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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Jan 31. 2023

[1] 대장정 첫 5일의 준비사항(2)

구글 없는 세상이 얼마나 불편할까?

1. 순례에 앞서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또 이단을 혐오하고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는 원리주의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 모든 종교를 거부하지 않고 인정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힌두교나 세계 여러 나라의 토착신앙은 내게 낯설고 생소할 뿐이지 굳이 배격하지 않는다. 이 같은 종교에 대한 내 태도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맨 처음 접했을 무렵 곧바로 걷고 싶던 배경일지 모른다. 산꾼들은 그저 산이 있기에 오른다. 나 또한 요일 정오 가까이 내리기 시작하면 주말이 저문다는 부담과 상관없이 무작정 배낭 둘러매고 청계산이나 북한산으로 달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인적이 드문 눈 쌓인 산길을 홀로 걷는 재미란 아는 이들만 알 이다.


순례는 왜 하는 것일까? 순례객, pilgrim의 사전적 정의란 종교적 의미가 있는 장소를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사람이다. pilgrim은 라틴어 peregrinum에서 유래되었다. 페레그리외국인을 뜻한다. 고대 로마인들 입장에서 성지인 로마 바티칸을 찾아오는 순례객들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성지 순례를 하는 여행객들은 외국인 비중이 훨씬 더 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종교적 의미를 찾기 위한 성지 순례를 하려는 게 아니다. 처음 접했던 순례길의 강렬한 풍경에 매료된 탓이다. 밀밭이 온 사방으로 펼쳐나가 저 멀리 지평선까지 맞닿은 메세타 한눈에 사로 잡혔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경치. 세상 절반이 하늘이고 나머지가 밀밭 몽환적인 세상에 서고 싶었다. 글래디에이터의 엔딩 장면, 황금빛으로 누렇게 익어가는 밀알의 솜털사이로 손을 으며 걸어가는 막시무스 데시무스 메르디우스(러셀 크로우)처럼 내 눈앞에 무엇이 서 있을지 궁금했다. 스페인 시골에서 살지 않기에 잠시 지나치고 머무는 여행객으로서 힘든 농사일이 이어지는 현실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까미노가 주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pilgrim이란 외국인에게 단지 목가적으로 다가선다. 이런 한계가 있음을 알지만 800km의 희로애락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루트가 있단지 걷고 싶은 것이다.


2. 까미노 기행의 아우트 라인

까미노에 가겠다고 결심했지만 한국 직장인의 현실에서 근 40 여일을 휴가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이유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2달의 휴가가 주어졌다. 직장 생활하며 여러 차례 이직하는 과정에서도 휴식 없이 바로 출근했던 내게 소중한 리프레쉬이자 주저 없이 순례 장정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당초에는 거의 두 달을 까미노에 있을 작정이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 다음, 누나를 귀국시키고 포르투로 넘어가 포르투갈 길을 으려 했다. 아쉽지같이 돌아오자는 누나의 권유와 순례길 동반이란 취지를 고려해 포르투갈 길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동행 귀국하기로 했다. 남은 휴가는 해파랑길을 걷거나 자전거로 국토종주나 제주도 일주에 활용하려 한다.   


순례 여정의 첫 3일을 다소 타이트하게 짰다. 파리 도착해서 당일 밤 생장 피에드포트에서 1박 하고 다음 날부터 바로 순례하도록 일정을 잡았다. 까미노 중에 대도시에서 하루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할 가능성을 고려했다. 생장 피에드포트에서 론세스바예스 구간은 프랑스 길을 시작하자마자 맞이할 난코스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24km를 걸어야 한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상황이거니와 누나가 요즘 순례를 앞두고 매일 10km가량 걷 지만 7~8kg의 배낭을 바로 피레네를 넘기에 무리가 따를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래서 순례 의미를 희석시키더라도 순례 초반부는 어느 정도 플렉스를 찾았다. 비행기 좌석을 승급했고, TGV을 1등석으로 예매했다. 올해 환갑이 되는 누나 덕분에 60세 이상 승객의 20% 할인을 받아 2등석 운임과 차이가 크지 않다. 생장에서 9km 떨어진 보르다 알베르게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스페인 첫 도착지인 론세스바예스에 들어서게끔 스케줄을 잡았다. 까미노의 대다수 알베르게에 비해 숙박비가 다소 비싸더라도 편하게 쉴 겸 생장 피에드포트와 보르다 모두 독실로 예약했다.

 

코로나 전에 보통 하루 예산을 1km 당 1유로로 잡는 게 일반적이었다. 알베르게 숙박비 6~8유로, 저녁 10~12유로, 나머지는 아침과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는데 충당한다. 커피 한 잔에 1유로이니 근사한 메뉴가 아니라면 충분히 가능한 예산이다. 사립 알베르게를 이용한다면 숙박비용이 30~40%가량 더 소요될 것이고 식사는 메뉴에 따라 천양지차이니 1km 당 1유로는 호사스럽지 않게 적당한 수치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는 물가 이상으로 까미노 비용이 오른 거 같다. 네이버 카페 까미노 친구들 연합(까.친.연. 2.1)에 올라온 게시글을 참조하니 하루 50유로 전후가 필요해 보인다. 공립 알베르게 숙박비 10~12유로, 저녁식사 15~20유로면 최소 25유로에서 최대 32유로가 지출된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하루 30유로 중반 이하로 버티기 힘들다. 이제는 1km당 2유로가 기본이지 싶다. 순례의 고행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궁핍하지도 호사스럽지 않게 지출할 생각이다.  


구체적인 순례일정을 잡는데 까미노 필그림(Camino Pilgrim) 앱과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Caminocorea.org)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까미노 코레아는 프랑스 길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이미 까미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많다. 순례일정을 37일로 설정해 매 구간별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구간 내에 있는 마을들의 소개와 볼거리 정리되어 있다. 구간별로 각 루트의 세세한 지도가 제공되어 모두 다운로드하여 출력해 놨다. 순례를 시작하면 매일 한 장씩 지도를 버리는 재미가 기대된다. 혹시나 싶어 핸드폰과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도 해놨다. 까미노 필그림 앱 역시 순례 일정을 관리하기 편하다. 내가 계획하는 대로 출발지와 도착지를 자유롭게 입력할 수 있다. 저장된 매일매일의 루트를 누르면 구간 내 마을에 있는 각종 시설(알베르게, 카페, 레스토랑, 잡화점, 은행/ATM, 음수대, 병원과 약국, 교통편 등) 유무가 표시되어 있다. 또한 해당 마을을 누르면 마을에서 영업 중인 모든 알베르게의 연락처와 시설 내역(취사가능, 와이파이 제공, 세탁기, 드라이어 등), 숙박비를 알 수 있다. 내가 짜 놓은 루트가 하루 몇 km이고 마을마다 남은 거리가 제시되어 편리하다. 순례를 하게 되면 아마 다음 날 도착지의 알베르게를 선택하고 예약할 때 까미노 필그림 앱을 가장 먼저 찾게 될 게 자명하다. 실제 수비리와 팜플로냐의 사립 알베르게를 고를 때 이 앱을 참고했다.        

   

3. 숙박지 예약

생장 피에드포트의 숙박지는 Plan B이다. 작년 항공권을 구입한 다음 바로 정한 호스텔이다. Booking.com에서 예약했다. 지역 내에서 상위권의 평점이었고 투숙객들의 리뷰가 호평 일색이다. 요금은 전용 화장실이 딸린 단독 3인실 기준 77유로였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예약해서 저렴하게 잡을 수 있었다. 원래 체크인 마감시간이 오후 6시까지이나 메일로 오후 8시에 도착할 가능성이 크다고 연락했더니 8시~9시까지 기다리겠다는 답신을 받았다.


피레네 산 중에서 하루 묵을 곳으로 Borda 알베르게를 택했다. 이곳을 모른 당시에는 오리손에 예약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소 불친절한 응대와 노후된 시설에 불만이 높은 리뷰가 마음에 걸리던 차에 우연히 보르다 알베르게가 몇 년 전부터 운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영자에게 예약문의 메일을 보냈더니 내년 4월 예약은 12월에나 받는다는 답을 받았다. 12월이 되자 기쁜 마음에 다시 연락했는데 시즌 오프로 휴가 중이란다. 12월 중순에 예약하라길래 20일경 재차 문의하니 아직 예약을 받지 않지만 내게 한정하여 임시로 예약사이트(www.aubergueborda.com) 오픈해 준다고 했다. 바로 사이트에 접속하여 2인실 독방을 예약하고 결제를 마쳤다. 홈페이지 사진에서 싱글베드 2개를 붙여 큰 싱글 베드로 세팅해 놨길래 추가 베드나 소파가 제공되는지 물었다. 내 의를 확인하고는 싱글베드 2개를 따로 배치해 주기로 했다. 보르다에서 하루를 자는 덕분에 전후 일정에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산 중에서 피레네 일몰과 은하수를 감상한다 상상하니 없던 기운이 절로 생기는 기분이다.


순례길의 스페인 첫 번째 도착지에서는 페레그리노스 공립 알베르게에 머물기로 했다. 스페인 알베르게의 첫날밤인 만큼 저녁은 알베르게의 순례자 메뉴로 할 예정이다. 수리비까지 지나는 마을에 끼니를 해결할 곳이 마땅치 않아 조식과 피크닉까지 신청하였다. 순례하는 동안 가급적 공립 알베르게로 잡으려고 한다. 시설면에서 사립보다 편의성이 떨어지겠지만 순례 의미를 느끼기에 적당할 거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공립 알베르게가 선착순으로 운영되기에 최소한 4시 이전에 도착하도록 출발 시간과 당일 순례일정을 조절해야 한다.


당초에는 론세스바예스까지만 숙소를 미리 예약하고 이후로는 공립 알베르게를 시도해 보고 여의치 않을 경우 전일 혹은 당일 오전에 사립을 예약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까친연 카페에서 4월 중에 떠나는 한국 순례객들이 만만치 않고 이미 수리비와 팜플로냐까지 인기 있는 숙소가 만실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상보다 순례객들이 많아질 경우 수리비에 늦게 도착하게 되면 6km  떨어진 라라소아냐까지 가야 한다. 또 팜플로냐에 들어가는 날이 토요일이란 사실도 간과했다. 서둘러 수리비와 팜플로냐 알베르게를 검색했는데 인기 있는 수리비의 리오 아르가 알베르게나 팜플로냐의 플라자 카테드랄 알베르게와 알로하 호스텔이 만실이었다. 예약 취소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차선을 선택하는 나을 듯싶어 잘디코, 카사 이바로라 알베르게를 예약했다. 숙박요금이 확실히 올랐다. 수리비 잘디코 알베르게는 14유로, 카사 이바로라의 경우 19유로다. 일정 관리에 요일 구분이 필요함을 느껴 엑셀파일에 요일란을 추가했다.


수리비와 팜플로냐 알베르게를 예약하는 과정에서 구글 번역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잘디코를 예약할 때 메일을 주고받으며 확정했는데 운영자인 오스카는 스페인어로 메일을 보내왔다. 번역기로 돌리니 내 의사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고 왓츠앱에서 대화방을 만들었다. 미리 결제를 하지 않은 만큼 전일 혹은 당일 오전에 왓츠앱에서 도착 여부를 확인해 주기로 약속했다. 카사 이바로사 홈페이지는 스페인어만 제공되는데 크롬 브라우저의 자동번역으로 무리 없이 예매와 결제를 마칠 수 있었다. 구글 번역기가 제대로 한몫을 해냈다. 


이뿐이 아니다. 일정을 짜는 데에 구글 지도 역시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 길의 경로가 어떻게 진행되고 숙소가 어디쯤 위치한 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경험자들이 추천한 현지 맛집이 과연 믿을 만한지 구글지도에서 리뷰를 확인하기 너무 편했다. 유심이 잘 터지지 않는 지역을 지날 때 애로사항이 생길지 몰라 미리 구글오프지도를 주요 경로마다 다운로드했다. GPS가 내 위치를 파악하므로 설사 통신망에 접속되지 않아도 경로를 확인하고 길을 찾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해외에서 자유 여행을 할 때 구글의 역할이 얼마나 막강한지 체감하는 계기였다. 구글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걸 실감한 순간 바로 PC와 모바일의 기본 브라우저를 근 30년가량 써왔던 익스플로러에서 크롬으로 변경했다. 아울러 그동안 모은 여행에 필요한 각종 자료와 티켓을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했다.


토마스 칼라일은 인간은 도구 없이는 무능하지만, 도구를 쥐면 모든 것을 가진 존재가 된다고 했다. 구글은  일종의 만능 여행키트이다. 내가 여행에 무기력하고 무능해지지 않기 위해서 구글에 한층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4. 깨알 같은 준비

우리의 까미노 대장정은 42일로 예정돼 있다. 60일짜리 국내 유심은 대개 3GB를 제공하여 데이터가 턱없이 적다. 30일짜리 유심이 2개 필요하다. 그래서 국내에서 30일 10GB. 통화 300분짜리 유심을 구입하려고 한다. 계획한 대로라면 23일째 레온에 도착할 것이다. 레온에서 28일짜리 스페인 현지 유심을 추가로 구매할 예정이다. 굳이 레온에서 하는 이유는 데이터가 100기가이고 EU 내에서 무제한 통화가 가능한 데 있다. 순례 장정의 후반부라면 몸은 좀 고단하겠지만 까미노에 꽤 익숙해졌을 시기다. 여유가 생긴 만큼 유튜브나 음원을 충분히 감상하려면 국내에서 2개를 준비하는 것보다 현지에서 하나를 사는 게 현명하다.


프랑스길의 고산 평원지대를 통과할 때 비바람이 거셀 경우 어설픈 일회용 비닐 우의나 판초로는 부족하다. 바람에 휘말려 우의가 휘날려 비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지퍼로 여닫는 코트 스타일의 우의를 준비했다. 누나를 위해 스패 하나를 챙기고 나는 피엘라벤 캡 트라우저에 왁스 칠해 방수기능을 높이면 어지간한 돌풍을 동반한 폭우라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순례길 같이 장거리 트레킹시 자기 체중의 10% 이내 무게로 배낭을 꾸리라는 게 정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통 권장되는 범위는 체중의 10~20% 사이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한계치는 30%이다. 애써 짐을 많이 꾸릴 필요도 없거니와 10%에 맞추려고 굳이 골머리를 싸맬 이유도 없다. 내 몸이 걷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 필요할 텐데 이 기간을 버텨낼 무게면 된다고 본다. 내 경우 겨울 지리산을 종주할 때 1.8리터 생수병 3통을 넣고 이리저리 꾸리면 10kg을 훌쩍 넘는 무게가 다소 벅차긴 지만 3일 종주산행을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었다. 예전만큼 장거리 산행을 하지 않는 요즘에는 한강변 30km를 작은 배낭에 10kg 모래주머니 넣고 다녀도 허리와 어깨, 승모근이 상당히 당겼다. 하지만 내 체중의 10%는 지금이라도 하루 산행을 하는데 전혀 무리가 되지 않는다.  순례를 떠나기 전에 2월부터는 일정 무게를 지고 20여 km를 걷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현재로서는 한국 출발 시 배낭 포함 패킹한 무게를 8kg 이내로 맞출 작정이다. 그래야 당일 마실 생수와 적당한 요깃거리를 짊어져도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순례를 하는 대장정에 무리한 과욕은 금물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순례가 고행 아닌 고행일 텐데 전혀 부담되지 않을 짐을 지기에는 장정의 의미가 가벼워지는 것 같다. 목표이론처럼 적당히 어렵고 부담되는 인생의 짐을 지고 걸어야 제대로 나를 돌아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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