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을 건네고 남은 자리에서

돌봄을 주는 존재의 고요한 외로움에 대하여, <오늘의 잠에게>의 속삭임

by 투유니즈맘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은 아름답다.
하지만 나를 위한 시간이 사라지만,
그 아름다움도 언젠가 지쳐버린다.




돌봄의 빛이 바래지 않기를



내가 본 우리 엄마는 한평생 우리를 위해 살았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엄마의 하루는 언제나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아빠가 우리의 삶에 제대로 들어온 건 내가 이미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그전까지는 엄마 혼자서 두 딸의 온전한 세상을 만들어주었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챙기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가 학원 라이딩을 하고, 밤늦도록 진행되는 과외를 거실에서 기다리던 그 모든 시간들. 엄마의 인생이라는 캔버스에는 오직 우리 두 딸의 이야기만이 촘촘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 엄마의 삶을 보며 나는 종종 의문이 들었다. 엄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언제 있었을까?

엄마에게는 자신만의 꿈이나 취미, 심지어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아플 때면 밤새 간병하고, 우리가 시험을 볼 때면 함께 긴장하고, 우리가 기뻐하면 함께 웃고, 우리가 울면 더 큰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감정은 언제나 우리의 감정에 맞춰져 있었고, 엄마의 하루는 우리의 일정에 따라 결정되었다.



동생이 어느 날 말했다.

언니인 나는 엄마의 중심이었다고.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갔는데, 내가 유학을 떠나며 생긴 그 빈자리를 동생이 천천히 메워갔다고.
그때 나는 깨달았다. 엄마에게는 엄마 자신만을 돌보는 ‘온전한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내가 유학을 가면 엄마가 드디어 엄마만의 시간을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라는 거대한 존재에 가려져 그늘 진 곳에 홀로 있던 내 동생이 엄마 눈에 보인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내 동생을 중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 두 딸이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엄마 옆에 붙어서 살면서, 이제는 황혼육아까지 맡겨드리고 있는 현실. 엄마는 손녀들까지 돌보며 엄마 자신이 아닌 다시 누군가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이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엄마를 빼고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진로를 고민할 때도, 사랑을 할 때도,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도 언제나 엄마의 조언과 걱정과 응원이 함께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의 모든 순간순간엔 엄마가 스며들어 있었고, 우리는 그만큼 엄마를 믿고 의지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마마걸인 건 아니다. 엄마는 우리 삶의 든든한 뿌리이자 중심축이다.



그리고 내가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보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었다.

애 둘을 키우면서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책도 많이 읽으며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우리가 아니었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며 살고 싶었을까?

그래서 식탁에 단 둘이 앉아 있을 때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만약 엄마가 우리... 아니 결혼을 안 하고 엄마 혼자 살았다면 뭘 하고 싶어?"
엄마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마치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아보는 것처럼, 자신만의 삶이라는 것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당황스러워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 엄마는 정작 엄마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엄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 재능이 있는지, 어떤 꿈을 품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고민해 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저 두 딸만 생각하고, 그 두 딸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아온 거였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자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진짜 엄마만의 시간을 줄 수 있을까? 40년 가까이 타인을 위해 살아온 엄마에게, 비로소 자신을 위한 시간을 선물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는 것이,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잠자리 독서에 딱일 거라고 생각하고 빌린 <오늘의 잠에게>는 전혀 다른 감상으로 내게 다가왔다.

세상 모든 이를 재우지만 정작 자신은 잠들 수 없는 '잠'의 이야기는 자꾸만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40년 가까이 모든 이를 돌보며 살아온 엄마가, 그 작은 까만 실루엣과 이상하도록 닮아 보였다.





잠들지 못하는 '잠'의 특별한 하루



매일 밤 어둠과 함께 세상을 찾아오는 까만 실루엣이 있다. 바로 '잠'이다.

잠은 부지런히 세상을 돌아다니며 모든 존재들을 재운다. 황새도, 지렁이도, 굴뚝 위의 고양이도 잠의 따뜻한 손길 아래 평화롭게 잠에 빠져든다. 그런데 어느 날, 고양이의 편안한 잠든 모습을 보던 잠이 문득 깨닫는다. 정작 자신은 한 번도 잠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잠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자신이 다가가기만 하면 모두 잠들어버린다. 그래서 혼자 잠들기를 시도해 본다. 몽실몽실한 민들레 씨앗 위에서, 푹신한 산타 수염 위에서, 바오밥나무 꼭대기에서, 아마존강의 따뜻한 물결 위에서까지. 하지만 어디에서도 진정한 휴식을 찾을 수 없다.

결국, 지친 잠이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왔을 때, 고양이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 평온한 소리를 들으며, 과연 잠은 마침내 자신만의 휴식을 찾을 수 있을까.





마음의 평안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엄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던 엄마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잊을 수 없다.


40년 가까이 모든 이를 돌보며 살아온 우리 엄마에게 '자신 만을 위한 시간'이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개념 같았다.

그리고 지금 두 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 역시 점점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는 듯 하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 사라져 가는 그 막막함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의 잠에게>는 매일 경험하지만 당연하게 여겨왔던 '잠'을 특별한 친구로 소개한다.

아이들이 잠자는 시간을 힘들어하거나 무서워할 때, 잠을 다정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황새부터 지렁이까지 모든 생명체를 차별 없이 돌보는 잠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려와 돌봄의 마음을 배우게 된다.



그러던 중, 책장을 넘기며 문득 마음에 남은 또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

'돌봄을 주는 자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세상 모든 존재를 재우러 다니지만 정작 자신은 한 번도 잠들어본 적이 없다는 잠의 깨달음.

그 순간 나는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우리의 아침을 챙기고, 밤늦도록 과외를 기다리며, 우리가 아플 때면 밤새 간병하던 그 모든 시간들.

엄마는 과연, 엄마 자신만을 위한 진정한 휴식을 가져본 적이 있었을까?



엄마는 나의 유학을 '이제야 내 시간이 왔다'라고 느꼈을까?

아니었다. 그 틈에 내 동생이 보였고, 다시 하루하루를 돌봄으로 채워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돌봄의 중심이 바뀌었을 뿐, 엄마의 삶은 여전히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럼 엄마를 보며, '잠'이 세상을 떠돌며 쉴 곳을 찾는 장면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다.



민들레 씨앗, 산타 수염, 왕의 침대... 그 어떤 곳에서도 진정한 휴식을 얻지 못하는 잠의 모습. 이건 단순히 물리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도 똑같다. 아이들이 잠든 후 겨우 얻은 나만의 시간, 드디어 내 할 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마음은 온전히 쉬지 못한다. "내일 아침엔 뭘 해줄까", "수건 빨래는 언제 해야하나"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맴돈다.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누군가를 돌보는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유독 특별했다.

잠이 고양이의 조용한 숨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그 숨결의 평온함에 이끌려 마침내 잠드는 장면.

혼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쉼을, 타인의 고요함 속에서 발견하는 순간.

그 장면을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진짜 쉼이란, 조건이 아니라 감정이 머무는 자리에서 시작된다고.



우리는 종종 '좋은 돌봄'을 완벽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마음이 머물 수 없는 환경에서는 그 돌봄도 공허할 수 있다.

진정한 자기 돌봄이란, 좋은 환경을 갖추는 것을 넘어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을 지켜주는 일.

그렇게 마음의 평안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도 나는 답을 찾아가고 있다.

단순한 여가나 선물보다 더 깊은, 엄마만의 고요한 자리를 지켜주는 방법을.

어쩌면 그것은, 무언가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엄마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지켜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고요함이 누군가에게도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돌봄은, 완벽한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편히 머물 수 있는 고요한 자리를 지켜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모두를 챙기느라 잊고 있었던 나의 숨결에
오늘만큼은 조용히 귀 기울여 본다.
그 작은 고요가 우리를 다시 걷게 해줄지 모르니까.





<오늘의 잠에게> 박새한 作을 읽고...








글쓴이 │ 투유니즈맘 (Twoyooniiz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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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원인 불명의 장염으로 고생을 끝내자

구내염&후두염이 찾아와서

남들보다 빠른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아이의 방학은 정말 힘드네요.

컴퓨터 쓰는 작업을 하나도 못하고 있습니다.

겨우겨우 쓴 글입니다.

8월에는 4~5편을 더 발행해서

브런치 북으로 엮어서 뭐라도 해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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