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한테 처음으로 물어봤다.
"내가 태어나고 나서 제일 좋았던 때가 언제였어?" 엄마는 "음? 글쎄 다 좋았지~" 라며 으레 그럴 것 같았던 반응을 보였고, 나는 "제일 좋았던 순간! 기뻤던 순간!?"이라며 검지 손가락을 바짝 세웠다. 딱 한 순간. 제일 기뻤던.
"... 대학교 합격했을 때?"
"...?!!"
"그때가 제일 기뻤던 것 같아. 아직도 생생해. 네가 전화해서 알려주던 순간이랑 그때 엄마가 뭘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끊고 나서도 얼마나 감정이 복받쳤고 사람들한테 얘기해줬는지."
세상에.
상상도 못 했다.
대학교 합격했을 때라니.
이미 대학교를 졸업한 지도 엄청나게 오래됐거니와 그렇게 드라마틱한... 대학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서연고-라거나.
그러니까 내가 기대한 대답은 조금 흔할 수 있지만 태어났을 때 라거나, 아니면 첫 직장에서 무엇을 했을 때 라거나, 아니면 책을 펼쳐냈을 때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모르지만 엄마는 기억하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대학 합격이라니, 너무 일반적인 통과 의례 같은 사건이고 그렇게 극적인 입학 과정도 아니지 않았던가.
왠지 허탈해서 웃기고 민망해서 (나참, 내가 졸업 이후로 그런 기쁨을 안겨준 적이 없단 말인가. 무려 열아홉 살 이후로) 정말로 그때가 가장 좋았냐고 되묻자 "아마 극적이어서 그런 것 같아. 기분이 말이야. 확 무언가 덮쳐오는 감정이나 안도감 말이야." 란다.
그 뒤를 이어 설명을 듣자 조금씩 보였다. 마치 흑백사진에 색이 입혀지듯, 그 먼 날의 엄마가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이. 나의 첫 성공이, 성인이 되어가는 길목에 선 딸을 보는, 떠나는 모습을 배웅하는, 축하와 염려와 안도가 뒤범벅된 그 표정이. 그때 보지 못한 장면들이 마주 본 눈을 통해 흘러갔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자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정말? 대학 합격했을 때라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차라리 취직이라거나 또는 다른 인생의 일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우리는 또 한 번 같이 허탈히 웃었고 민망해했다.
그렇지만 하나씩, 조금씩 물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딱- 한 순간.이라는 소리에 떠올리는 장면은 단순한 기쁨과는 다르다는 것을. 터져 나오는 그 감정은, 우리가 느끼는 대학교 합격과는 참 많이 다른 감정일 수도 있음을.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예상했던 이유도 아니었다.
그리고 더 얼마나 물어봤던가. 그리고 또? 하며 다른 즐거웠던 순간이라거나 아니면 의외로 꽤 안도했던 순간에 대해. 이제 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날들에 대하여. 우리가 같이 기뻤던 순간을 발견했던가, 아득한 기억의 샛길에서 만나서.
자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아팠거나 아직 저려오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 대답에 나는 또 물음표를 가득 떠올릴 테지만, 곧 아- 할 거고, 이내 그렇구나, 수긍도 하겠지. 그렇게 내 기억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생기고 불이 켜지고 온기도 감돌겠지.
혼자 걸어왔다고 생각한 길에 찍혀있는 발자국을 만나게 될 거야. 저기도, 저 멀리에도, 또 이렇게 가까이에도 언제든 따라오고 있었던 발자국들.
가장 기뻤던 순간, 가장 아팠던 순간, 또 가장 멀어졌다고 느꼈던 순간과 혹시 아직도 미안한 순간. 자주 묻고 털어놓아야지. 딸칵- 거리며 침침한 기억에 불이 켜지면, 밝아질 추억을 기대하며, 하나씩, 하나씩 물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