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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Sep 04. 2022

[서평, 리뷰] 성장의 길, 북인도 히말라야

진정한 돌마로 거듭남을 기대하는 길

 「성장의 길, 북인도 히말라야」는 거칠부 작가가 79일 일정으로 61일간 북부 인도 라다크와 시킴을 트레킹 한 기록을 담았다.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걸은 후에 인도로 넘어온 그녀는 라다크 잔스카르와 창탕 고원, 시킴의 라바라패스 그린레이크와 종그리탑 고에치라의 여정을 가졌다. 가이드가 지어준 현지어 ‘돌마’라는 이름에 무색하게 미움과 분노를 한가득 담아 시작했던 트레킹이 점차 평온해져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과연 그녀는 진정한 ‘돌마’로 거듭날 수 있을까?


  작가는 책을 시작하자마자 떡밥을 크게 던졌다. 여정 이틀이 되자 나타났다는 위험한 동반자가 누구일까 몹시 궁금했다. 외딴곳에서 돌변한 현지 세르파일까? 아니면 트레킹에서 우연하게 길을 동행하게 된 여행객일까? 이도 저도 아닌 트레커를 노리는 강도였다면 매우 위험했을 거라며 걱정이 앞섰다. 이런 내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린 위험한 동반자는 저자가 온라인에서 모집한 라다크 트레킹에 동참한 6명의 한국인들이었다.


  여럿이 가던 혼자 가던 북인도 히말라야 트레킹은 가이드와 셰프, 마부를 써야 한다. 고정 경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가는 라다크와 북부 시킴 일정에 동행할 회원을 모았다. 라다크 트레킹은 6명이 참여했고 북부 시킴 코스는 2명이 모였다. 그런데 라다크 일정을 같이 소화하려던 6명의 일행에서 문제가 생겼다. 다들 남자라서 그런지 처음 만나는 날부터 술자리를 갖더니 어느새 하나로 뭉쳤다. 패거리 중 최연장자가 자연스럽게 리더 역할을 했다. 암암리에 서열이 생겼고 최연장자는 자신이 대우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트레킹에 방해될 정도로 횟수가 잦고 정도가 과한 음주가 싫었던 작가는 꼰대스럽고 남성, 군대 문화 같은 분위기에 거부감이 들어 거리를 두었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일부 일행들의 노골적인 막말과 거친 언행이 시작되었다. 라다크 초기 일정은 어느새 작가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걸어야 했다. 파랑라를 넘어 키버까지 완주는커녕 여행을 중단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다.


  파키스탄에서 누군가를 지독히 미워했던 작가는 그 업보를 받는다고 여겼다. 그녀는 법구경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아무에게도 거친 말을 하지 말라. 받은 자가 그에게 돌려보낼 것이다. 격정의 말은 고통을 야기하니 되돌아온 매가 그대를 때리리라”


  사실 술을 즐기기로는 두 번째 동행자들이 더 심했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에겐 거부감이나 적대감이 없었다. 왜일까? 라다크를 마무리하며 마음의 여유가 생긴 점이 한몫했다. 그러나 J와 S가 작가를 먼저 정중하게 대한 연유가 더 컸다. 앞선 이들이 불평불만을 내세웠고 트레킹을 제안한 작가를 여행사나 가이드로 여긴 것과 차이가 났다. 작가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섭섭함 이상의 감정이 쌓였다. 다만 일정을 소화하며 그녀의 미움과 분노는 점차 눈 녹듯 사그라진다. 트레킹을 중간에 포기한 일부 일행들의 급하게 마련한 새로운 일정이 잘 마무리되기를 기원해주기도 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작가 편에 서서 그녀를 이해하고 위로할지 모른다.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작가 역시 모임을 제안하고 주선한 리더로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부족하고 배려심이 적었다는 입장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그들의 자존심을 배려하지 않았고 부족한 경험을 외면했으며 불평불만으로 원하는 바를 말하는 소통방식을 이해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을 데려와 놓고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전체를 보지 않고 혼자 걸을 궁리만 했음을 인정한다. 자기만이 옳았다고 강변하지 않는다. 작가는 어찌 보면 합리적인 에고이스트이다. 자신이 피해를 받지 않는 한 다른 이들에게 너그럽고 관대하다. 고생하는 네팔 셰프 스태프들에게 팁을 먼저 주었고 가이드 역할을 부적절하게 한 롭상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그의 진심 어린 반성에 흔쾌히 사과한다. 일정을 마치고 헤어지는 모든 스태프들에게 현지어 철자로 이름을 적은 팁 봉투를 나눠 줄 정도로 인정이 많다.


  그러나 딱 그만큼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동안 한 번도 텐트 치기 좋은 자리를 누구에게 양보한 적이 없고 오히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두르기까지 했다. 불편한 일행이나 스탭이 있으면 아량을 베풀기에 앞서 치미는 역정을 애써 누르곤 한다. 그녀를 이해해주고 돌봐준 Y에 한없이 우호적이면서도 자신처럼 겉도는 H를 감싸려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본문에 직간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작가는 과거에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아 자기방어 기제가 강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모습 때문에 파키스탄에서와 달리 스텝들이 롭상이 지어준 ‘돌마’라는 현지어 이름을 부르지 않은 건 아닐까?


  작가는 “신은 내게 불안한 동행자들과 훌륭한 스태프를 함께 보내주었다”라고 할 만큼 북인도에서 만난 모든 스태프들에게 고마워했다. 트레커를 위협하는 위험한 동반자가 결코 아니었다. 불안한 치안에 여행이 꺼려지는 인도의 이미지와 달리 북인도 히말라야 현지인들은 선하고 인정이 많다. 티베트 불교 영향이라 여겨진다. 그들에게 불교는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 자신을 위하여 열반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고 타인의 해탈을 돕는 게 진정한 대승 불교의 길이라고 믿는 이들이다. 내게 이질적이란 선입견이 큰 티베트 불교가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 교리를 묵묵히 실천한다. 우리 기독교야말로 이를 외면한 채 자신과 자식들만의 행복과 구원을 앞세운 구복 신앙과 하나님의 것일 교회 재산을 어떠한 주저함 없이 세습하는 목회자의 추태가 부끄럽다.


  히말라야 경관은 지역에 따라 다채롭다. 네팔은 내로라하는 설산이 대표적이다. 파키스탄은 첨봉과 거대 빙하, 초원과 야생화를 뽐낸다. 라다크의 풍경은 기이하고 독특하다. 그곳에선 예상할 수 있는 풍경이 없다. 잔스카르는 붉은 바위산과 협곡의 땅이다. 멍이 든 것처럼 푸르뎅뎅한 산, 특정 광물로 자주색 반점이 덮여 있거나 커피에 아이스크림을 휘저은 듯한 산들이 가득하다. 동쪽의 평평한 땅이란 뜻의 창탕 고원은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처럼 주변 풍경의 변화가 없다. 시킴은 모든 게 왕성하게 살아 있어 곳곳에 생기가 넘치면서 우아하고 기품 있는 칸첸중가를 자랑한다. 작가는 히말라야 서쪽의 척박하고 황량한 풍경을 좋아했다. 눈 덮인 설산보다 마음이 끌렸다. 나도 메마르고 거친 생태 환경과 원시림 가득한 밀림을 동경한다. 라다크와 시킴을 읽자니 북한의 개마고원 걸을 수 있는 날이 손꼽아진다. 내 생애에 그날이 오기를 희망해본다.


  메마른 땅을 메마른 마음으로 걷던 작가에게 까망이와 갈색이가 나타났다. 라다크 트레킹의 마지막 6일을 두 녀석과 같이 했다. 아니 까망이 누나까지 세 녀석이다. 녀석들은 때때로 앞서가고 때때로 기다려주며 작가 일행과 함께 걸었다. 작가는 주저 없이 녀석들을 히말라야에서 만난 최고의 동행 중 하나로 꼽는다. 라다크 일정을 마치기까지 Y의 헌신이 있었다면 지옥 같은 심정에 평화의 꽃을 가져다준 까망이와 갈색이는 관음보살의 현신 일지 모른다.


  작가는 단독 일정으로 진행한 시킴의 모든 것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만큼 모든 일정을 흡족해했다. 거기에 화룡점정을 더해야 한다. 바로 그린레이크의 아침 해와 종그리탑의 황홀한 일출이다. ‘다섯 개의 위대한 눈(雪)의 보고’라는 칸첸중가의 아름다운 장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지리산 일출은 3대의 음덕이 쌓여야 가능하다고 한다. 단 하루만 쨍한 해를 볼 수 있던 그린레이크 트레킹에서 그 장관을 볼 수 있다면 조상 몇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궁금하다.


  7 년 전 산악회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트레킹 했다. 학수고대했던 정모였지만 건강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움이 컸다. 회원들이 보내준 ABC 일출은 황금성 그 자체였다. 칸첸중가 일출 역시 그에 못지않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작가의 경험을 밑천 삼아 수년 내로 그린레이크와 종그리탑 트레킹을 할 작정이다.

칸첸중가 일출(본문 사진, 좌) ABC 일출(중), 히말라야 설산(우)


  병풍을 펼쳐 놓은 것처럼 하얀 설산이 눈앞에 있고 그 정상위로 황금빛이 물드는 칸첸중가. 작가는 북인도 히말라야 일정의 모든 고생과 마음의 질곡을 모두 보상받았다고 했다. 더불어 언젠가는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돌마’는 얽매임으로부터 풀려난 여성을 의미한다. ‘자비의 보살’이자 깨달음에 이른 첫 번째 여성이다. 매 번의 여행에서 시험에 들었고 그때마다 번번이 오답을 골랐던 작가. 그녀는 “여행은 딱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자신의 선택이자 그 결과는 불편한 감정까지도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 할 정도로 지혜롭다.


  나는 그녀가 칸첸중가를 다시 찾을 때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만 함께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Y, J, S, 까망이와 갈색이, 롭상, 까지, 릴 아저씨, 꺼비, 마부 소남, 계초, 남걀, 시킴에서 만난 비노드, 에디, 소남과 여타의 스태프들의 마음까지 동행하기를 원한다. 단지 그뿐이 아니다. 라다크에서 그녀를 힘들게 했던 H와 일정을 중간에 포기한 4명과 파키스탄에서 그녀가 미워했던 이까지, 그들에게 품었을 미움과 분노의 감정도 윤색없이 그대로 가져갔으면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섯 개의 위대한 눈의 보고 앞에서 떠오르는 황금빛에 사바세계의 희로애락을 모두 녹여 없애어 그녀가 우주만물에게 너그러울 진정한 ‘자비의 보살’로 승화하여 남은 히말라야 트레킹을 이어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옴 마니 반메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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