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을 채우기 위해 산 것, 결핍을 메꾸기 위해 본 것
런던 거리를 지나다가
고개를 휙 돌려서 다시 봤어요.
게이스더워드. 게이의 말, 신기하고 궁금했는데 어쩐지 들어가기엔 좀 망설여지더라고요. '들어가도 되나?' 주저했던 건요, 들어가는 순간 '저를' 이상하게 볼 것 같은 거예요. 저는 남자도 게이도 아니고, 게다가 그 분야에 관심 있는 연구자도 아닐뿐더러 동양인, 여자라면 어쩐지 더 배척받을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머뭇대며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들어가니까...
환하게
웃으면서 맞아주는 거예요
긴장이 확 풀리며 저도 따라 웃었죠. 천천히 둘러보다가 혹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그가 그래요.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이렇게 팔을 활짝 벌리면서요. 이 서점을 두고 수많은 리뷰에서 밝은 서점이라고 표현한걸 나중에 봤는데요, 단지 조명이나 분위기를 말하는 건 아닐 겁니다. 서점은 대부분, 그래서 모두들 환영하는 밝은 곳으로 불리는데요.
저기 보이는 게 무지개색 깃발이에요. 이 의미는 성 소수자들을 환영하는 의미인데, lgbt.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모든 성 소수자를 환영하는 의미를 담고 있죠.
실제로 이 서점은요 다양한 상담과 조언도 제공하고 있고, 책을 사지 않아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카운터에는 지금 여기서 고민을 털어놓기 어렵다면 나중에 온라인으로 도움을 요청하라는 글씨가 쓰여있죠. 또 런던은 외국인이 많으니까요, 이민이나 인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당신이 처한 상황을 들려달라는 말도 쓰여있거든요.
아래는 서점에 대해 언급한 -인종, 나이, 계급, 종교와 정체성의 교차점을 연구하는 책을 판매한다는- 소개이고요, 40년이 넘는 역사를 축적해 온 곳은 오늘날 영국 도서관에서 기념식을 갖기도 할 만큼 런던 그리고 영국의 퀴어연구와 행사로 권위 있는 곳이 되기도 했습니다.
서점은 오프라인 서점들의 위기와 맞물려서 2007년과 2012년에 재정적 문제를 겪어야 했는데요. 런던을 비롯해 타임스등에 게재가 되며 전 세계에서 서점을 향한 후원과 지지를 보내왔습니다. 단지, 성 소수자만의 연대였을까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게이 서점에, 모든 소수가 있다고.
처음 게이 서점이 주목을 받게 된 건, 84년 영국 마거릿 대처 정부가 탄광을 통ㆍ폐합하고 광부 2만여 명을 해고하면서였는데요. 앞서 대처는 노동운동을 와해시키려는 목적으로 노동법을 대폭 개정했는데, 첫 타깃이 영국 최대 노동조직이던 탄광노조였습니다. 탄광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지만 정부는 불법파업이라는 이유로 벌금을 매기고 전기와 수도를 끊기도 했는데요. 노조원과 가족들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 버텨야 했고, 다수가 내분 속에 파업 포기각서에 서명했고 그 싸움이 장장 363일간 이어졌습니다. 그때 이들을 도운 게 게이서점이고요, 이 서점에서 쉴 수 있게 하거나 회의를 돕고 대중에게 문제를 알리기도 했죠.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든 런던 프라이드는 (Prideㆍ2014)가 당시 게이와 광부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는지 담아내며 호평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른, 소수를 환영하고 돕는 게이서점에서요. 저는 게이책을 샀습니다. 30대로 들어선 친구에게 줄 책이었고, 그 친구는 여자였죠. 그리고 그건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단지 게이가 아니라, 공감과 이해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곳에서요, 소수의 의미를 생각해야 했는데요,
이 서점의 문을 열고 나가면 외국인, 동양, 여성... 외모와 문화, 식성... 어떤 분야에서든 저는 소수자가 될 겁니다. 네, 어떤 모임에서건 우리는 언제나 소수자가 될 수 있죠.
성별, 인종, 국가, 지역, 출신, 세대, 취향, 술, 커피, 키, 체중…...
그리고 우리는 매번 그 경계에서,
나의 모습을 숨기거나 지워버리기도 합니다.
언제든 다수에 속하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니까.
- 저는 웨일스 출신이라서 유명한 탄광 지역 출신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산 노동자를 도운 이야기는 제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서점의 컬렉션은 탁월합니다. 픽션부터 전기와 회고, 정치적 담론까지 정말 폭이 깊습니다.
- 딸과 함께 갔어요. 마침 학교에서 게이 프라이드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고 런던의 역사적인 장소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는데요, 상점의 사람들은 유쾌하고 친절하게 역사적 운동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 서점으로 가보세요.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여기로 가서 관광지도에 없는 런던의 일부에 대해 경험해 보세요!
- 이서점은 포용, 환대, 사회 정의의 장소예요. 문화 격차를 해소하는 곳입니다.
서점은 '미리 냈음 (페이잇 포워드)'이라는 정책으로 책을 구매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대신 적립금을 쌓아주는 이벤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점의 수익금으로는 게이가 아닌, 다른 소수 커뮤니티를 돕는 행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권리를 이해하는 곳에서, 공동체의 가치가 피어나고 있었는데요. 소수가 될 때, 비로소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생각보다 다르지도 않고 드러낼 때 아프지도 않다는 것을. 그보다 하나를 더 생각해야 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주요한 키워드는 무엇인가?
내가 소외하고 있는 나의 소수는 무엇인가.
누구나 그 기준의 경계에서
자신의 일부를 잘라내며 살아간다면,
나는 얼마나 뭉툭히, 평범히,
형체 없는 대중이 되어왔을까?
나의 숨겼거나 덮어두었던 곳을 봐야 했던 런던의 안전지대, 게이서점이었고요.
런던의 안전지대로 불리는 게이서점이 있다면, 뉴욕 맨해튼의 안전지대로 불리는 블루스타킹스입니다.
보이시나요? 문에 쓰여있는데요.
여기는 안전한 곳입니다라고요. We are a safer space.
책들을 보면요 정치와 계급. 인종과 노동. 난민과 환경, 불편한 주제가 가득한데요 이 불편한 서점은 굉장히 친절합니다. 이곳은 돈이 없어도 자리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고 서점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보이시나요? 커피가격 1달러. 여기는 아름다운 커뮤니티랍니다 라는 설명이요.
실제로 서점의 공간정책인데요.
돈이 없어도 환영하고 커피가격은 1달러라며 누구든 환영하는 서점은요,
「향이 강한 향수는 삼가 주세요」
「누군가에게 실례가 되는 단어나 행동은 자제하기 바랍니다」와 같은 공간 규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아무나 들어갈 순 있지만 아무렇게나 머무르진 못하죠. 서점은 내가 타인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민하고 행동하게 하고, 그만큼 타인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내가 속한 환경과 집단의 규칙과 가치관만큼 타인이 속한 환경도 이해하길 권합니다.
서점은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공간에 속하면, 새로운 역할과 새로운 결핍도 함께 받을 거라고.
결핍이란 상태가 아닌 위치이기 때문에 환경이 만든 균형의 기울기에서, 우리는 반대쪽에 생긴 것을 봐야 한다고.
그래서 이곳엔 ‘정상’이나 ‘표준’이 없습니다.
그 대신, 모든 결핍이 균형을 이루는 곳은 알려줍니다.
이 사회에서 부족이라고 여기는 것과 내가 부족이라고 여기는 건 얼마나 같을까 생각해 보라고. 사회의 평균과 나의 평균은 얼마나 닮아있을까, 고민해 보라고요.
한 곳 한 곳에서 부족이라 불리는 것을 채우려고 하기보다 내 소속을, 존재를 넓히라는 곳에서 알게 됩니다. 나는 언제든, 어디서든 반드시 조금씩 부족하다고. 부족하다는 건 아직 채워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남아 있다는 신호라고. 부족하다는 것은 반드시 반대점이 있고 연결점도 있다고.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니, 기쁘게 그 반대편을 보고 연결해 가라고. 나의 조화로움과 균형의 범위를 무한히 즐겁게 넓혀가라고.
이렇게 런던의 안전지대에서 소수의 의미를, 뉴욕의 안전지대에서 균형의 가치를 만나봤습니다.
리스본, 런던, 그리고 뉴욕 세 개의 도시, 세 개의 공간은 말합니다.
영감이란 가장 찬란한 부분이 아니라
나의 가장 소외된, 버려진, 숨기는 부분을 돌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단점으로 불리거나, 부족하다고 여겨왔던 수많은 것들.
그 끝에는 혹은 그 옆에는 무엇이 있나요?
소극적인 건, 타인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전체의 맥락을 읽으려고 하는 신중함이기도 하고
결정을 미루는 습관은, 세부적인 사항도 놓치지 않으려는 꼼꼼한 면도 있죠.
고집이 센 건, 어떤 상황에서도 기준을 잃지 않는 일관성이 있기도 하고요.
이렇게 바라보는 과정은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단점이란 ‘과잉된 강점’이라는 걸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맥락이 바뀌면 의미도 변하죠. 그래서 단점을 바꾸기 위해 성격을 고치는 게 아니라, 그 성향이 빛날 수 있는 맥락을 다시 설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거죠. 나의 단점, 부족, 결핍을 채우는 게 아니라 더 넓은 조화와 균형으로 나를 채워가면서 말이죠.
모든 미덕은 상응하는 결점을 가지고 있죠
네, 오늘은 질문을 드리기 전에 한 권의 책을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바로, 『눈부시게 불완전한 (Brilliant Imperfection)』인데요. 작가는 선천적 뇌성마비를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해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상된 나의 뇌세포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다. 굳고 경련하는 근육이 없는 나를, 어눌한 발음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 장애가 없다면 우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장애를 겪고 있거나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말하죠. 얼른 회복하길 바란다고. 정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하지만 작가는 자기 몸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제도, 문화, 가치 체계에 담긴 폭력성을 언급하며, 서로 다른 몸과 마음의 차이를 지우고 '정상적'인 존재만을 양산하는 사회의 주류 담론을 비판하는데요.
“우리가 망가져 있음을 수용하고 주장하고 포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네 아래는 오늘의 질문이자, 편지입니다.
천천히 살펴보셔도 좋고, 짧게 대답을 써보셔도 좋아요.
언젠가 원할 때 천천히 답장을 쓰셔도 좋습니다.
1. 지금도 반복하는 말버릇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 생긴 것인가요?
(예: “미안해”를 자주 한다면, 어떤 장면의 기억에서 왔을까)
2. 내가 부끄러워하던 성격을, 한 단어로 긍정형으로 바꿔보세요.
(예: ‘우유부단함’ → ‘사려 깊음’)
3. “내가 되지 않으려 했던 사람”을 적고, 그 사람이 내게 남긴 ‘좋았던 면’도 함께 적어보세요.
(용서가 아니라, 다만 장면을 재구성해보는 연습이죠.)
4. 자주 듣던 지적 중 하나를 골라, 그것의 반대가 진짜 장점인지 생각해 보세요.
(예: “왜 그렇게 느려?” → 반대말은 정말 좋은가요?)
5. ‘결핍’이라는 단어 대신 쓸 수 있는 단어를 3개 만들어보세요.
(예: 빈자리, 여백, 미완성의 공간)
다만 지붕이 무너졌다고 생각한 삶의 그곳에,
감도는 노을과 바람과 빛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서점 여행자의 거실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