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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Aug 25. 2023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8 중종실록

두 얼굴의 고독한 군주

 조선 왕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단명하여 재위 기간이 평균적으로 짧은데 중종은 무려 39년 동안 왕위에 있었고 이는 다섯 번째로 긴 재위 기간이다. 그가 오랜 기간 동안 재위했던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신들의 말을 잘 듣고 잘 따랐다는 점이 가장 크다. 강력한 왕권 중심의 정치를 했던 형 연산군과 달리 대신들의 의견과 뜻에 따라 정치를 하며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인 중종이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왕이기에 집권 초기 공신 책봉과 함께 가장 먼저 한 일은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었는데 폐주 연산군의 악행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연산군에게 협조하던 세력을 제거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반정의 무게감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공신들조차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했기에 연산군 지지세력을  혁파하지 못하는 오점을 남겼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신하가 임금을 몰아내는 것을 직접 목도한 중종은 아이러니하게 자신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염려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녔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몰라도 대신들을 자극하려 들지 않았으며 성실하고 경청하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더 보였는지 모른다.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는 것 대신 항상 힘없는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보디가드 같은 존재를 곁에 두려고 했다. 반정 주도자였던 박원종을 시작으로 유순정, 성희안 등의 공신을 보디가드로 내세웠지만 이내 세상을 떠났다.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조광조를 총애하며 새로움을 더하려고 했으나 유교적 이상 실현을 추구했던 조광조는 점점 왕을 견제하는 세력이 되어 버린다.


 유교적 원칙과 이념을 중심으로 정치하는 조광조 세력은 그들을 시기하는 세력에 의해 축출되는 기묘사화를 통해 정계에서 사라지고 만다. 특히 ‘주초지왕’이라는 잎사귀는 중종의 사리 분별력이 없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조광조를 끝없이 신임하며 많은 권력을 주었던 중종이었지만 자신에게 위협이라 느끼는 순간 등을 돌리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고 조광조가 사라진 개혁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조광조를 제거할 때 사용했던 남곤이 죽자 늘 그래왔듯이 새로운 동맹을 찾았고 김안로를 선택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정치적 수완은 뛰어나지만 조광조와 달리 욕심이 많았던 김안로는 온갖 방법으로 반대파를 숙청하며 힘을 키웠고, 뇌물과 사욕으로 가득한 그의 집에는 단청까지 있을 정도로 부패했던 사람이었다. 결국 자신의 아들 초례 날 중종의 기습적인 견제로 제거되어 권력의 허무함을 알게 해 준다.


 특히 김안로의 보복 정치는 정도를 지나쳐 중종마저도 제어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그 대상이 아들 복성군에게까지 이른 사건이 있었다. 바로 동궁 작서의 변인데, 이 일의 주동자로 밝혀진 경빈 박 씨와 그의 아들 복성군이 폐서인 되어 고향으로 쫓겨났으며 6년 뒤 동궁의 빈청에서 발견된 나무인형 때문에 복성군은 유배되고 경빈은 사사되는 참혹한 최후를 맞이한다. 대신 중 유일하게 복성군을 변호한 정광필은 대세 김안로의 견제를 받고 결국에는 유배되고야 만다.


 재위 39년 동안 변함없이 성실했던 중종은 왕위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자 그의 인생 목표였다. 그래서 국가의 발전을 도모할 구상이나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으며 일관된 원칙도 없었고 일에 대한 책임감도 없던 군주였다. 자신은 검소했지만 지나친 공신 책봉으로 백성의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으며, 재위 기간 동안 고변, 익명서 사건은 수없이 많아 옥사로 죽은 이들이 연산군 때를 능가할 정도였다.


 자신이 힘이 없는 왕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중종은 늘 대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대간의 청을 들어주었으며 온화한 왕이었다. 하지만 권력의 교체에 있어서는 독선적이고 냉혹하며 지나칠 정도로 과감한 모습을 보였던 이중적인 왕이자, 두 얼굴의 사나이였으며 늘 고독한 군주였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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