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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Dec 05. 2021

여행의 끝자락, 여행 책방에서 발견한 것

뉴욕의 마지막 여행서점 아이들와일드


여행자의 책방 아이들와일드(Idlewild Books)  




맨해튼 서쪽의 활기와 낭만이 감도는 지역 웨스트빌리지의 한복판, 전면 유리창을 가득히 채운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상점이 있다. 넘실대는 파도와 깃발이 꽂힌 빙하, 그너머 푸르른 들판을 배경으로 펼쳐진 책. 뉴욕의 유일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여행 서점 아이들와일드(Idlewild books)다.     



여행 전문 서점의 외관



서점의 안으로 들어서면 시선은 부드럽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동그랗게 벽면을 감싸는 책장 아래로 깔린 이국적 문양의 카페트, 그 위로는 적당히 빛바랜 나무 의자가 놓여있다. 빛이 넓게 들어오는 창가에는 커다란 지구본과 몇 곳의 도시를 떠오르게 하는 소품이 놓여있고, 계산대 근처에는 국제용 어댑터와 기내 반입용 가방, 수화물 네임태그들이 진열되어 있다.      


서점은 유명한 여행지나 특정한 도시보다 여행을 떠나기 전과 돌아온 후, 그리고 여행의 일상적인 풍경과 닮아있다. 그래서 문득 알아차리게 된다. 여행이란 장소가 아닌 일련의 과정이며, 신체적 움직임과 함께 골몰한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라운지처럼 동그란 공간은 커다란 창문덕에 채광이 좋은 편이다


지구본처럼 둥글게 배열되어있다



아이들와일드는 뉴욕 공항의 예전 명칭이다. 1963년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며 JFK 공항으로 개명되기 전의 이름에서 따왔다. 오래된 국제 공항에서 영감을 받은 사람은 데이비드 델 베키오(David Del Vecchio)라는 UN 소속의 직원이다. 델 베키오는 세계의 도시에서 근무하며, 특히 난민 문제 미디어 책임자로서 일반인이 가기 어려운 분쟁과 자연 재해로 고통받는 지역들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다른 국가와 도시를 이해하기 위한 책과 정보를 모아둔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수년에 걸쳐 여행을 위한 자료를 축적한 후 '여행 서점'의 문을 열기로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Get Lost Travel Books와 뉴욕의 문학 서점 Three Lives&Co에서 경력을 쌓고 난 2008년 아이들와일드라는 이름으로 서점의 문을 열었다.     



곳곳에 긴 - 서점의 추천사가 돋보인다 



여행 전문 서점은 100여 개 국가의 7,000여 권에 달하는 책들을 진열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중에서 가이드북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권의 소설이나 회고, 전기, 예술책이 가이드북만큼 유용하다고 믿죠. 먼저 다양한 시선으로 여행지를 바라보고 나서 지도를 펼쳐도 늦지 않습니다."라는 델 베키오의 말처럼 서점에서 여행은 지리가 아닌 이해와 공감의 영역이 된다. 다른 세계를 이해하며, 동시에 자신만의 감각을 깨워가는 여정이다.     


「동화책 옆 가이드북, 그 옆으로 요리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Travel Leisure 매거진이 서점을 소개한 것처럼, 서점은 한 국가를 풍부한 이야기로 표현한다. 스페인 쪽에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과 베스트셀러를 비롯해 스페인 스릴러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이탈리아에는 고전을 필두로 이탈리아 도시의 역사를 다룬 책과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시집도 진열했다. 프랑스 쪽에는 사진과 예술, 파리라는 도시의 빛을 이해하는 방법을 다룬 책도 놓여있다.     





서점은 한 장소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보다 어떻게 존재하는지 보여준다. 고유한 경험을 위한 큐레이션도 선보인다. 서점에서 인기 있는 목적지 키트 (Destination Kit)는 여행지와 취향을 알려주면, 직원이 해당 주제의 책을 선별해 제공하는 서비스다. 똑같은 장소로 떠난다고 해도, 똑같은 책을 추천받지는 않는다. 생각과 취향과 살아갈 여정이 다르기에, 도착해서 되돌아오는 여정도 달라야 한다고 서점은 믿는다.     


서점은 외국어 강의도 진행한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수업을 진행하는데 프랑스 코미디, 스페인 미스터리, 프랑스 예술 영화 등 지역을 대표하는 책이나 영화를 감상하고 토론을 나눈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씩 총 2달 과정으로 진행이 된다. 이 회수만을 두고 보자면, 다른 어학원에 비해 경쟁력이 낮을지 모르나 서점은 언어 자체보다는 지역의 문화를 배우고 교류를 하는 데 의미를 둔다. 예컨대 스페인어 시간에는 전통 게임과 규칙을 배우고, 이탈리아어 시간에는 요리 재료를 구하는 방법과 일상적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한다. 모두 원어민 강사진으로, 구어체 사용과 문화적 표현을 올바르게 알려줄 수 있도록 구성한다. 한 해에 4,000명이 듣는 서점의 외국어 수업은 '뉴욕 최고의 언어 수업'으로 뉴요커 매거진에 소개되기도 했다.     



외국어 수업 시간이 안내되어 있다



지난해, COVID-19로 오프라인 수업과 매장 운영이 어려워지자 서점은 집에서도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온라인 콘텐츠를 강화했다. 먼저, 줌(Zoom)으로 수업을 전환하고, 발음 연습에 유용한 외국어 스트리밍 콘텐츠를 제공했다. 또한 오래된 티켓과 탑승권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방법을 나누고, 구글 지도 스트리트 뷰를 기반으로 퀴즈를 진행하는 등 다방면으로 여행의 영감을 자극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서점은 팬데믹 기간에 가이드북은 거의 판매되지 않았지만, 외국 소설과 에세이의 판매량은 평소보다 증가했음을 알리며 그들의 목표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세상과 연결하고 유지하는 것. 서점에서 여행은 가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한 통로가 된다. 세상을 향한 관심과 이해는 단절된 상황에서 더 중요해진다. 이러한 의지를 반영하듯, 여성과 흑인을 주제로 운영하는 독서 모임도 시작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외면받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했던 인물을 조명하기 위함이다.     


여성 번역 독서 모임은 전 세계 여성들이 저술하고 번역을 한 책을 주제로 토론을 나누는 모임이다. 여행 기사의 헤드라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역의 생생한 삶과 드러나지 않았던 소수의 역사를 읽어갈 수 있다.     


흑인 문학 코너에서는 역사와 문학, 에세이, 예술 분야를 아우르며 추천한다. 1930년 출판된 가이드북(Negro Motorist Green Book)은 흑인들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호텔, 주유소, 레스토랑 등의 정보를 담은 책으로, 뉴욕시의 흑인 우편 배달원이 펼쳐냈다. 이 외에 미국의 농장에서 멕시코 국경에 이르기까지 흑인의 삶을 따라가는 에세이와 흑인 음악으로 이해하는 예술의 가치를 담은 책도 추천한다.     




지난해 서점은 빌리지 어워드 수상자에 선정됐다. 서점이 위치한 웨스트 빌리지를 포함한 그리니치와 노호를 아우르는 빌리지 역사 보존 협회는 매년 특별한 공헌을 한 사람과 기업을 선정하고 있는데, 2020년 서점의 문화적 영향력을 높이 인정하며 현재는 가상으로 접속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다른 국가에 관심을 갖고 배워가기 완벽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뉴욕의 다른 장소를 추천하기도 한다. 프랑스 전문 책방을 알려줬다.


여행 서점은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 얼마나 멀리 있든, 지금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아직 가본 적이 없는 장소에 대한 추억을 갖게 하고, 낯선 사회에 연대감을 느끼게 하며, 미지의 세상을 갈망하게 만든다.      


여행 전문 서점에 과월호 가이드북은 없다. 더 오래된 역사와 새로운 장면이 담긴 특별판이 있을 뿐이다. 여행을 가기 전이나 후에 읽어야 하는 책은 없다. 다만 지금부터 경험할 수 있는 무한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여행자의 서점에서 여행의 목적이 달라진다. 도착 그 너머, 여행자가 되어간다.



국립중앙도서관 12월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 뉴욕의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여행 책방 - 아이들와일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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