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속 특별함을 발견하기까지, <눈사람 마을>을 통해 되찾은 나
다르게 보는 그 순간,
평범한 것들이 새로워지기 시작했다.
나의 20대는 '소심한 관종'으로 살았던 시간이었다.
건축학과를 다니며 '기발해야 한다'라는 강박에 시달렸다. 뭔가 눈에 띄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그게 안 될 바엔 차라리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만큼 평범하게, 조용하게 지나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범하게 하려 할수록 교수님들, 주변 학생들의 반응은 더 좋았다.
당시 나는 '아, 내가 뭔가 남다른 걸 했구나!'정도로만 받아들였지, 왜 그게 의미 있게 느껴졌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진짜 중요한 것, 일상적인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이었지만, 나는 그저 '돋보이는 것'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내 생각의 진짜 가치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한 이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이런 일도 있었다.
한달짜리 짧은 프로젝트였는데, 스코틀랜드 바닷가에 'shelter'를 짓는 과제였다.
숙박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느낌의 공간. 조건은 '화장실 없음, 부엌은 있음'.
솔직히, '이런 걸 굳이 공간이라고 만들라고?' 싶었다.
첫 번째 크리틱까지는 딱 일주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크리틱 있는 당일 새벽 3시쯤, 드디어 스케치 모형과 드로잉을 완성했다.
그리고 남은 재료들로 ‘내가 저 해변에서 산다면 어떤 공간을 만들까?’를 상상하며, 작은 모형 하나를 더 만들었다. 사실 이걸 만들 때가 훨씬 즐거웠다. 애착 인형을 만들 듯 정성을 들여 순식간에 완성했다.
단순한 구조였지만, 난 원래 그런 디자인을 좋아하니까.
나만의 이상향을 담은 소박한 쉘터.
그렇게, 과제와는 상관없지만 나만의 기쁨이 담긴 작은 쉘터가 완성되었다.
다가온 크리틱 시간, 나는 자신 있게 메인 작업물과 스케치를 펼쳐놓고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반응은 썰렁했다.
“음… 흠… 다른 거 없어?”라는 한마디.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가방에서 그 두 번째 작품을 꺼냈다.
“이건… 이 프로젝트용은 아니고 제가 살고 싶은 공간인데요.”
말하면서,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그 순간, 교수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원한 게 이거였어.”
정말 뜻밖이었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 좋아하시지?’
그때는 몰랐다. 그냥, 관심받는 게 좋았을 뿐이었다.
그 모형이 왜 그렇게 반응을 끌어냈는지, 내가 어떤 ‘진심’를 꺼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결과’보다는 ‘보여지는 방식’에만 신경 쓰고 있었다.
내가 했던 선택이 왜 의미 있었는지, 그 안에 담긴 진짜 힘이 뭔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아직도 그때 교수님이 왜 그렇게 좋아하셨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아무튼, 영국에서의 대학 생활은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고, 결국 졸업 설계 도중 자퇴로 끝이 났다.
(그 시기는 우리 가족 안에서도 오랫동안 조심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는 꺼내어 풀어야 할 이야기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남달라야 살아 있는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인생’
나는 스스로의 인생을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평범함 속에서도 시선을 바꾸면 얼마든지 특별함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 간단한 걸 모른 채 20대를 보냈고, 30대 초반도 그런 식으로 흘려보냈다.
지금도 나는 그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을까?
아니다. 처음엔 돈도 벌어야 하고, 나다운 삶도 살고 싶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그 복잡한 욕망들 사이에서 또다시 ‘독창적임’을 쫓았다.
하지만 육아라는 현실 앞에서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다 문득, 지금껏 무시하고 지나쳤던, 정말 일상적이라고 여겼던 내 삶의 작은 조각들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이 에세이를 쓰는 일이고, 두 번째가 내가 준비 중인 그림책 사업이다.
한때 너무 평범해서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재는 내 삶의 원동력이 되고, 나의 미래가 되어 나를 밀어가는 '진정한 힘’이 되어주고 있다.
최근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사람 마을의 아이스크림>이라는 그림책을 발견했다. 사실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와서 빌린 책이었다. 육아 중인 엄마로서, 첫째의 관심을 끌만한 포인트가 필요했고, 달콤하고 귀여운 이야기라면 부담없이 넘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며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 책이 마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괜찮아, 지금 너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어'
'독특하지 않아도 돼. 너는 이미 충분히 다르게 보고 있어'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는 상상 정도로 여겼던 이야기였는데, 읽을수록 마음에 잔잔한 울림이 남았다.
꼬마 눈사람이 아이스크림을 머리에 짜달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는 오랜 시간 나를 지배했던 나의 강박과 집착,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놓쳐버렸던 무언가를 떠올렸다.
2주 동안 매일매일 이 그림책을 꺼내 읽었다.
잠자리 독서로 아이와 함께 읽고, 누워서 또는 책상에 앉아 머릿속으로 천천히 곱씹었다.
그러면서 점점,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 내가 다시 꺼내 든 그림책 아이디어.
그게 어쩌면 맞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눈으로 가득한 차가운 마을, '눈사람 마을'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생겼다.
하지만 손님은커녕 "눈 같은 걸 왜 사 먹냐"라는 반응뿐.
가게 주인들은 점점 지쳐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꼬마 눈사람이 가게에 들어와 말한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머리에다 짜주세요!"
뜻밖의 요청에 당황하면서도 시도해 본 결과, 아이스크림은 모자가 되고, 목도리가 되고, 귀마개가 된다.
이 엉뚱한 상상 하나는 마을 전체에 퍼져, 얼어붙은 분위기를 서서히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한 어느 특별한 순간, 아이스크림은 또다시 '새로운 용도'로 쓰이며, 마을엔 진짜 웃음과 따뜻함이 피어난다.
"머리에다 짜주세요!"
꼬마 눈사람의 이 엉뚱한 요청을 읽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20대의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바로 이런 시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눈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 '먹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겨울뿐인 마을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건 말도 안되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꼬마 눈사람은 그걸 모자로,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바라봤다. 나는 건축을 '기발해야 하는 것'으로만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반면, 꼬마 눈사람은 아이스크림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으로 본 셈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shelter 프로젝트에서 두 번째 모형을 만들던 그때처럼. 그건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내가 머물고 싶은 공간'을 그저 자유롭게 상상했던 시간이었다. 그 순간이 어쩌면 내 안에 있던 진정한 시선의 첫 흔적이었다. 꼬마 눈사람처럼 나 역시 하고 싶었던 걸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오지 않던 아이스크림 가게처럼, 영국에서의 마지막 학기, 아니 학교를 다니는 내내 내 시도들은 허공을 맴도는 듯했다. 그때의 나는 기다리지 못했다. 새롭게 바라볼 여유도 없었다. 결국, 자퇴라는 이름의 포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들은 달랐다. 문을 열어둔 채 기다렸다. 그래서 꼬마 손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포기했던 그 순간들은 사실 인내가 필요했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면의 진짜 목소리, 내가 정말 만들고 싶었던 것들과 마주할 수 있었을 그 시간을… 난 기다리지 못했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눈사람들이 함께 케이크를 꾸미는 걸 보며, 나는 오랫동안 혼자 남다르게 되려고 애썼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로, 남들보다 기발한 방식으로. 하지만 정작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들을 되짚어보면, 모두 누군가와 함께였다.
지금 내가 준비하는 그림책 사업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너무 평범해서 그냥 지나쳤던 내 경험들을, 지금 다시 꺼내 보니 다른 관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현재는 의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만든 독창성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이미 내 안에 있던 평범함을 새롭게 바라보는 게 더 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이 작은 그림책이 나에게 속삭여주었다.
2주 동안 매일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다시 시작한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애써 찾으려 했던 그 무언가가, 사실은 늘 내 주변에 있었다는 것. 결국 중요한 건 '다르게 보려는' 용기와, 그 관점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인 것 같다.
꼭 거창한 생각이나 변화가 아니어도 괜찮다.
작은 상상 하나가 마을 전체를 웃게 했던 것처럼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당신, 오늘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나요?
<눈사람 마을의 아이스크림> 송호정 作을 읽고...
글쓴이 │ 투유니즈맘 (Twoyooniiz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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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을 완성하는 데 2주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작은 그림책 한 권이 불러온 기억들이 생각보다 깊고 복잡했습니다.
오래전 묻어두었던 순간들, 심지어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세세한 감정들까지 하나씩 떠올라 마음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네요.
앞으로는 화요일과 금요일, 규칙적으로 글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