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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Jan 12. 2024

백숙이네 막둥이, 이브

우연한 필연으로 찾아온 묘연

  2023년 12월 20일. 길냥이 백숙이의 다섯째 막둥이 꼬치를 구조했다. 평소에는 사료를 채울 잠깐의 인기척에도 후다닥 도망치던 아이였다. 십여 일쯤 전부터 눈곱이 심하게 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더니 그날은 겨울집 안에서 미동조차 없이 웅크려있는 상태가 심상찮아 보였다. 막둥이로 태어난 꼬치는 동배의 남매보다 체격이 왜소하고 식사량이 적어 무사히 자랄지 꽤 걱정되었다. 그런데 최근 통 먹지를 못해 기력을 소진한 것 같아 어머니 댁 빈 방에 서둘러 데려왔다. 따뜻한 방에서 몸이 풀리면 힘내어 뭐라도 먹겠거니 했는데 전혀 움직이질 못했다. 강제로라도 먹이기 위해 입술에 습식 사료를 묻혀줘도 혀로 한 두 번 핥을 뿐 먹을 기미가 없었다.  

 

  이대로 두면 큰 일 나겠다 싶었다. 집 근처 동물 병원에 데려갔다. 다행히 신속항원검사에서 범백은 아니었다. 허피스에 걸려 결막염이 심각하고 기생충에 감염되었으며 탈수 증상이 심하다는 진단이었다. 생후 10주 전후로 추정되는 아이 몸무게가 650g에 불과했다. 수액을 맞고 약을 투약한 후에 일주일 복용할 약과 안약을 처방받아 귀가했다. 만일 아이 상태가 더 나빠지는 듯하면 지체 말고 병원에 다시 오라는 유의 사항을 안내받았다. 불행히도 귀가한 이후 서너 시간이 지나도록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앉아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더니 급기야 옆으로 픽 쓰러져 일어날 줄 몰랐다. 아무래도 전문의가 돌보는 게 맞을 것 같아 입원이 가능한 24시 동물 병원에 달려갔다. 입원 첫날에도 스스로 먹지를 못해 강제 급식을 시켰으나 포도당 수액을 맞고 힘이 좀 나는 지 이틀째부터는 자율 급식이 가능해졌다. 입원한 지 만 5일이 되는 날 10 일치 약을 처방받아 퇴원했다. 퇴원 시 몸무게는 920g. 여전히 심한 저 체중이나 그래도 최악의 국면이 지난 듯했다.


입원 첫 날의 이브 : 세안을 하고 수액을 맞아 발견 당시보다 나아진 모습이지만 안쓰럽긴 매한가지다.

  

    이내 고민거리가 생겼다. 미숙아로 태어나 건강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꼬치를 한 겨울에 곧바로 방사할 순 없었다. 하늘이 준 묘연이니 식구로 받아들여야 했다. 문제는 어머니 댁에서 꼬치를 거두기 힘든 상황이란 점이다. 그렇다고 당장 어디로 입양을 의뢰하기도 어려웠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어쩔 수 없이 무리 있어도 어머니 댁에서 키워야 한다며 누나들에게 억지로 떠밀 듯 결론지었다. 귀가하는 내내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이런 상황을 어렵사리 솔직하게 털어놨다. 유달리 낯섦에 예민하고 겁을 내는 하쿠와 타타가 꼬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걱정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거두기로 결정했다. 지난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어렵게 입양을 결정했다. 성탄 전야일에 식구가 되었다는 의미로 꼬치의 이름을 새로 '이브'라 지어줬다. 이렇게 이브가 우리 네 가족과 한 식구가 되었다.    

  

입양 후 건강을 회복해가는 이브


  꼬치였던 이브의 엄마는 백숙이다. 내가 어미 백숙이, 자식 마늘이 모자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23년 7월 중순 경이다.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오느라 두 달 만에 어머니 댁을 찾은 때였다. 폭염이 들이 쬐어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 막히는 뙤약볕 아래서 삐쩍 마른 턱시도 무늬의 새끼냥이 비틀대며 풀을 뜯는 걸 보았다.  백숙이 모자가 오뉴월부터 어머니 베란다 밖 공터에 나타났다는 얘기를 가벼이 흘려 넘길 수 없었다. 창문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어미 백숙이도 다 큰 성묘라 하기엔 체구가 꽤 작아 보였다. 잘해야 한 살 즈음 되었으려나? 어린 냥이가 더 어린 새끼를 낳은 것부터 마음이 아렸고 무엇보다 손바닥만 한 아깽이가 골격이 다 드러날 정도로 말라 힘에 겨운 듯이 발걸음을 간신히 떼내어 먹을 걸 찾아 풀잎을 킁킁거리며 씹는 모습에 가슴 시렸다.

 

  '먹을 건 고사하고 마실 만한 깨끗한 물을 구할 순 있을까?', '다음 달엔 더 무더울 텐데 제대로 먹지 못하면 견디기 어려울 텐데 걱정이네'. 이런저런 근심이 나를 짓눌렀다. 옆에서 누나가 결정적으로 한 마디를 거들었다. "얘들 불쌍해서 어쩌니? 제대로 먹지도 못해 큰 일이네"

 

 하쿠와 타타가 배 고른 채 비틀거리며 길에서 먹이를 찾아 하염없이 헤매는 모습이 떠올랐다. 무작정 아깽이가 좀 자랄 때까지, 아니 최소한 여름을 넘길 때까지만이라도 사료와 물을 임시방편으로 공터에 놔주기로 정했다. 고양이 근처에 가지 못하는 막내 누나가 사료와 물을 챙기는 일을 어찌 담당하게 되었다. 누나가 아이들 이름을 지어줬다. 때가 중복 전후여서 그랬는지 진한 고등어 무늬의 어미를 백숙이로, 검은 턱시도 무늬인 아이를 마늘이라 부르기로 했다. 급식을 시작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났다. 마늘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무럭무럭 자랐다. 백숙이 모자는 비록 얻어먹는 처지이나 길냥이 자존심을 버리지 않겠다는 듯 여전히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밥때가 되면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왜 이제야 주냐며 책망하듯 나타나 사료 그릇에 고개를 처박곤 했다. 

 

  길냥이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다. 유령처럼 보이지 않던 길냥이들에 관심을 기울이면 어디서나 보인다. 마치 존재하지 않은 듯했던 고양이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어머니댁 공터의 냥이들도 마찬가지다. 먹이를 준 지 얼마 지나지 않자 보이지 않던 길냥이들이 왕래했다. 마늘이와 비슷하게 생긴 검정 무늬의 아깽이가 나타났다. 마늘이를 닮아 마늘쫑이라 불렀다-공터 고양이 이름도 모두 누나가 지었다-. 이 근처 최상위 서열 1위 마동석이 어슬렁거린 것도 8월 들어서였다. 백숙이 닮았지만 체구가 좀 더 큰 짝퉁 백숙이, 주로 어머니댁 옆 동에서 밥 달라 칭얼대는 버닝썬, 새끼와 함께 와서 식사만 재빨리 마친 다음 부리나케 지하 주차장 쪽으로 도망가는 블랙이. 내가 인지하지 못한 아이들이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 주위로 꽤 많이 존재했다. 길냥이들이 늘어나니 백숙이 모자가 먹이를 뺏길까 걱정되었다. 백숙이 모자 전용 급식대를 따로 놔주거나 더위와 이슬을 피할 숨숨집을 장만하는 등 점점 보살펴야 할 일들이 늘어났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초보 캣맘인 누나가 감당해내야만 했다.

 

  9월에 들어서며 새로운 근심거리가 생겼다. 마늘이야 아직 그렇다 쳐도 백숙이가 또 새끼를 가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TNR(포획, 중성화, 방사) 표시가 없으니 그대로 두면 출산과 육묘의 부담을 벗을 수가 없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길냥이 생활에 아이들까지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고민 끝에 백숙이 모자 TNR을 구청에 신청했다. 처음 신청했을 때 마늘이만 잡혔다. 정작 출산의 자유를 주고 싶었던 백숙이를 포획하지 못했다. 10월 말로 다시 포획 신청을 예약했다. 그런데 백숙이가 잡히지 않은 건 하늘의 뜻이었나 보다. 백숙이가 며칠씩 여러 번 보이지 않더니 10월 말 어느 날 새끼 다섯 마리를 데리고 떡 하니 나타났다. 곧 겨울이 오는데 다섯 마리 새끼들이 무탈할지 불안하면서도 또다시 임신을 하면 어쩌나 무척 신경이 쓰였다. 갓 태어난 아이들을 고려하면 내년 봄으로 TNR 해야겠구나 싶었는데 구청 동물보호팀에서 불쑥 연락을 해왔다. 백숙이 TNR 차례라면서 말이다. 11월 27일이었다.

 

  며칠뒤면 12월 겨울이 지척인 시기에 어느 정도 자란 마늘이야 그렇다 쳐도 새끼 다섯 딸린 어미를 TNR 하자니 몹시 불안했다. 급하게 주위에 상담을 했다. 이런 사례가 많진 않지만 아직은 가능하다는 조언에 포획하기로 했다. 보통 길냥이 암컷은 TNR기간이 만 3일이다. 중성화 수술 후 만 3일째에 방사를 하는 것은 비용과 TNR 개체 수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 아물지 않은 수술부위를 심하게 핥거나 무리하게 움직일 경우 수술부위에 문제가 생겨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백숙이 건강이 염려되어 퇴원 시 바로 방사하지 않고 어머니댁에서 일주일 동안 임시 보호하기로 했다. 새끼들을 만날 시간이 뒤로 미뤄져 새끼들이 뿔뿔이 흩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으나 풍족한 먹이와 익숙한 보금자리를 박차고 떠나지 않으리라 믿었다. 무엇보다 백숙이가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제대로 회복을 하기 어려워 내린 결정이었다.

 

  발 끝까지 온몸이 짙은 색깔이어서 그런지 단단하고 앙칼진 인상의 백숙이는 정말 순하고 어린 어미다. 낯선 환경에 수술까지 받아 울음 한 번 내지 않았다. 겁에 질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 놔준 사료가 없어지고 화장실에 배변이 쌓이는 걸 보면서 제대로 회복해 가는 걸 알 수 있었다. 백숙이를 풀어주기 전 날, 길냥이 보호소에서 몇 개월 자원봉사를 경험한 아내가 수술 부위 회복 정도를 봐주었다. 숨숨집에 들어가 있던 백숙이 이름을 부르며 조심스레 꺼내는데 반항 하나 없이 그대로 몸을 맡기더란다. 아내는 백숙이가 너무 예쁘고 착하다면서 도 어린 어미를 안쓰러워했다. 드디어 백숙이를 방사했다. 마침 며칠 날이 풀린다는 예보가 있어 놓아주기 적당한 시기였다. 아이들 쉼터 옆 조그만 바위 앞에 놓아주었다. 새끼들이 몰려 있을 만한 쪽으로 후다닥 튀어 들어갔다. 두어 시간 뒤에 밖을 보니 아이들 네 마리가 잔디밭 한편에서 뛰놀고 있었다(어느 때부터인지 다섯 마리를 한 번에 다 볼 수가 없었다). 백숙이는 아이들과 좀 떨이진 곳에서 반대편을 경계하며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백숙이네 식구가 다시 뭉친 것이다. 12월 9일 정오를 조금 지난 때였다.

 

호사다마였을까? 평온하던 백숙이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위협이 조금씩 다가섰다. 백숙이를 풀어준 지 일주일이 지날 즈음에 소나기 같은 겨울비가 이삼 일간 내렸다.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을 백숙이와 이제 2 달을 갓 넘겼을 아이들을 위해 겨울집 2개를 수풀 빈자리에 놔주고 그 위로 김장용 비닐을 텐트처럼 겨울집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 위에 펼쳐줬다. 제법 튼실해 보여 괜찮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양동이 퍼붓듯 쏟아지는 비에 버텨내지 못했다. 새벽녘에 누나가 두어 번 고인 빗물을 털어줬건만 겨울집 위로 간신히 버텨 있을 뿐 그 앞쪽으로는 비닐이 반쯤 쓰러져 내렸다. 백숙이와 아이들이 겨울비를 피해 원래 기거하던 수풀에서 어머니댁 아파트 베란다 밑 공간으로 옮겨 왔다. 지하 주차장 환기를 위해 아파트 1층 외벽 안쪽으로 폭 1m, 높이 30~40 cm 움푹 들어간 빈 공간에 임시로 자리를 잡았다. 텐트 삼았던 비닐과 겨울집, 급식대를 백숙이네가 이사한 자리로 옮겨주었다. 난민 숙소 같은 외형에 눈살을 찌푸릴 입주자들이 있을 만했다. 그렇지만 백숙이 가족이 바람과 비를 피해 임시방편으로 온기를 나누기엔 적당한 보금자리였다. 주위 시선들을 고려해 겨울만이라도 편히 날 수 있도록 주말에 제대로 단장해 줄 계획이었다.

 

전혀 예견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백숙이가 변한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겁을 낸 것 같다. 아침밥을 주고 잠자리를 다시 자리 잡으려고 부산을 떠니 백숙이와 아이들이 평소처럼 후다닥 뛰쳐나와 도망쳤는데 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백숙이가 도망을 가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누나를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마치 '왜 평온한 이곳에서 우리를 내쫓느냐?'는 듯한 원망스러운 눈빛이었다고 한다. 백숙이가 정말로 원망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누나는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누나는 그 이후로 한 두 번 더 봤지만 전처럼 제대로 오랫동안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내가 백숙이를 본 건 12월 9일이 마지막이었다.

 

  백숙이가 사라진 이후로 아이들 상태가 점차 나빠졌다. 이제 엄마보다 체구가 더 커진 마늘이가 동생들을 돌보았지만 동장군에겐 무력했다. 마늘이와 첫째를 뺀 나머지 모두 허피스에 감염된 것 같았다. 다들 눈곱이 심하게 껴 있었다. 특히 막내 꼬치는 눈곱이 눈에 달라붙어 눈을 뜨기가 어려운 듯 움직임이 전과 달랐다. 아이들 건강이 불안했으나 손을 타지 않은 아이들을 잡기가 수월치 않아 답답한 마음만 달래었다. 강추위가 시작되었다. 예정대로 주말에 새로 주문한 고양이 텐트를 설치하여 그 안에 겨울집과 급식대를 넣었다. 아파트 외벽 안쪽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 방한용 에어 매트를 붙여줬다. 엄마가 없어도 아이들이 똘똘 뭉쳐 무사히 겨울을 나기만을 바랐다. 운명의 12월 20일 아침이 되었다.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해 보이는 아이 하나와 탈진한 꼬치를 발견하였다.  겨울집을 이리저리 움직이니 아이 하나가 힘없이 튀어나와 더 깊숙이 있는 숨숨집에 들어갔다. 꼬치는 일어날 줄 몰랐다. 꼬치를 구조하게 된 당시 정황이었다.

 

  오늘로 이브가 된 꼬치를 집에 데려온 지 20일이 된다. 월령 3개월로 추정되는 이브를 구조했을 때 몸무게가 650g이었다. 지금은 1,290g. 거의 배가 늘어났다. 그래도 아직 동기들에 비해 체격이 작다. 완치 판정을 받아야 하쿠와 타타와 합사가 가능한데 아직 이르다. 하쿠와 타타는 낯선 존재인 이브가 자기들의 영역 일부를 차지해 격리되어 있다는 사실에 전과 달리 예민해졌다. 하쿠는 불안한 눈빛으로 이브가 격리된 방문을 늘 주시한다. 타타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심하게 구토를 하여 엄빠를 긴장시켰다. 굳게 닫힌 방문을 개방하여 방묘문 사이로 서로를 보여주자 극도의 경계심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쿠는 놀고 싶은 마음에 무턱대고 돌진하는 이브에 아직 질겁하며 뒷걸음질 친다. 겁 많은 타타는 다가서지 말라며 하악질로 위협한다. 서로가 친해질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나마 처음 대면했을 때 보다 조금 친해져 다행이다. 요즘은 하쿠와 타타가 천천히 다가서면 혹시 모를 바이러스 감염을 걱정할 정도로 이브와 가까워지는 걸 허락한다. 합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여 우애 깊은 3 남매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브를 맞이 한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에 누나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들이 머무는 자리에 아깽이 한 마리가 굳어 있는 걸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브와 함께 있던 아이가 떠올랐다. 이브보다 체구가 크고 스스로 사료를 찾아 먹어 괜찮겠거니 했던 내 경솔함을 자책했다. 힘들고 무섭더라도 잘 수습해서 보내주자고 부탁드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아 있는 아이들 중 2마리 마저 탈진이 걱정되어 내게 말도 못 하고 누나가 또 구조한 사실을 새해 첫 주말에서야 알게 되었다. 행방이 묘연한 백숙이에 이어 한 아이가 고양이 별로 떠났고 또 다른 남매들마저 쓰러지자 내 섣부른 판단이 행복한 가족을 깨트린 건 아닌가 하는 죄의식에 사로잡혔다. 회복되어 가는 이브를 볼 때는 기쁨이 앞서는데 떠나고 아픈 아이들에게 시선을 주면 숨이 막혀 온다. 어제까지 일주일은 내게 환희와 고통가 번갈아 찾아오는 롤러코스터의 연속이었다.


 1월 12일 모처럼 저기압과 미세먼지가 걷혀 하늘이 쾌청하다. 맑은 겨울바람을 타고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랜만에 화창한 햇살아래 백숙이가 마늘이와 남은 아이 한 마리와 함께 어머니댁 공터에서 한가로이 햇볕을 쬐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똘망한 눈빛을 보니 백숙이가 쾌유한 것 같다. 게다가 아이 한 마리를 더 보았단다. 다섯 마리를 한꺼번에 본 적이 꽤 오래되어 늦가을에 한 마리를 잃은 줄로 알았는데 괜한 착각이었던 것이다. 성탄절에 하나님의 부름에 고양이 별로 돌아간 아이 하나를 빼고는 모두 무사했던 것이다. 12월 28일에 구조한 아이들은 누나가 새로운 법명을 지어줬다. 엄마를 닮은 짙은 고등어는 관세음보살의 세음, 이브처럼 연한 고등어는 대세지보살의 세지. 세음과 세지로 건강을 되찾아 언제나 사람 손을 탈 지 걱정을 할 정도로 회복되었다. 이브 역시 지금대로 가준다면 1월 중으로 원만히 합사가 가능하리라 기대된다. 마늘이는 과체중을 경계할 지경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비록 제 몸으로 낳은 아이들 중 셋은 자신의 품을 떠나 다른 부모를 만났고 다른 하나는 고향의 별로 돌아갔지만 새순이 막 돋아 나는 봄철에 어린 마늘이를 데리고 외진 공터에서 자리 잡아 6남매를 애써 키워내던 백숙이의 간절함이 한파를 이겨내 멋들어지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겨울 매화로 거듭난 거 같아 몹시도 기쁘고 즐겁다.



점점 어릴 적 타타를 닮아가는 이브
아직은 낯설은 만남



건강을 회복한 백숙이와 아들 마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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