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구 공간사옥), 김수근
[Prologue]
종로구의 아라리오 뮤지엄은 김수근 건축가의 구 공간사옥을 리모델링하여 미술관으로 바꾼 것이다. 구사옥은 1971년 당시 창덕궁을 비롯한 주변 한옥들과의 경관 조화를 위해 기와 느낌의 전돌로 축조되었다. 외피에 담쟁이덩굴을 입혀 계절에 따라 다른 입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김수근 건축가의 철학인 '건축과 자연의 공생'을 드러낸다. split floor와 human scale의 적용으로 나타난 복잡한 내부 공간이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Episode]
[덧쓰인 유산]
아래 그림과 같이 구관에 신관을 증축하여 구사옥이 만들어졌고 이 공간이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관은 콘크리트 구조에 검은색 벽돌의 외장재를 입혀 지어졌다. 신사옥은 공간의 두 번째 수장인 장세양 건축가의 작품인데 외피를 커튼월로 처리하여 구사옥과 대비를 이룬다.
[Split Floor]
관람은 삼각계단을 통해 신관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4층에 도달한 후 구관의 돌음계단을 내려오며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웠던 공간은 3층과 4층이다. split floor 방식과 중앙의 보이드에 의해서 다양한 레벨과 천정고가 나타나고 격자형 천창에서 은은한 자연광이 떨어진다.
[Human Scale]
삼각계단 중에는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좁은 폭을 가진 것도 있었다. 전시공간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의 출입구 또한 폭이 굉장히 좁았다. human scale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돌음계단, 한옥에서 따온듯한 목구조 등이 있다.
구 공간사옥은 김수근 건축가의 활동 초기 작품인 국립부여박물관 이후 한국적 건축을 탐구하며 만든 작품이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당시 일본의 신사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비판적 여론이 들끓었는데, 이후 그는 한국의 건축을 찾기 위해 전국을 답사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구사옥은 한옥의 마당을 닮은 듯한 중정을 품고 있고 크고 작은 방들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다.
[Epilogue]
2017년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거의 전시 작품만 보았고, 이번에는 공간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관람 중간중간에 내가 걸어온 길들을 머릿속으로 다시 그려보려 했으나 상당히 복잡해서 쉽지 않았다. 관람하면서 보이는 공간의 분절과 연속이 아돌프 로스의 라움플랜을 떠올렸다. 그래서 라움플랜에 관한 얘기를 짧게 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라움플랜(Raumplan)은 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인 아돌프 로스(Adolf Loos, 1870-1933)의 건축관으로 탄생한 공간 구성 방식이다. 그는 공간을 디자인할 때 이곳에 담기는 행위와 기능에 집중했다. 이에 따라 각각의 방은 개별성을 가지며 층고와 바닥의 높이, 크기가 다르다. 방들은 위계에 따라 배치되고 split floor을 통해 시각적으로 연결되면서도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 이러한 생각이 집약된 사례로 뮐러하우스가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