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② 말똥 도시를 구한 석탄가스

르누아르의 엔진, 내연기관의 서막

by 블루스카이

하루에 500톤. 파리 전체에 쏟아지는 말똥의 양이다. 여름 소나기라도 한 번 내리면 거리는 악취 나는 진흙탕으로 변했다. 하얀 드레스는 사치가 되었고, 런던은 더 심각했다.


1900년 무렵 30만 마리의 말이 도시를 휘젓고 다녔다. 매년 1만 5천 마리가 과로로 쓰러져 죽었고, 썩어가는 말 시체는 또 다른 골칫거리였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1950년에는 런던이 말똥 더미에 파묻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절망적인 미래 예측이었다.


그런데 이 절망적인 상황이 한 벨기에 출신 발명가의 기발한 착상으로 완전히 뒤바뀐다. 그 발명가의 이름은 에티엔 르누아르. 그가 만든 작은 엔진 하나가 도시의 운명을 바꿔놓을 줄 당시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역사는 종종 그런 식으로 움직인다.


석탄가스가 만든 기적

▲ (좌)에티엔 르누아르 가스 엔진(1860), 출처 위키피디아 ▲(우) 가스엔진 실물제작, 출처 wikipedia

1859년 어느 날, 르누아르의 작업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펑-탁-탁-탁.' 석탄가스와 점화플러그를 사용한 2사이클 내연기관이 처음으로 살아 숨쉬는 순간이었다. 이 작은 철제 상자는 기존의 거대한 증기기관과는 차원이 달랐다. 피스톤이 위아래로 두 번 움직이는 동안 모든 과정이 끝났다. 첫 번째 내려갈 때는 연료를 빨아들여 압축하고, 두 번째 올라갈 때는 폭발하고 배기가스를 내뿜었다.


마치 작은 심장에서 온몸으로 피를 뿜어내는 것처럼, 작은 엔진이 큰 동력을 토해냈다. 구조가 단순하고 경량이어서 제작비용도 절약됐다. 소형 기계류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 물론 연료 소비량이 많고 내구성이 아쉬웠지만, 이런 단점들은 사소해 보였다.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발명품이었다.


르누아르는 이 엔진의 가능성을 직감했다. 증기기관처럼 거대한 보일러나 복잡한 배관이 필요 없었다. 연료만 있으면 언제든 즉시 가동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기계적 개선이 아니라 동력 개념 자체의 혁신이었다. 작은 상자 하나가 산업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유럽의 공장들은 증기기관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증기기관은 설치 비용이 많이 들고 유지보수도 복잡했다. 특히 소규모 작업장에서는 비효율적이었다. 르누아르의 내연기관은 이런 한계를 단숨에 해결해줬다. 작고 간편하면서도 강력한 동력원이 탄생한 것이다.


엔진의 소음도 문제였지만, 증기기관의 굉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조용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시동을 걸면 바로 작동한다는 점이 혁신적이었다. 증기기관처럼 물을 끓일 시간이 필요 없었다. 즉시성과 편리성을 동시에 갖춘 새로운 동력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히포모빌, 파리를 달리다

▲ 르누아르의 세 바퀴 마차인 히포모빌(1863년), 출처 wikipedia

1863년, 르누아르는 더 큰 도박을 감행한다. 자신의 석탄가스 엔진을 삼륜차에 장착한 '히포모빌'을 제작한 것이다. 전륜 조향과 후륜 구동. 지금은 당연한 구조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설계였다. 성능은 어땠을까?

시속 6.7km. 사람이 빨리 걸으면 시속 6km인데, 기계가 사람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저절로 움직인다니! 10km 구간을 90분에 주행하는 모습을 본 파리 시민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것 봐, 말도 없이 굴러간다!"


언론은 이를 '마차 없는 도시'의 개막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단순한 교통수단의 변화가 아니었다. 인간의 상상력 자체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기계가 인간과 동물을 대신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문명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었다.


히포모빌의 등장은 교통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말은 생명체였고, 따라서 예측할 수 없었다. 배고프면 걸음이 느려지고, 놀라면 폭주했다. 아프면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계는 달랐다. 연료만 있으면 일정한 속도로 움직였다. 예측 가능한 이동수단이 탄생한 것이다.


파리의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이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말을 기르는 비용과 번거로움 없이도 개인 교통수단을 가질 수 있다니! 비록 속도는 느렸지만, 그 상징적 의미는 컸다. 기계 문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히포모빌은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약속이었다.


도시 문명이 요구한 필연적 혁신

그런데 르누아르의 발명이 우연의 산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19세기 중엽의 급속한 도시화는 교통체증과 심각한 위생 재앙을 불러왔다. 특히 부유한 상류층과 신흥 부르주아들은 더 신속하고 청결한 이동수단을 갈망하고 있었다. 말과 마차는 한계가 뚜렷했다.


느렸고, 더러웠고, 예측할 수 없었다. 말이 놀라면 사고가 났고, 말이 아프면 일정이 틀어졌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배설물을 생산하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내연기관은 이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주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오물 걱정도 없고, 이동시간도 단축시켜 주었다.


상업지구의 확장, 극장가의 번영, 공장지대의 성장과 맞물리면서 기동성은 근대인의 새로운 덕목이 되었다. 더 빨리, 더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시간은 돈이라는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기계적 효율성이 만나는 접점이었다. 내연기관은 이 두 가치를 모두 만족시켜주는 혁신이었다. 기술이 사회적 요구와 정확히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노동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마부와 마굿간 청소부, 철도 석탄 운반공들이 설 자리는 줄어들었다. 대신 기계정비공과 엔진 기술자, 연료 공급업자들이 새로운 직업군으로 떠올랐다. 기술혁신이 일자리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다. 구시대의 기술자들은 도태되고, 신시대의 전문가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직업 변화가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의 변화를 의미했다. 근육노동에서 기술노동으로, 경험 중심에서 지식 중심으로 노동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교육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읽고 쓸 줄 알고, 기계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노동시장의 주역이 되었다. 내연기관은 산업혁명을 한 단계 더 진전시킨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4]①마법이 아닌 과학, 세상을 바꾼 쇠와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