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은 때로 다른 모양으로 찾아온다

복원이 아닌 변화로 자라는 마음, <나의 첫 심부름>의 지혜

by 투유니즈맘
계획은 무너지고, 마음은 쪼그라들고, 눈물은 흐르지만,
그 모든 순간조차 나를 다시 키워주는 시간이었다.




멈춰선 시간 속에서



일본의 벚꽃이 막 피어나던 그 봄날, 나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내정서를 마침내 손에 쥐었다.

한국에서의 평범한 일상을 뒤로하고 낯선 땅에서 보낸 1년이라는 시간, 어학원을 오가며 일본어와 씨름하던 날들, 면접을 위해 정장을 차려입고 긴장했던 순간들이 모두 이 한 장의 종이로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모든 계획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나는 드디어 내가 그려왔던 미래에 한 걸음 다가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은 예고 없이 멈춰버렸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의 거대한 파도가 모든 것을 휩쓸어버렸고, 국경은 닫혔으며, 비자는 막혔다.

내정은 받았지만 갈 수 없는 회사, 시작할 수 없는 새로운 삶 앞에서 나는 갑작스럽게 떠밀려난 공백의 시간과 마주하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이 예상치 못한 여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목을 조였다.

"지금 뭘 하고 있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찾아오는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친구들은 하나둘 결혼하고,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초조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더 이상 쉴 시간이 없다는 강박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에만 익숙했던 나에게, 갑자기 주어진 이 정적은 편안함이 아니라 조급함으로 다가왔다.



그때 남자친구(현재 남편)가 내게 말했다.

회사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만의 방법을 찾아서 하루를 살아가는 법을 익혀보라고.

일이 시작되면 시간에 끌려가고, 업무에 치여 살게 될 테니, 지금이야말로 나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서른이라는 나이가 늦은게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들을 바탕으로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적기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스며들었고, 나는 천천히 나를 알아가는 실험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규칙 같지만 규칙이 아닌,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요가나 필라테스처럼 조용하고 명상적인 운동을 시도해봤지만, 그것들은 나와 맞지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고요함이 아니라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에어로빅의 강렬한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들고, 줌바의 라틴 리듬 속에서 소리 지르며 땀을 흘릴 때, 비로소 내 안에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불안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오후에는 엄마 가게에서 일을 도우며 사람들과의 소소한 일상을 나누었다.

손님들과 주고받는 인사, 계산대에서의 짧은 대화들이 나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 안의 조급함이 조금씩 풀려갔다.



저녁이 되면 언어 공부에 몰두했다.

일본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비즈니스 일본어 공부는 계속 이어갔고, 영어와 중국어까지 욕심을 냈다.

일본이라는 하나의 목표에만 매달려 있던 나는 이제 더 넓은 세계를 그려보고 싶었다.

각각의 언어가 열어주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상상하며 미래를 조금씩 확장해나갔다. 그 시간들은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갇혀있던 내 상상력을 해방시키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로 멈춰선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비우고 채우고, 또 비우고 채우는 연습을 반복했다.

무엇이 나를 진정으로 회복시키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보낼 때 가장 나다운 느낌이 드는지,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채워나갈 수 있는지를 천천히, 그러나 깊이 배워나갔다.



실수와 정직, 그리고 '실수할 수도 있지, 처음이잖아'라는 마음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서 빌린 그림책 <나의 첫 심부름>은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선사했다.

깨진 그릇을 새로운 용도로 탄생시키는 할머니의 따뜻한 지혜가 담긴 이 작은 그림책이 들려주는 회복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그 시간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작은 실수로 시작된 감정의 여정



처음으로 심부름을 맡은 소녀는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가득 안고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올라가던 계단에서, 그만 할머니가 아끼던 그릇을 떨어뜨리고 만다.
쨍그랑!
깨진 그릇처럼, 소녀의 마음도 산산이 부서진다.



그 순간부터, 소녀는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걱정의 구름이 몰려오고, 나팔꽃이 추궁하고, 붉게 달아오른 맨드라미가 소녀의 감정을 흔든다.
뾰족한 장미 가시 사이에서 갈등하던 소녀는 결국 눈물을 쏟아내며, 점점 작아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들려오는 한마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무지개의 위로는 소녀의 마음에 작은 용기를 심어준다.
소녀는 마침내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작아졌던 몸은 다시 자란다.
그 순간, 모든 존재들이 함께 기뻐해 준다.


돌아온 할머니는 다그치지 않는다.
“다치진 않았니?” 먼저 걱정해주는 따뜻한 목소리.
그릇은 버려지지 않고, 새로운 용도로 다시 태어난다.
소녀의 마음도 함께 회복되며, 그렇게 ‘첫 심부름’은 비로소 완성된다.





복원이 아닌 변화로 찾은 회복의 길



<나의 첫 심부름>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정직한 마음이 자라나는 과정을 그려낸 그림책이다.

하지만 이 책이 진짜 특별한 이유는 할머니가 보여주는 '회복'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법에 있다.



우리는 보통 무언가가 깨지면 '완전히 원래대로 복구'하거나 '아예 버리는' 것만 생각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제3의 길을 제시한다. 깨진 것을 인정하되,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살려내는 것이다.

깨진 그릇이 화분 받침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찾는 과정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서, 인생의 실패나 상처를 대하는 성숙한 관점을 보여준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멈춰 세웠던 그 봄, 나 역시 깨진 그릇과 같았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본 취업이라는 계획이 산산조각 났을 때, 나는 처음에 그것을 '복구'하려고 애썼다.

언제 국경이 다시 열릴지, 언제 비자가 나올지, 언제 원래 계획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마치 깨진 그릇을 원래 모습으로 붙이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하지만 남자친구(현재 남편)가 건넨 한마디가 나를 변화시켰다.

"지금이야말로 나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그때부터 나의 생각회로는 <나의 첫 심부름>의 할머니 같았다.

깨진 것을 억지로 원래대로 돌리려 하지 말고, 아예 다른 용도를 찾아보자고.



그렇게 시작된 나만의 리듬 찾기.

오전의 격렬한 운동, 오후의 소소한 가게 일, 저녁의 언어 공부. 일본어뿐만 아니라 영어와 중국어까지 욕심을 내며 세계를 확장해나갔다. 일본이라는 하나의 목표에만 매달려 있던 나는 이제 더 넓은 가능성을 그려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때 가장 나다운지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일본 취업이라는 '원래 그릇'은 깨졌지만, 그 조각들로 나만의 '화분 받침'을 만들어낸 셈이다.



나는 늘 무언가가 틀어지면 원래대로 되돌리려고만 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지혜는 달랐다.

깨진 것도 괜찮다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회복은 복원이 아닌 변화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완벽함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는 할머니의 철학이 내게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지금의 우리가 가능했다.

깨진 그릇처럼, 때로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진 것을 붙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조각난 나를 바라보고,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건 어쩌면,

더 단단한 회복일지도 모른다.





<나의 첫 심부름> 홍우리 作을 읽고...








글쓴이 │ 투유니즈맘 (Twoyooniiz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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