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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일차] 짐이 곧 국가다

Your Song - 다시는 속지 않을 초심

by 여운설

2023년 6월 8일 라 포르텔라 델 발카로세 - 리나레스 17.6km


산에 오르는 참 맛을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전까진 자진해 산을 타기는커녕 아주 가끔 친목 모임이나 회사 야유회 산행에 재갈 물린 소처럼 끌려간 정도였다. 원치 않은 등산인지라 가뿐 숨이 차고 진땀을 흘려야 하는 비자발적 고역이 즐겁지 않았다. 정상에서 한숨 고르자면 잠시 쉬다 내려갈 걸 이 고생하며 굳이 올라야 하나라는 불만과 하산의 지루함은 또 어떻게 견뎌야 할까라는 반감이 만발했다. 심보가 이러하니 따뜻한 차로 달궈진 체열을 달래며 솔솔 부는 미풍에 땀이 마르는 쾌감과 정상 아래 펼쳐진 장엄한 광경이 주는 묘미를 깨달을 리 없었다.


평지를 걷는 것보다 산행이 힘든 까닭은 물리적 현상에 근거한다. 중력에 역행해 외부 조력 없이 스스로 위치 에너지를 증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꾼들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노역에서 극기를 느낀다. 더 오를 곳 없는 정점에 앉아 하늘에 가까워진 신성한 기분, 면면부절한 산세를 만기친람 하듯 오시하거나 자연과 물아일체 되어 까마득한 홍진을 무심히 관조하는 호연지기를 만끽한다.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우러러보는 높은 곳을 동경했다. 네브카드네자르 2세의 바벨탑,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부터 현대식 초고층 빌딩의 화려한 펜트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압도하는 우뚝 선 건축물은 권위와 부의 상징이었다. 마천루를 소유함으로써 아찔한 고도와 탁 트인 전망에서 비롯된 우월감, 건물의 한정되고 희소한 상층부를 점유하는 사회적 위계, 하늘에 맞닿은 신성한 공간이라는 초월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명산의 정상에서 맛보았을 가슴 시원한 호연지기는 어쩌면 마천루를 갖지 못한 세인들이 권력과 부를 움켜 쥔 고독한 절대자가 되기를 갈구하는 욕망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오늘은 오 세브레이로까지 팔백 미터를 올랐다. 해발 천사백 미터에 위치한 오 세브레이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부활시킨 돈 엘리아스 발리냐 신부가 봉직했던 산간 마을이다. 프랑스 루트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곳으로 순례자들이 대체로 힘든 구간이라고 평하는 코스다. 누나에 부담되지 않을 거리로 일정을 짜 맞추기 위해 앞 뒤 구간들을 이리저리 조정하느라 나름대로 고생했다. 같이 걸었으면 누나가 살짝 긴장했을 이 길을 결국은 혼자 오르게 되었지만.


숙소에서 나와 2km가량 걸어 베가 데 발카르세에서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로 아침을 해결했다. 산을 올라야 하는 만큼 에너지를 충분히 보충했다. 일찌감치 집 앞에 나와 노니는 집냥이들이 높지막한 고개를 목전에 둔 순례자에게 힘내라며 아침 인사를 해줬다. 라스 에레리아스에 들어서기 직전 레온 대성당 중정에서 사진 찍어줬던 미국인 모녀를 만났다. 레온 이후에 이틀이 멀다 하고 만나 제법 친해진 그녀들이 옆에 누나가 없어 궁금해하길래 무릎이 여의치 않은 사정을 알려줬다. 모녀가 걱정 어린 시선을 띠며 쾌유를 응원했다. 고맙다는 대답과 함께 산길이 제법 가파른 거 같으니 페이스 조절에 유의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앞질러 갔다.


물기를 잔득 머금은 고요한 아침. 오 세브레이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순례자를 반갑게 맞아주는 집냥이들.


라스 에레리아스 중심가를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르막 길이 나타났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언덕길이 시작되었다. 계곡을 따라 오르던 포장도로를 벗어나 좁고 경사진 등산로에 들어섰다. 철의 십자가를 넘는 길은 탁 트인 능선길이어서 수려한 산세를 조망하기 적당했다. 반면 오늘 코스는 오밀조밀하게 우거진 나무 숲 사이로 난 산속 비탈길이다. 돌길 위에 듬성듬성 퍼질러진 말똥만 빼면 우리네 산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익숙한 경치다. 우리네 산과 다른 점이라면 인위적으로 계단을 설치하지 않은 것이다. 발 딛기 편한 곳에 적당한 리듬으로 보폭을 맞춰 오르는 맛이 제법 감칠만 했다.

어제 내린 비로 질척해진 길에 경사마저 제법 가팔라 숨이 차 올랐다. 습한 대기에 내뱉는 호흡으로 안경에 뿌연 김이 서릴 정도로 몸이 달궈졌다. 중간쯤 올랐을까? 얼굴에 송글해진 땀을 닦고 갈증을 해소할 겸 잠시 멈춰 숨을 골랐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당초 예상에 비해 난도가 높지 않았다.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에서 백운대 오르는 코스보다 쉽게 느껴졌다. 급하게 오르지 않고 천천히 숨만 고르면 누구든 오를 만했다. 정 자신 없는 분들은 배낭을 동키로 보내 가벼운 차림으로 오르길 추천한다. 이후 라 푸바를 지나 이삼십 분 더 걸어 무성한 숲을 빠져나왔다. 까미노에서 익숙히 봐 왔던 능선이 눈앞에 펼쳐지자 뜻밖으로 허탈한 감정이 몰려왔다. 각오했던 것보다 깔딱 고개가 짧았기 때문이다.


연두색 배낭을 멘 여성 순례자를 한참 따라 걸었다. 그녀의 속도에 맞춰, 명곡의 여운을 즐기며 산길을 올랐다. 아스팔트 내리막길에서 미국인 모녀와 인사를 나눴다.


이와 비슷하게 새 세상, 새로운 환경을 기대하며 잔뜩 긴장한 채 단단히 결의했음에도 막상 별반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서 무기력한 탈력감에 시달리기는 매한가지다. 혁명에 대한 기대가 매번 무산되는 정치적 허무주의를 노래한 명곡이 있다. The Who의 'Won’t get fooled again(133위)'이다. 노래는 이렇게 흐른다. 새로운 세상을 이끌 혁명의 성공에서 변혁에 대한 기대를 다짐한다. 그러나 체제의 근원적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계 앞에서 화자는 변화를 이끌지 못한 새로운 체제와 혁명의 좌절을 조소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애초에 들었던 혁명의 기치가 변질되지 않고 순탄하게 이행된 경우는 드물었다. 혁명의 정반합은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구체제의 모순과 그에 반하는 대립이 통일되는 진테제는 종종 의도치 않은 엉뚱한 결과를 자아내거나 구 체제에서 명분과 허울만 뒤바꾼 신 체제로 귀결되기도 했다.


The Who - Won’t Get Fooled Again(1971년, 133위)


국내 제일의 재담꾼을 한 명 꼽으라면 언제나 나는 진영과 상관없이 주저치 않고 이문열 작가를 선택한다. 그의 글은 다른 누구의 것보다 찰지다. 현실에 대한 날 선 문제제기, 현학을 버무린 적당한 냉소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그만이 지닌 독보 비전의 절기이자 이팔청춘 시절, 그에게 매료되었던 이유다. '사람의 아들(1979년)'의 아하스 페르츠가 예수를 통렬히 비난하는 장면은 언제 보아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율을 일으킨다. 그의 주요 작품들을 섭렵하다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미련 없이 손절했다. 낡고 모순된 문제투성이의 질곡 어린 현실(정)을 조롱하는 신랄한 비판,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재치 있게 뒤튼 해석과 삐딱한 반론의 부정(반)이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이야말로 이문열 소설의 백미다. 하지만 항상 거기까지였다. 명제와 부정을 잇는 부정의 부정(합)은 항상 기존의 낡은 구 체제를 그리워하는 향수로 끝나거나 그토록 갈망하던 신 체제의 부조리를 부풀리는 용두사미식 결착으로 마무리된다. 새로운 세상의 이상으로 인도할 것처럼 잔뜩 현혹하고 나선 뫼비우스의 띠에서 영원히 맴도는 답답한 현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라 은근슬쩍 권유한다. 아마도 작가는 노래 가사처럼 또다시 속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글을 쓰던 중 위법, 위헌적인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가 6시간 만에 해제된 믿기지 않는 변고가 발생했다. 온 국민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아 꼭두새벽까지 불안에 떨었으며 45년 전 광주의 비극을 기억하는 이들은 무고한 시민을 무자비하게 총칼로 짓밟은 군부 독재의 환영을 떠올려야 했다. 국회로 달려간 용감한 시민들이 없었다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었겠는가? 어찌하여 윤석열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는 정치적 자살을 선택했을까?


그의 추락은 주어진 권한을 사적인 목적을 위해 유용한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주가조작, 뇌물수수, 공천개입 등 아내의 범죄 혐의를 조사하려는 세 차례 특검 요구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일가친척과 측근 비리에 대한 특검을 모두 수용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야당을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불통 역시 불행의 씨앗이었다. 소수 여당이라는 한계를 무시하고 무소불위한 대통령 권한을 고집하며 거대 야권을 인정하지 않고 무한 갈등을 일으켰다. 야당의 정치적 공세가 거세질수록 그의 분노도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급기야 자신에 반대하는 야당을 ‘반국가 세력’이라는 기괴한 신조어로 적대시했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반국가 세력 척결이었다.


작년부터 줄곧 법조항이나 사전에도 없는 반국가 세력이란 표현에 집착했던 걸 감안하면 그는 대통령인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게 아니라면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에서 손바닥에 ‘王’ 자를 써넣은 촌극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을 왕이나 전제군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에게 대통령이란 만인에게 격노할 수 있는, 국가 경영을 즉흥적인 발상의 실험장으로 여기는, 정상외교를 호화찬란한 외유로 삼는, 구중심처에서 음주로 흥청거리는, 유아독존의 고독한 절대자였을 것이다.


근대적 국가론의 모태인 토마스 홉스의 견해를 따르자면 전제군주는 곧 국가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통용되는 자연 상태에서는 자신을 보존하려는 인간 본성의 욕구가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란 무질서를 피할 수 없다. 그는 사회 내부의 범죄와 혼란, 외부의 침략과 전쟁으로부터 보호받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신이 지닌 선천적, 자연법적 권리를 '하나의 인격'에게 양도하는, 일종의 사회계약인 '신약'을 맺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하나의 인격이 국가이자 전제군주다. 자신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양보한 주권은 오직 전제군주가 독점한다. 국민들은 그의 통치를 받는 신민이 된다.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주권자인 전제군주가 노력하는 한 신민은 주권자에 대항할 수 없다. 평화와 안전을 위해 -비상계엄선포와 같은- 어떤 일을 할 지도 통치권자인 전제군주가 판단할 몫이다.


윤석열의 국가관은 홉스의 전제군주제와 궤를 같이한다. 자신에 반대하는 야당과 언론, 사회단체를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비상계엄 하에 '처단'하고 군대를 동원해 국민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는 반헌법적인 시도는 다른 국가관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21세기 민주국가의 정상적 시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전제군주를 이상으로 여긴 그가 착각한 사항이 있다. 바로 비상계엄은 국민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수단이 아니라 국헌을 문란한 내란이자 폭동이었다는 점이다.


우리 형법은 무죄추정을 원칙으로 한다. 범죄의 증거가 불확실하면 피고인의 이익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부부의 경우를 살펴보자. 지금까지 드러난 직간접적인 증거는 그의 아내인 김건희가 주가 조작과 뇌물 수수, 공천개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를 검찰이 제시하지 않고 있다. 찾지 못한 것이든 고의적으로 은폐한 것이든 검찰의 의중이 어떻든 간에 백번 양보해 김건희는 무죄추정의 원칙상 피의자다. 범죄여부는 검찰이나 특검에서 충실히 조사해 법정에서 따져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은 현행범이다. 헌법에서 규정한 계엄 요건에 해당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직권남용이다. 계엄법이 규정한 국회의 해제 결의를 무산시키기 위해 국회를 봉쇄하였고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체포하려 했다. 계엄군을 직접 지휘했으며 국정원을 동원해 불법 감청과 추적을 지시하였다. 헌정을 문란케 한 내란 행위다. 이 모두가 자신을 국가로 망상한 전근대적인 국가관에서 비롯된 폭거다.


뭉게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듬성듬성 보이는 능선을 시원하게 걸었다. 산간 마을 라 라구나에서 숨을 골랐다. 순례자들로 혼잡한 바를 찾는 대신에 어느 한산한 주택 앞에서 쉬었다. 말을 타고 순례하는 가족이 지나갔다.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이벤트라 여기면서도 꽤 험한 길에 순례자를 등에 태우고 버겁게 오르는 말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당근이라도 있으면 하나씩 주려만.


MTB로 순례를 하는 라이더, 말을 타고 오 세브레이로를 향하는 가족. 대자연 속에서 각자의 방법대로 순례를 이어간다.



레온주와 갈리시아주를 가르는 경계선을 넘었다. 나바라, 라 리오하, 카스티야, 레온을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있는 갈리시아에 들어섰다. 주 경계석에서 저마다 기념 포즈를 취한다. 경계석만 찍고 가려는데 카리온에서 만났던 아르헨티나 부부가 왔다. 반갑게 웃으며 사진 찍어 주겠다고 하니 환영한다. 나도 서보라길래 기념 삼아 흔쾌히 사진을 남겼다. 오 세브레이로에 도착했다. 이른 점심시간이었지만 순례자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순례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산타 마리아 성당을 둘러보았다. 오늘 목적지인 리나레스가 3.3km 남았지만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떤 메뉴를 고를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건 소금과 후추에 절인 반건조 돼지고기. 우리로 치면 짭짤한 수육이다. 늦은 브런치로는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레몬 콜라를 곁들어 찬찬히 먹었다. 소주나 와인 안주로 딱일 텐데 내게는 언제나 그림의 떡이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 고기를 포식했다. 산행에 소진한 기력을 채우기 적당했다.

상당수의 순례자들은 오 세브레이로에서 멈췄을 것이다. 작은 산중 마을이 순례자들로 득시글했다. 오늘 일정을 일찌감치 마무리한 순례자들이 쨍한 햇볕아래 마을을 둘러보며 망중한을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리나레스로 향했다. 열두 시가 넘어서 그런지 오 세브레이로를 떠나는 나그네들을 거의 없었다. 무성한 숲 사이로 이어진 한적한 능선길, 풋풋한 나무 내음 가득한 산길을 혼자서 독점하는 기분이 하늘을 날 듯 상쾌했다. Steppenwolf는 떠돌이 바이크 라이더의 삶을 찬양했다. 그의 명곡 'Born to be wild(129위)'와 함께 흥얼거리며 걸었다. 한식경이라도 가끔은 이렇게 혼자만의 세상을 즐기고 싶었다. 이 맛에 순례하는 거지 하면서.


혁명의 현실이 실망스러울지라도 혁명을 싹 틔울 무렵엔 순수한 초심으로 개혁의 이상을 그렸을 것이다. Elton John의 'Your song(136위)'는 무명의 작사가 버니의 풋사랑 감수성을 맛보게 해 준다. 당신이 있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은 내 노래. 이 노래는 당신을 위한 것. 이 곡은 엘튼과 버니가 처음 만나 작업한 곡 중 하나다. 첫사랑의 진실한 감정으로 작곡된 이 노래는 이혼문제와 자녀 양육에 치였던 이십 대 중반의 버니의 심정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가난한 시절에 만든 순수한 초심을 그린 노래에서 선진국 대열에 바짝 다가선 한국 사회가 가져야 할 초심이 무엇인지 숙고했다.


Elton John - Your Song(1970년, 136위)


리나레스의 알베르게 Rina Dor Rai에 도착했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듯한 신축 건물에 깔끔한 시설이 마음에 들었다. 앞마당 아래로 새하얀 뭉게구름과 멋들어진 산세가 펼쳐졌다. 세탁기로 돌린 옷가지를 뙤약볕에 널어 말렸다. 오랜만에 공용 주방에서 요리를 했다. 스파게티 면을 삶고 토마토 볼로네제 소스를 버무렸다. 비록 인스턴트 소스를 끼얹은 스파게티였지만 근사한 셰프가 된 것처럼 즐겁게 조리했다.


리나레스에서 보낸 오후는 정말 안락했고 평화로웠다. 시공간을 옮겨와 일 년 반이 지난 한국은 비상계엄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윤석열은 아직도 군 통수권과 행정부 수반의 직을 yuji 중이다. 여당은 자신들의 보신을 위해 권력과 행정기능이 진공상태로 빠져드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국가를 존재케 하는 유일한 목적인 누구도 침해하지 못할 개인의 자유와 안전, 평화를 위해 천부적 주권을 하나의 통일된 인격, 국가에 양도한 사회계약이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되길 바란다. 그게 보수의 품격이자 존재의 이유다.


산타 마리아 성당, 순례자를 태웠던 말, 리나 도르 레이의 거위 가족. 그날의 평화로운 일상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한국에서 쿠데타가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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