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10. 숲해설가 시연 시험날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넉 달 동안 평일에는 이론 수업을 듣고 자정에나 들어오고, 주말에는 이곳저곳의 산에서 숲을 배웠다. 지난 5년여 동안 혼자 관찰해왔던 식물들이 품고 있던 신비로운 생태 원리에 눈을 뜨며 감동하기도 하고, 동기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연구소에서 식물 세밀화를 그릴 때는 '이곳이 작은 천국이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며칠 전 필기시험 날에는 다시 중고등학생이 된 것마냥 쉬는 시간마다 답을 맞춰보며 환호도 하고 탄식도 했다. "아유, 꽃등에를 꽃등애라고 썼네..." "어치가 자기 둥지를 짓는 새였어요? 이런..." 그 소란함이 정겨웠다. 아기자기한 동지애가 가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관문이 찾아왔다. 15분간 감독관들 앞에서 숲해설을 시연하는 실기 시험.
집합 시간을 두 시간 앞두고 현장에 도착해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앞서 여러 번 시연 현장을 답사하러 올 때마다 들렀던 곳이라 사장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한 달여 만에 만난 터라 근황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이렇게 다른 삶을 이렇게나 고유한 모습으로 잘 살아왔구나 하는 마음에 서로를 따뜻하게 칭찬했다. 그 삶의 시간들이 지닌 의미를 인정해 주었다. 비나 눈이 온다던 당초 예보와는 달리 희붐하게 날이 밝아오면서 카페 벽면에 신비로운 문양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우리의 대화가 한층 숭고해지는 느낌이었다.
요즘 손님이 많이 줄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그 시간에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 황석영의 신작 장편소설 《할매》 한 권을 건네 드렸다. 사장님께서는 종일 서 있으려면 추울 테니 중간중간 마시라며 텀블러에 아메리카노를 듬뿍 담아 주셨다. 이런 따뜻한 마음이라면 시험일랑 어떻게 되도 상관없을 것 같은 그런 평안함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현장에 갔더니 이미 동기 선생님들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털실에 솔방울을 매달아 나뭇가지에 걸고, 낙엽을 양파망에 모아 담고, 울퉁불퉁한 흙바닥을 평평하게 정돈하고... 긴 교육 시간을 함께하고 곳곳에서 실습 시간을 함께 채우는 동안 동지애가 쌓인 탓인지 눈만 마주쳐도 왈칵 눈물이 나올 듯했다.
나는 테이블과 흙바닥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시연했다. "겨울나무의 약속 - 내일에서 기다릴게!"라는 제목으로 곧 고등학교에 들어갈 학생 5명을 대상으로 한 활동이었는데, 지난달 중순까지 가르치던 중3 아이를 염두에 두고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야, 함께 공부하는 1년 반 동안 까막눈이던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줘서 고마워...
제일 먼저 시연하신 내 짝꿍 선생님 순서 때 참가자로 들어갔다. 느티나무에 붙어 있던 이끼 하나를 떼어 루페로 들여다보았는데 이끼 뭉터기를 맨눈으로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작은 것은 작은 것이 아니다. 모든 사물, 사람을 대할 때 이와 같은 세심함을 기울인다면 나의 태도가 얼마나 따뜻해질까.
'꿀벌' 선생님 시연 때는 초등학생 참가자로 들어가 개나리의 겨울눈을 루페로 들여다봤다. 끄트머리가 똑 부러진 몽당 이쑤시개 조각보다도 작은 겨울눈에 어쩌면 그리 가지런한 눈비늘이 달려 있는지. 따스한 봄날에 우리 시야를 가득 채우는 노오란 꽃잎이 여기 다 들어 있다.
종일 누그러들 줄 모르는 강풍에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랬더니 세상에- 팥배나무와 물오리나무가 이리저리 요령 있게 가지들을 뻗어 놓고 흰 구름을 도화지 삼아 열매 자랑을 하고 있었다.
다들 자기 순서에는 긴장하며 시연에 임하고, 다른 사람의 시연 때는 참가자로 들어가 힘껏 동기를 응원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속으로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숲과 대화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것 때문에 숲해설가가 되려는지도 모른다. 숲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만큼이나 자연과 소통하고 나 자신과 소통하려고. 늘 해왔던 그 일을 더 깊게 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권하려고.
그것이 렉시오 테레스트리스lectio terrestris 아닐까.
장로교 신학자 벨든 C. 레인Belden C. Lane(1943~)은 자연에 대한 이런 성스러운 독서를 자연에서의 묵상, 즉 렉시오 테레스트리스lectio terrestris라고 부릅니다. 이 수행은 단순하게 당신 주의를 끄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끌리는 것에 대해 숙고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초대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다음, 당신의 기도와 함께 침묵 속에서 머무는 것입니다.
─ 크리스틴 발터스 페인트너 지음, 맹영선 옮김, 《지구 수도원》 pp.59-60
숲해설가로서 내가 앞으로 어떤 '업'을 하게 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숲에서 알아차리고 숙고하고 귀 기울이고 침묵하는 소중한 나만의 순간들은 계속될 것이다. 더 깊어질 것이다.
강풍이 내면의 고요를 더욱 종용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