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2: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김초롱 지음)
“그 순간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필자에게 닥친 고통의 시간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녀는 가까스로 현장을 빠져나왔다.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펴놓고 곧바로 뉴스를 튼다.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사상자 수를 전하는 속보를 지켜보던 그녀는 감각을 싹둑 도려낸 듯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필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한 사람은 겁에 질려 울먹이는 친구를 달래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어.” 느닷없이 찾아온 극도의 위험 상황에서 처음부터 떼죽음을 떠올릴 사람은 없다. 한참 뉴스를 지켜보던 그제야 자신이 현장에서 목격했던 사람들이 모조리 죽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무서운지 집이 무너질 것만 같고, 집에 앉아 있어도 계속 집에 가고 싶은 조급함에 사로잡힌다. 평생 처음 느껴보는 공포심에 온몸이 벌벌 떨린다. 싸늘한 고립감이 든다. 진정시킬 수 없는 불안감에 어쩔 줄 모른다. 게다가 자신은 CPR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음에도 극도의 불안으로 용기를 내지 못하고 현장을 외면했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운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져든다. 온라인을 보니 도무지 피해자를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뼛속 깊은 분노가 치민다. 그리고 일상이 완전히 무너진다. 겪어보지 않고는 털끝만큼도 이해할 수 없는 혹독한 시간이 펼쳐진다.
이 시간을 보내는 필자에게 생명줄과도 같은 기관들이 있었다. 먼저 그녀는 수화기를 들고 지인이 알려준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그냥 끊은 뒤에야 통화를 했다.
“네, 여보세요. 여기는 한국심리학회입니다. …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
상담사가 계속 말을 건다.
“사고 현장에 계셨어요? … 목격자세요, 아니면 유가족이세요?”
“… 그냥 힘이 들어요.”
“힘드시겠지만 그날 있었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상담사는 그때까지 필자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되짚음을 하도록 따뜻하게 유도한다. 그리고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라며 그녀를 짓누르던 죄책감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그 이후로 그녀가 찾아간 정신과 전문의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상태를 일러주고 예상되는 고통도 정확히 짚어주었다. 든든한 신뢰가 차곡차곡 쌓였다. 전화 상담, 정신과 치료와 더불어 한국심리학회의 대면 상담은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필자에게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여전히 정신과 문제라면 짐짓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고,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은데, 필자의 경험을 따라가다 보면 관련 기관들의 존재가 사뭇 고맙게 느껴진다.
참사 초기, 필자가 구청 센터 담당자에게 받은 물품 꾸러미에는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제작한 안내서가 들어 있었다. 안내서에는 이런 문구가 실려 있었다. “살다가 누구나 재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 언제나 내게 재난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을 평상시에 훈련해야 합니다.” 그렇다.
우리는 일상을 살다가 언제라도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듯한’ 섬뜩하고 낯선 재난에 맞닥뜨릴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일이므로 빈틈없이 대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내게도 재난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은 평상시에 훈련할 수 있다. 자신의 아픈 경험을 진솔하게 담아낸 이 책이야말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까스로 재난을 피해 가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소중한 지침서가 되어준다. 겪어보지 않아 무지한 우리에게 소중한 배움을 전해준다.
필자는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고 물으며 319일이라는 시간 동안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본문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녀가 이 시간을 거치는 데 꼭 필요했던 것은 ‘연결감’이었다. 내가 외딴섬처럼 덩그러니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그녀를 살아 있게 했다. 대면 상담을 진행했던 상담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나름의 사정과 재난이 있어요.” 이 책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절절히 깨닫게 해준다.
2025년, 이제 우리는 참사로 죽거나 다치거나 트라우마 속에 고통스러워할 확률이 날로 높아지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그 순간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다시 한번 필자에게 닥친 고통의 시작점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연결감’을 마음속에 한 조각 나누어 가지고 우리 모두의 땅에 한 발을 내디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