가장 의지하고 도피했던, 수십 번 반복하고 어루만지던 종이책.
나의 왼쪽은 꽤 큰 유리로 된 창문이 있다. 창문을 열면, 내 가슴까지 오는 녹이 슨 난간이 있다. 그 난간과 창문 사이로 비스듬하게 비추는 햇빛을 따라가다 보면, 더 오래된 낡은 피아노가 보인다. 일곱 살 기집아이일때부터 나와 함께한 피아노. 베토벤과 쇼팽 즉흥 환상곡을 좋아했다.
쇼팽의 곡을 칠 때면, 나는 한 번도 가지 못한 세계를 거니는 듯했다. 흐르는 강물을 손가락으로 튕겨내면, 물의 여신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고, 반짝이는 윤슬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오래 머물 수 있는 세계가 필요했다.
그의 대척점에는 베토벤이 있었다.
쇼팽이 잠시 숨을 돌리는 세계였다면
베토벤은 내가 끝내 버텨야 하는 세계였다.
베토벤 전기를 읽다, 유독 한 장면이 남았다.
베토벤은 어린 시절
아버지 요한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그 가냘픈 어린아이는 늘 건반 앞에 서 있었고,
거의 대부분 울고 있었다.
음악은 그의 선택이 아니라, 유일하게 허락된 출구였다.
그의 곡은 쇼팽보다 처음 접근하는 벽이 높았다.
악보를 따라 엉거주춤 건반을 누르다 보면, 어느 순간 겨우 길을 찾는 순간이 온다. 한 시간 일지 두 시간 일지,
어쩌면 다섯 시간 일지 모른다. 다만 그 순간이 오면, 그의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어두운 동굴에 빨려 들어갔다. 그곳은 매우 오래된 깊은 지하였다.
끝없는 지하 계단을 통해 빙글빙글 걸어 내려가다 보면
손에 들고 있는 내 작은 등불은, 희미해져가는 불빛에, 한 마리의 반딧불처럼 연약하게 흔들렸다.
곧 끝이 보일 거라 생각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굴을 파고 내려와서, 더 이상의 밑이 없다고 느낀 순간.
깨닫게 된다.
이곳이 바닥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한 가지 깨닫는 분명한 것이 있다
나는 여기서 버티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음악은, 위로가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질서였다.
나는 감정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구조를 찾는 사람이 되었다.
구조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오래 두지 못했다.
설명되지 않는 것은 남기지 않았다.
한 번은 괜찮았다.
두 번까지도 남겨두었다.
세 번째는 없었다.
아빠는, 그 기준을 오래전에 넘겼다.
내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건, 구조였다.
어느 일요일 아침, 아무도 없던 날.
베토벤과 쇼팽의 곡을 반복해서 치던 날이었다. 누군가 벨을 눌렀다. 옆집 아주머니였다. 노오란 감귤 몇 개를 들고 계셨다.
“너무 슬프다. 중간에 노랫소리도 들리던데. 천사인 줄 알았어. 자주 연주해 주세요. 종종 들릴 때마다 생각했어. ”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가끔씩 쇼팽의 곡을 치다가 노래를 부르곤 했기에. 극내향인이던 나는 한동안 건반을 누르지도, 노래를 부르지도 못했다.
그리고 나의 오른쪽. 으스러지게 붙잡고 있던 내가 세운 문. 늘 걸쇠를 걸어 잠그고, 단단히 붙들고 열리지 않게 매 순간 간절히 떨며 기도하던 문.
18살이 되어 태어나 처음으로, 문을 열고 있을 수 있었다. 왼쪽 창문으로 들어온 산바람이, 나를 흩고 지나가, 방문으로 나갔다. 늘 한쪽으로만 흘러가던 바람이, 양쪽으로 흘렀다. 양쪽에서 감겨와서 나를 감싸 안았다.
돌이켜보면 해방감이었다.
스스로 문을 닫고 갇혀있던 새.
어느 날 처음으로, 새장의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 조용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날, 엄마 전화가 왔다. 아빠는 위암 3기였고, 위의 3분의 2를 절제해야 하는 대수술이 필요했다. 살 가능성은 20퍼센트라고 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았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순서를, 몸이 따라오지 못했다.
그때 처음으로, 그는 대학교수가 아니라
무너질 수 있는 한 사람으로 보였다.
세상이 처음으로, 나를 잠시 그냥 두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울어야 하는 순간에,
울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숨이 얕았다.
손등은 차가웠다.
전화를 끊고 오랜만에 거실 소파에 앉아보았다.
계산을 했다. 숫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방식은 같다.
20% 살 경우에, 나는 이 시험 또한 해내야만 한다.
머릿속에는 두 가지만이 있었다.
공책 한 페이지를 반으로 접었다.
종이에 선을 하나 그었다.
손이 곧지 않았다.
남길 것과 끝낼 것을 나눴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대학교 등록금은 어떻게 되는 거지.’
’살아 돌아올 거야, 그럼 나는 이 시험을 해내야만 해.‘
공이 날아다니지 않았다.
어디로 휘두를지 모르는 손바닥이 없었다.
끊임없이 소리 지르고, 떨어지고, 부서지는 싸움이 없었다.
언제 불똥이 튈지 몰라, 문고리를 잠그고 한쪽 손목으로 잡고 있는 손을 덜덜 떨던 내가 없었다.
생각보다 먼저 멈추는 것은 몸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이 공간에 존재할 수 있었다.
숨이 쉬어졌다.
수술 결과가 어떻든, 그 결과가 들려오지 않길 바랐다.
어떠한 결정이 나든,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이 지속되길 기도했다.
그는 잠시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 방식으로 살고 있었다.
열렸던 것은 잠시였고
남은 것은 오래된 방식이었다.
나는 다시 같은 자리에 앉았다.
손이 먼저 위치를 찾았다.
문은 없어지지 않았다.
다만, 내가 서 있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문은 여전히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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