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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어떻게 생각해

어린시절부터 달려온 나의 이야기

by 요히




달린다, 모래바람을 마시며. 허나, 모랠 마시는 건 안중에 없다. 달리는 나와 따라잡을 너만 있을 뿐.

초등학교 3학년.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건 축구.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닌 공을 차기 위해 가는 곳이었다. 점심을 마신 뒤에도 찼고 학교가 끝난 뒤에도 찼다. 수학 다음 시간이 체육이라고 시간표에 적혀 있지만 그 두 글자가 축구로 보였다. 체육시간에 축구 말고 다른 운동을 하면 화가 치밀었다. 한낱 공놀이가 그리도 재밌었을까. 그럼에도 막상 내 앞에 공이 있다면 발은 눈보다 빠르게 움직일 것이며 입꼬리는 다시 한번 중력을 거스를 게다. 매일의 축구는 나의 심장을 두 개로 만들었다. 지성이형처럼.

점심시간 축구 및 방과 후 축구는 중학교 시절에서도 여전했다. 뭐랄까, 그냥 밥을 먹는 것 같다는 표현은 뻔하고 숨 쉬는 것처럼은 더 별로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느낌이 오는가. 그렇다. 당신의 예상처럼 나에게 있어 축구는 일상이었다. 작열하는 태양은 내게 뜨거움을 불어 넣었고 나는 골을 넣었다.

중학교 2학년. 그간 공을 차며 늘린 체력이 인정받는 순간이 온다. 교내 체육대회 달리기 종목 중 가장 긴 1500미터에 반대표로 나선다. 달리기는 떨림이다. 당신도 알 것이다. 지금 당장 달리는 것이 아님에도 달리기로 결정된 그 순간부터 떨리기 시작한다는걸. 그 떨림은 달리기 전과 중과 후에도 가시질 않는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출발선 위에 서있다. 날 집어삼킬듯한 긴장감을 외면하지만 이미 심장은 나보다 먼저 달리고 있다.

땅!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며, 이것은 백 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그렇기에 너도 나도 페이스 조절을 한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그 친구는 육상부다. 처음부터 치고 나간다. 그는 수업 시간을 달리기와 체력훈련으로 채웠을 것이다. 그러려니 여긴다. 그 친구는 나와는 다른 레벨이라고.

그래도 쫀심이 있지 않나. 여태 해온 게 있지 않나. 매일 같이 축구를 한 가닥이 아까워서라도 쉬지 않고 달린다. 1500미터는 운동장 한두 바퀴로 끝나는 종목이 아니다. 8바퀴를 돌아야 한다. 일정하지만 조금씩 속도를 올린다. 나의 페이스는 줄어드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너에게 한 바퀴를 따라잡힐 것 같던 나는 어느새 너를 반바퀴 차로 좁힌다. 너의 남은 거리는 반바퀴. 나의 남은 거리는 한 바퀴. 네 머릿속에 너는 이미 일등이다. 그래서 마음을 놓는다. 지켜보는 선생도 학생도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나는 너를 잡아야겠다. 그래야만 일등이다. 사자는 3-4일을 굶주리다 사냥을 한다. 나는 굶주림의 4일을 넘어선 사자처럼 너라는 먹잇감을 쫓는다. 솜털부터 머리털까지 있는 털이란 털은 주인의 의도 없이 각자의 키를 최대치로 키운다.

네가 발을 한 번 구를 때 나는 두 번 구른다. 친구들이라는 점으로 트랙이 그려져 있다. 육상부 친구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진다. 친구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한다. 너는 지금 뒤에서 어떤 영화가 촬영되는지 상상치 못한다. 이젠 앉아있는 친구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일어선 친구들을 왼쪽으로 끼고 마지막 코너를 돈다. 그들의 외침이 내 뒷목을 파고들어 척추 깊숙한 곳까지 진동시킨다. 우린 점점 가까워지지만 너는 오로지 결승선만 바라본다. 짝사랑인가. 역시 사람은 약자를 응원하게 되어있나 보다. 그 응원을 온몸으로 받는 나는 사막을 머금고도 한 발 더 구른다.

그 한 발 차이로 너보다 먼저 들어온다. 영화는 현실을 기반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경험은 희열을 동반한다. 이 1500미터짜리 영화는 1500번 우려먹을 안주 거리다. 그러면서 1500번의 입안의 무엇인가를 튀기다 보면 1.5리터의 물을 마셔야 할 것처럼 입안이 바짝 마를지도.

모두들 흥분했다. 학교가 나로 채워져 있는 듯했다. 그때 나는 정점이라는 것에 느낌을 맛보았는지도, 그래서 그 이후에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시시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화려했던 그 경주가 이제는 오랜 기억의 한 조각일 뿐이다. 두 개의 심장도 하나가 된지 오래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는지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소싯적 그때를 회상하며. 달리는 나는 달리는 게 피로하지만 그래도 달린다. 예전엔 이유 없이 달렸지만 이제는 이유를 달고 달린다. 뻔하게도 시간은 야속하다. 이는 당신이 만약 젊더라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경험했던 나는 너에게도 시간이 그럴 것이라는 걸 안다. 덕분에 겸손을 배운다. 한낱 미물인 나는 날이 갈수록 작아지려 하고, 작아지고 싶어 한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나의 젊음은 너의 그렇지 않음과는 닮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확신에도 모르는 새 균열이 가기 시작해서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시간은 공평하다는 걸 느낀 이후로 나의 고개는 가을의 벼가 된다. 시간은 흐르고 우린 먹는다. 먹고 싶지 않아도 먹을 수밖에 없다. 나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이제 나의 목표는 육상부, 그때의 네가 아니라 달리는 것 그 자체다. 슬로우 조깅이라도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기기로 마음먹은 지도 꽤나, 야속히도 흘러버린 지 오래다.

정평천. 우리 동네에는 천이 흐른다. 그 천은 마치 내가 끊임없이 뱉어내는 내면의 수다처럼 물을 흘려보낸다. 너는 그렇게나 흘려보내고도 할 물이 남을까. 내가 뱉어도 뱉어내고도 할 말이 남은 것처럼. 달린다. 천의 흐름을 따라서 달린다. 달리지 않으면 마치 나의 정체성을 잃을 것처럼 달린다. 달리는 걸 차마 멈추었던 기간조차 나의 세포는 기억하고 있다. 달리는 게, 달려야 하는 게 나라는 사람이라는걸. 달려야 산다는걸. 그래야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글을 쓸 수 있다는걸. 그처럼 글을 쓰기 위해선 적어도 그가 달린 반의반만큼은 달려야 한다는 것을. 여전히 나는 달려야 할 거리가 많이 남았다는 것을. 그것은 아직 나의 삶이 많이 남았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을. 그건 내가 여전히 할 말이 많이 남아있을 거라는 것을. 나에게 아직 여행해야 할 여정이 많이, 단순히 많은 게 아니라 정말로 수없다는 것을. 아직도 지금처럼 지새울 밤이 내게는 많고도 많다는 것을. 그리고 여전히 사랑할 것이 많이 남았다는 것을. 그리고 또 여전히 받을 사랑 역시 적지 않다는 것을.

모래바람이 미세먼지로 바뀌었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달린다는 것이다. 달리는 건 단지 살아만 있는 사람에게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한다. 그걸 몰랐던 때도 알고 있는 지금도 그 사실은 여전하기만 하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이는 마치 진리인 걸까.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살아가고, 설령 살아있음을 알아채도 그것은 찰나일 뿐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달리고 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물론 달리지 않는 날도 많다. 그래야 인간적이니까. 달리고 또 달리더라도 나라는 인간의 답은 어쩌면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 혹여 나오더라도 나는 그걸 답으로 인정치 않으련다. 그래야 인생적이니까. 모래를 마시는 건 여전히 안중에도 없다. 답이 없는 현실에서 답을 찾으려 혈안 중이니까. 결국 달리는 나와 따라잡을 나만 남는 게 내가 바라는 나의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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