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1: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김현아 지음)
“세상이 무너지다” 어느 저자가 이런 말을 자기 책의 첫 문장으로 내놓고 싶을까.
수능을 며칠 앞둔 딸이 생애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사건의 실체는 그 후로도 4년이 더 지난 다음에야 드러난다. 딸에게 ‘양극성 장애’ 판정이 떨어진 것이다.
조울증이라고도 하는 양극성 장애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 중에서도 ‘내리락’하는 기분이 우울증 증상과 비슷하다. 이에 양극성 장애는 ‘오르락’하는 기분, 즉 조증의 유무로 우울증과 구분한다. 조증 삽화의 강도에 따라 양극성 장애는 다시 1형과 2형으로 나뉜다. 간단히 말하면 1형은 조증 증상이 심하고, 2형은 비교적 증상이 가벼워 우울증 환자로 오진될 때도 있다. 저자의 딸은 1, 2형의 특징이 명확히 나타나지 않는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였다.
명확하지 않다는 것만큼 나쁜 것도 없다. 저자 역시 딸의 첫 자살 시도를 보고 급성 우울증이라고 넘겨짚었다. 이후 딸의 자해를 두 눈으로 확인했던 날, 딸은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며 죽음으로 이를 벗어나고자 자살 계획을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를 저자에게 털어놓는다. 정신을 다 놓아버릴 법한 이야기였으나 부모가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저자는 대책에 나섰다. 명확하지 않은 딸의 병 앞에서 저자의 대책 찾기는 칠흑 같은 동굴 속을 걷는 것과 같았다.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받은 후, 저자의 딸은 7년간 열여섯 번이나 보호병동에 입원했다. 그사이에 저자는 수시로 딸이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전화를 받았고, 명쾌하게 파악할 수 없는 딸의 세계를 절망 속에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기가 막힌 한 가지 사실은 저자와 남편이 모두 의사라는 점이다. 저자 자신은 관절염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연구 업적을 쌓고 국내외 학회에서 다양한 수상 경력도 있다. 저자의 남편은 신경외과 의사로 뇌 연구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런 부부였음에도 둘째 딸의 병에 관한 것들은 전부 새롭고 낯설었다. 이 책 곳곳에 적은 정보들―뇌의 구조,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 정신질환 치료에 사용하는 각종 약물 등―을 보면 저자가 딸의 병을 이해하고 증상 호전을 돕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보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딸의 증상은 자해, 공황 발작, 공격성, 불안, 과장된 쾌활함, 우울, 날붙이를 보면 일어나는 급격한 충동 등 뭐 하나 가벼운 것이 없었다. 내 가족 중 누군가 이런 증상을 보이며 7년간 수시로 응급실에 실려 가고 보호병동을 오간다면 나는 과연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내 남편은?
투병 과정에서 일어날 만한 최악의 일은 자살이다. 딸이 자살 고위험군이라는 담당 의사의 말에 저자는 자살(그리고 자해)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 내용을 토대로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고 다분히 노력했다. 자살과 관련해 딸이 걱정한 것은 남겨진 가족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자살로 삶을 끝내버린 일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딸에게 힘주어 말했다. 그렇게 죽고 나면 이때까지 나를 채웠던 기쁨도, 슬픔도 영영 끝이라고 말이다. 좋은 것만 나누고 살아도 모자란 삶인데 자녀와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는 딸의 증상을 획기적으로 호전시키기보다 지금 여기서 딸을 돕는 방법들을 더 많이 들려준다. 특히 일곱 가지로 정리한 양극성 장애 자녀와 대화하는 방법, 여섯 가지로 정리한 ‘부모 서바이벌 가이드’는 현재 양극성 장애 자녀*를 둔 부모에게 실질적으로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중에는 “나의 마음을 먼저 다스린다”, “돈 계산을 확실히 한다” 등 놓쳐서는 안 되는 원칙들이 적혀 있다. 결국 저자의 요점은 ‘어떤 거창한 목표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양극성 장애 환자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삶 그 자체다. 아이가 자신을 다독이며 ‘나의 병도 나의 삶’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살도록 함께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 ‘2022년 정신건강실태조사(소아·청소년)’에 따르면 우울장애 및 양극성 장애의 경우,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현재 유병률이 0.6%(소아는 0.4%, 청소년은 0.8%)라고 한다.)
저자의 딸은 진단 후 7년째 되는 2023년에도 입원을 했다. 저자는 그토록 증상이 심할 때도 딸이 한 번도 부모와의 연결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 행운이었다고 고백한다. 답이 없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지금 여기를 살아감에 보탬이 되는 요소에 집중할 줄 아는 저자는 자기 말대로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다. 저자는 글을 맺으면서 ‘언어’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미쳤다’라는 말을 ‘아프다’라는 말로 바꿔보도록 노력한다면 정신질환 환자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사회의 시선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40대에 접어드니 주변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정신질환자 가족을 둔 지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한다. 가족의 증상을 이야기하는 그네들의 입에서는 “아파서 그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렇듯 정신질환은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 우리 주변에서 답이 없는 길을 걸어가는 많은 사람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오늘도 그들의 세상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