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키친아트앤레터의 거실

서점여행자의 거실_ 01

by 유앤나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마음 한켠을 은근히 설레게 하다가도, 문득 아련해지고, 낯설면서도 곧 익숙해질 여정입니다. 서점과 여행,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치는 우연과 놓침, 작은 발견들이 이어 붙여가는 한 권의 서점 여행기이기 때문이죠.


그래도 재밌으실거에요. 꼭두새벽에 문을 열거나, 뜬금없는 추리를 시키거나, 꼭꼭 숨어있거나, 도대체 주제가 어떻길래 '책을 읽는걸 부끄러워 말라'는 조언을 하는 서점도 있으니까요. 커피를 1달러에 팔며, 사실 커피는 핑계고 언제든 편하게 머물라는 곳에서, 스마트폰을 끄고 대신 직원에게 말을 걸라는 곳에서, 대뜸 다른 손님을 소개해주는 곳에서, 기지개를 켜던 고양이가 자박자박 걸어와 털썩 눕는 곳에서 - 그래서 서점이라기에는 거실같은 - 사온 책과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헤어질 때는 무거운 책 대신 가벼운 질문 몇 개를 들려 드릴게요. 오늘 대화가 여행처럼 기록되거나, 아주 먼 기억처럼 적히거나, 떠나보고 싶을 길이 되길 바라면서요.


그럼 밥부터 먹어볼까요.

든든하게 속을 채우며 떠날 준비를 해보죠.


서점여행자의 거실, 프롤로그.



뉴욕 요리서점이 차려주는
집밥



뉴욕에요, 한 요리 서점이 있습니다. 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곳인데, 어떻게 이렇게 취향을 타는 '요리'라는 주제로 지역에 영향을 크게 미치게 됐는가에 대해 서점은 말합니다. "어떤 요리 배우고 싶으세요?" 이 질문은 오래전에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끓이고 있는 감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에 감정이 넘친 적은 언제였나요?
그리고 누구 앞이었나요?


뉴욕 어퍼웨스트 지역의 Kitchen Arts & Letters는요 40년 전에 문을 연 이래로, 지역의 문화를 톡톡히 바꾸고 있다는 평을 듣는데요. 이들은 말합니다. 매일 수천 가지 언어로 말을 하는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요리 역시 하나의 언어가 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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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감자를 삶는 방법 다섯 개를 더 알게 된다면, 의외로 웃을 일도 그리고 울일도 많아질 거라는 곳은요. 요리란 꼭 시와 같다고 말합니다. 몇 개의 재료로 무한한 의미를 창조하니까. 사람들을 치유하고 웃게 하고 뭘 더 하게 하고 멈추게 하는 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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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곳인데요. 그러고 보니, 이름이 눈에 들어오죠. 키친 아트 앤 레터스. 동네에서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과 셰프들이 단골로 방문하는 '전문성 높은 큐레이션'으로 명성을 쌓은 곳은 실제로 미국 내 가장 오래된 요리 관련 전문서점으로 40년간 이어오며 인지도를 넓혔왔는데요. 서점의 직원은 말합니다. 주민들의 요리실력이 다 좋아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음식을 떠올렸을 때 보이는 것이 하나씩, 그리고 들리는 것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고 믿는다고요. 그리고 말합니다.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라는 질문이 곧 오늘 우리는 어떤 저녁을 보내고 싶은지… 나아가 어떤 기억으로 잠들고 싶은지와 같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안다고.


실제로 단골들은 말합니다.

"이제 레시피가 아니라 내 기억을, 요리할 수 있게 됐어요."

"여기서 책을 사면, 꼭 어느 페이지에 내 메모가 들어갑니다."

"내 방식대로 만들기 위한 최초의, 대화를 시작하게 됐어요."

레시피를 찾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레시피를 통해서 삶을 다시 쓰는 곳입니다.


화면 캡처 2025-10-01 201427.png 전 여기에서카페 약도를 얻었어요. "여길 모른다구?" "아직 안가봤어?" 라는 잔소리와 함께요.



이런 서점의 프로그램 중에서 재밌는 걸 소개해드리면요. 잊어버린 가족의 레시피를 복원해 보는 워크숍, 빈티지 요리책을 낭독해 보기, 그리고 레시피 없이 감각으로 요리해 보기와 같은 시간들도 있습니다. 어떤 시간에 가장 참여해보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우리는 어떤 기분, 감정, 기억을.. 떠올리게 될까요?


서점은 농담처럼 말하는데요. '모비딕' 이라는 소설이 있어요. 고래를 좇아 모험을 떠나는 내용인데요. 물론 고래를 요리하는 건 아니고요. 그런데 이 소설에 이런 추천사를 붙여놓을까 한대요. 조리과정 있음. 고래를 향한 모험 자체가 곧 레시피를 대해야 하는 태도가 되어야 한다면서 말합니다.


화면 캡처 2025-10-01 201439.png 모험을 꿈꾸지 않으면, 냄비 속 세상도 늘 그대로라는 곳에서 어떤 책을 고르게 될까요?


그리고 말합니다. 저녁밥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음식만 떠올린다면 딱 하나씩 더 해보라고요. 소리를 하나 더, 장면을 하나 더 떠올려보라고. 퇴근길 발소리와 식탁의 촉감, 대화 소리, 그즈음 창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그 저녁의 냄새…. 여러분은 어떤 게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녁밥.. 했을 때요.


화면 캡처 2025-10-01 201448.png 십 오 년 전.. 그리고 삼십 년 전.. 을 떠올렸을 때. 그렇게 하나씩, 떠올리다 보면 …
화면 캡처 2025-10-01 201457.png 젓가락의 무게와 식탁의 둥근 모서리, 주고받았던 대화와 그때 풍기던냄새… 처럼 소리를 하나 더 듣고, 장면을 하나 더 기억하다 보면



더 이상 뭐가 먹고 싶어, 가 아니라

더 듣고 싶고, 만지고 싶고, 말하고 싶고, 보고 싶어 가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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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혀 끝이 아니라 인생 전부에서 맛이 느껴질 때….

비로소 어떤 저녁을 먹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저녁을 보내고 싶은지,

나아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이 요리서점을 인트로로 들려드린 이유는,

영감 역시 그럴 겁니다.

새로운 게 아니라요


거기 있었고,
그러고 보니 들리고,
기억이 나고,
그래서...



이해하고, 알아가고 때론 화해하며 기어코... 조금씩 더 좋아져 버릴.. 내 삶의 영감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길 바라면서요,


이제 저녁밥, 하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그날의 저녁밥보다 더 맛있을 영감이 있는 곳으로 가보겠습니다.


그전에, 레시피를 하나 드릴게요.

감정을 꺼내어 요리하고 싶어질지도 모르죠.


아무도 모르게 속에서 은근히 끓고 있는 감정이 있나요?

최근에 삶의 냄비가 넘치듯 감정이 터져 나온 순간은 언제였나요?

일상에서 가장 자주 태워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가장 오랫동안 숙성된(간직한) 소망은 무엇인가요? 아직도 감칠맛이 나나요?

내 묻힌, 또는 날것의 감정을 노련하게 요리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삶의 레시피를 몰라서 즉석에서 감으로 조리한 날, 어떤 결과물이 나왔나요?

내 마음을 굽거나 튀기지 않고, 차분히 끓여 본 적이 있나요? 그때는 어떤 맛이었나요?



화면 캡처 2025-10-01 201559.png 실수, 화해, 고백 그리고 비워내는 것이죠. 요리말이에요.



월,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