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서 용기로 변화하는 마음에 대해, <나 지금 떨고 있다>의 응원
떨림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작은 용기로 나아가는
가장 진실한 첫걸음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떨린다. 회의실에서,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을 말해야 하는 순간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이제는 그 떨림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예술대학을 다니던 시절, 행위예술이라는 교양과목을 듣게 되었다.
매 수업마다 행위예술 작품을 보고 코멘트를 남겨야 했는데, 그게 나에게는 너무나 버거웠다.
내가 보는 시선에 대한, 내 생각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 틀릴까 봐 무서웠다.
첫 수업이 끝나고 나는 교수님께 다가갔다.
"예술 작품에 대해서 말하는 게 너무 무서워요. 부탁드리고 싶은데, 저.. 발표를 안하면 안될까요?"
교수님은 나를 말없이 쳐다보시다가 조용히 "알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교실 한구석에서 조용히 다른 학생들의 발표를 들으며 지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예술 작품에 대한 코멘트에는 정답이 없었다.
다들 각자 하고 싶은 말, 그 순간 딱 생각나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이 작품을 보니 어머니가 생각나요", "색깔이 너무 강렬해서 불안해져요", "왜 저렇게 움직이는지 모르겠지만 슬퍼요"...
모두 맞는 말 같았다. 그리고 다들 서로의 말에 "아~ 그런 식으로도 볼 수 있구나" 하며 흥미롭게 반응해 주었다. 교수님도 단 한 번도 "그건 아니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8주차쯤 되었을 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용기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그냥.. 나도 한 번 말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작품을 보다가 책상 위에서 손가락을 살짝 들었다. 정말 살짝, 누가 볼까 말까 할 정도로.
그런데 교수님이 바로 캐치하셨다. "어떤 생각이 드나요?" 하고 나에게 물어보시더라. 너무너무 떨렸다.
그때의 작품은 아직도 기억난다. 흑백 영상이었고, 한 남자가 압정의 뾰족한 부분을 위로 향하게 사다리에 촘촘히 박아두고 그 위를 맨발로 밟고 올라가는 퍼포먼스였다. 보기만 해도 기괴하고 아찔했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시대 저항’ 같은 걸 표현한 작품이라고 했다.
솔직히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그야말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노동자 계급이 위로 올라간다는 건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이야기일까요?”
교실은 조용했고, 같은 반 학생들은 말없이 경청해 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 정말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해주었다.
그 순간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떨렸지만, 틀리지 않았다. 아니, 틀릴 수도 없는 말이었다.
그것은 내가 그 순간 진심으로 느낀 것이었으니까.
지금도 떨린다.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이제는 떨림의 이유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틀릴까 봐 떨렸다면, 지금은 진심이어서 떨린다.
떨림은 내가 그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떨림 속에서도 손을 들 수 있다는 것,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용기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책상 위에서 살짝 든 손가락 하나가.
누군가에겐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 그 작은 순간이, 나에게는 세상을 바꾼 작은 기적이었다.
이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나 지금 떨고 있다>라는 그림책을 읽고 나서 였다.
발표라는 말 앞에서 온몸이 굳어버리고 혼비백산이 된 아이들, 그리고 그 떨림은 안은 채 조심스럽게 손을 드는 아이들.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 지금 떨고 있다>는 떨림이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그리고 그 떨림이, 어떻게 용기로 바뀌는지를 아주 작고 섬세한 순간들도 담아낸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누가 발표해 볼까요?"라는 한 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아이들의 마음은 일제히 요동친다.
'질문이 뭐였지?', '나만 안 걸리면 돼', '귀신 다음으로 무서운 것이 발표야'
각자의 방식으로 발표를 피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속마음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주인공 아이는 발표 상황에서 온몸으로 긴장을 경험한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두 볼이 화끈거리며,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바들바들 떨린다.
선생님이 계속해서 발표자를 찾을 때마다 긴장은 더욱 커져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심지어 딸꾹질까지 터져 나온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용기 내!" 이 한마디가 주인공에게 결정적인 힘을 준다.
드디어 주인공이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제가 발표해 보겠습니다!"라고 외치는 순간,
다른 아이들도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다음에는 용기 낼 거야'라며 희망과 용기를 품게 된다.
<나 지금 떨고 있다>는 아이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데서 출발한다.
발표라는 상황 앞에서 벌어지는 신체적 반응들
콩닥이는 심장,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 화끈거리는 볼, 쏟아지는 땀.
이 책은 그것들을 결코 과장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떨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아이들에게 '떨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의 가장 따뜻한 부분은 아이가 공감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틀리면 어떡해', '눈만 마주치지 않으면 돼', '나는 준비가 안 됐어'
각자의 방식으로 떨고 있는 아이들이 교실 곳곳에 있다.
독자는 그들의 속마음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런 공감이 바로 용기의 첫걸음이 된다. 공감은 스스로를 향한 비난을 멈추게 하고, 그 틈새로 용기의 씨앗이 싹튼다. 주인공은 여전히 떨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 "용기 내!"에 반응하며 손을 번쩍 든다.
두려움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해보기로 결심한 순간. 그게 바로 용기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용기가 혼자만의 힘으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용기를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으로 다룬다.
"용기 내!"라는 작고 따뜻한 응원의 말 한마디가 있었기에 주인공이 손을 들 수 있었고, 그 손 하나가 또 다른 아이들에게도 용기를 전해준다.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다음에는 용기 낼 거야' 아이들은 서로의 떨림을 지켜보며, 아주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다가선다.
진심을 조심스럽게 내보이는 순간,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용기였다. 그리고 그 용기는, 또 다른 떨림을 향한 손짓이 된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혼자만의 고군분투가 아니라, 서로의 떨림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변화다. 한 아이의 용기가 다른 아이들에게 전염되는 순간, 교실 전체의 분위기가 바뀐다. 이것이 바로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용기의 힘이다.
이 책은 아이에게 용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듯한 감정의 공명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한 걸음을 내딛도록 응원한다. 떨림도 괜찮다고, 그 떨림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용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작은 용기 하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희망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받으며 성장해간다.
작은 떨림 하나에도 마음을 쏟는 사람이 있다.
그걸 알아봐 주는 눈빛 하나가 누군가의 용기가 되어준다.
그래서 떨림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소중한 것이다.
<나 지금 떨고 있다> 임태리 作을 읽고...
글쓴이 │ 투유니즈맘 (Twoyooniiz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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