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은 무엇인가
카페에 가기 전에 앱으로 미리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면 콘센트 위치부터 확인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와이파이도 연결할 수 없고, 테이크 아웃도 안 되는 카페가 있습니다.
이 카페는 말해요.
"친구를 데려오거나, 책을 가져오거나, 수채물감을 가져오세요."
그리고 덧붙이죠.
"파격적이기도 하고 위험한 시도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시도할 가치가 분명하다는 것도 알죠."
— NoFi Slow Bar
단골손님들은 이 카페의 정책에 흥미로워하고 또 고마워하는데요. 테이크아웃 뚜껑에선 맡을 수 없는 커피 향을 오랜만에 즐겼다거나, 머그잔 손잡이를 쥐는 순간 어딘가에 정착한 기분이 들었다거나, 첫 모금을 머금었을 때 입술에 닿는 도자기의 질감이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말하기도 하죠. 그리고 컵을 내려놓을 때 나는 작은 소리로, 여기 앉아있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면서요.
호주 멜버른도 테이크아웃을 금지하는 카페가 있는데요, 그 카페의 벽면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고 하죠.
길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하지만 뜨거운 한 잔을 즐기기에
인생은 충분히 길다.
요즘 이러한 곳들은 늘어나고 있는데요. 자연의 소리만 들으며 걷는 투어(* Silent Disco Nature Walks)는 동행과 수다를 떨거나,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오로지 자연의 내음과 풍경, 정취에 집중하게 하죠. 또 어느 호텔에서는 입실할 때 스마트폰을 맡기면 그 계절에 수확한 과일 주스를 내어주기도 합니다. 실시간은 피드에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이 계절에 있음을 만끽하라는 거죠. 이렇게 디지털 디톡스는 기술과의 단절이 아닌, 단절됐던 나의 감각을 회복하는 과정이 되는데요.
불편한 곳.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 곳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곳은 아닐까요? 불편함이란 문화적으로 배운 결핍일 수도 있고 학습되어 온 습관일 수도 있죠.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불편이 아니라 아무 느낄 틈 없는 완벽함일지도 모르니까요.
우리는 지금 무엇을 가장 불편하다고 여기고 있을까요?
거기엔 나의 어떤 감각이 사라지고 있을까요.
네, 나의 결핍과 단점을 알아야 하는 오늘의 서점으로 가기 전에요, 잠깐, 먼 곳을 들려볼게요. 느리게 걷기 좋은 동네랍니다. 서두르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해 보이는 곳이죠. 낮부터 밤까지, 천천히 언덕을 오르고, 광장을 거닐고, 느리게 앉아 있어도 괜찮은 도시. 여기 리스본에는 정말로 아름다운 수도원이 있답니다.
가장 크고, 오래된, 그리고 아름다웠던 수도원은 1755년을 기점으로
모든 수식어를 잃게 되고,
단 하나의 형용사를 갖게 됩니다.
바로 이곳인데요.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도원은
지붕이 없습니다.
1755년이죠,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도시의 온 건물이 무너지고 절반 이상의 도시가 파괴됐을 때, 이 수도원 역시 곳곳이 붕괴됐고 그 후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힘겹게 재건되어 왔는데요. 여러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상황과 부딪치고 또 건축학적 문제로 이 거대한 규모의 수도원 지붕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수도원으로 역할도 사라지고 고고학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수도원 규모를 가늠하실 수 있게 아래 사진에 사람을 표시해 놓았답니다.
이 정도로 거대한 미완의 수도원은 리스본 대지진 당시의 기록을 기반으로 역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시대별 국가의 기록과 유물, 주화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또 하나의 명소로 불리는데요. 바로, 밤이 되면 나타나는 리스본의 아름다운....
천문대가 됩니다
지붕이 없는 수도원이 곧 천문대가 된 거죠. '별 아래 리스본(Lisbon Under Stars)'이라는 행사는, 매년 여름이 되면 펼쳐지는데, 화려한 문양의 조명이 전체 벽면을 채우고 현대 무용과 같은 예술을 감상하고요, 머리 위로는 리스본의 별들이 빼곡하게 떠오르는 밤을 만들어줍니다.
정말 황홀하죠? 그래서 이제는 이 수도원의 가장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되었는데요.
이렇게 천장이 부서지고 파괴되고 또 소멸된 자리에는요, 한낮에는 빛과 바람이 감돌고 저녁에는 노을과 은하수가, 쏟아져내리며 한 편의 예술이 탄생하게 됐는데요. 말 그대로 붕괴된 그 지점에 색색의 빛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말이죠.
부서진 지붕으로 한낮의 빛과 바람이 감돌고,
600년 된 기둥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Every exit is and entry somewhere.
-Tom Stoppard
모든 것에는 금이 있고, 바로 그 금으로 빛이 들어온다던 말처럼
상처는 바로 빛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던 말처럼
그리고 모든 출구는 어디론가 들어가는 입구라는 말처럼,
하늘이 지붕이 되자 수도원의 모든 곳이 빛나게 됐는데요.
그렇게 부서진 건 천장이 아니라 기준이 됐습니다.
우리는 종종 원래 있던 게 사라지면, 결핍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처음과 모습이 달라지면 어색하고 여기고, 낡은 건 뒤떨어진 것 같고, 결함이 생긴 건 실패처럼 보이니까.
그리고 이건 비단 수도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죠. 만약 우리 삶에도, 우리 일상에도, 천문대가 된 곳이 있다면요. 우리는 삶에 떠오른 별을 잘 보고 있을까요?
부서졌기에, 예술이 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깨진 도자기의 흠집을 따라 수선하는 방식이 곧 예술이 된 킨츠키 공예는 '새것'처럼이 아니라 균열과 흠집을 따라 금빛을 냅니다. 해진 부분을 기워낸 방식이나 낡고 닳은 옷감을 붙여낸 조각보가 예술이 되기도 합니다. 시간이 만드는 파괴가 곧 예술의 일부가 되는 것을 보여주는 리처드 세라의 작품도 있죠.
회복은 원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전 단계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상태가 되는 진화라는 걸 알려주죠.
증상과 성장은 동시에 진행되기도 합니다.
상처가 완전히 치유된 다음에 성장이 오는 것이 아니라, 두 과정이 함께 진행되는 거죠.
수도원에서 볼 수 있는 건 단지, 밤하늘 별만이 아닙니다. 기둥사이로 떨어지는 햇빛, 회랑 위로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습기에 젖은 자갈의 울림... 그 공간에서 명상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체험을 하는… 사람들은요,
이제는 아무도 무너진 지붕을 애도하지 않습니다. 시시각각, 감탄할 뿐.
이제 우리의 부서진 천장을 바라볼 수 있는, 서점으로 가 볼게요.
먼저 런던으로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