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포용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인터넷에서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쓴 글을 보고도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요.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와 이견이 있는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뭐 이런 말을 유명한 누군가 말한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많다는 것을 매일같이 확인하게 되니까요. 특히 인터넷에서요.
인터넷에서 불편한 글을 마주하기
인터넷을 보다 보면 시험에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 잘 만나지 않는, 여러 면에서 정반대인 사람을 쉽게 마주치죠. 트위터에서 타임라인을 훑다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하고 깜짝 놀라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유튜브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영상을 보지 않고 썸네일만 보더라도 ‘이건 아니지’ 하고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댓글을 보면 더 가관이죠. 인터넷이 보급된 지는 20년이 넘어도 여전히 인터넷에서는 무례하게 과격한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갖은 논쟁을 인터넷을 통해 접하면서 마음속에는 불 같은 화가 치솟고 타인의 생각을 존중해 보자는 제 다짐은 쉽게 위협받습니다.
최근에도 어김없이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글을 보았습니다. 글쓴이가 밉긴 하지만 불편한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저의 몫이에요. 글쓴이가 저를 겨냥해서 골탕 먹이려고 쓴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냥 글쓴이만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엉망이 되어버린 제 기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일단 위로가 좀 필요해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안전지대로 갑니다. 제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는 걸 확인받고 나면 기분이 좀 풀릴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에게 이 글을 보여줍니다. 다만 친구의 견해가 나와 다르면 난감하니 그동안 여러 방면으로 가치관이 나와 일치하는지 확인된 이어야 해요. 글을 본 친구의 ‘헐’ 소리를 듣는 순간, 즉각적으로 묵은 체증이 내려갑니다.
이 방법은 자주 쓸 수 없어요. 친구에게 내 불편한 감정을 떠 넘기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부지런히 공을 물고 달려오는 강아지처럼, 매번 인터넷 어디선가 거슬리는 글들을 보고 자꾸 나에게 들고 온다면 나라도 그 친구가 좀 싫을 것 같아요.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매번 친구를 찾을 순 없지요. 조금 간접적인 방법을 쓸 수도 있습니다. 제 SNS에 이 글을 공유하는 거예요. SNS 게시물은 어떤 친구 한 명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죠. ‘내가 이런 어이없는 글을 봤다’ 하고 올려두는 거예요. 제 SNS 팔로워들이 보고 알아서 물고 뜯게 해두는 거죠. 같이 맞장구치면서 욕 하지는 못 해도 최소한 그들도 마음속으로 한 번씩 ‘헐’ 하고 지나갔을 거라고 생각하면 화가 좀 풀립니다. 트위터로 치면 슬쩍 리트윗을 하는 거죠. 그리곤 이런 트윗을 추가로 남길 수 있습니다. ‘RT) 세상엔 진짜 별별 사람이 다 있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거부감이 드는 글이었다면 차단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글쓴이 계정을 차단할 수도 있고, 주제어로 차단하는 기능이 있는 SNS도 있지요. 만약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지인이 이상한 글을 써놓은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엔 SNS도 많이 섬세해져서 그와 구독 상태를 유지하면서 그를 내 화면에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어요. ‘알고 보니 넌 나랑 안 맞는 사람이구나~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떠들어라~’ 하고 ‘숨기기’ 같은 기능을 쓰는 거예요. 일단 내 기분이 좀 풀리고 봐야 하잖아요.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해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지금 이 모든 방법들이 와닿지 않거나, 이렇게 해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면? 그러면 이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어요. 바로 그 글에 댓글을 다는 것이지요.
댓글 달 것인가 말 것인가
결국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찝찝함 때문이에요. 그 불편함이 발단이 되어 원글을 반박할 댓글을 달려고 마음을 먹게 되죠. 댓글을 달 마음까지 먹으면 저에겐 약간의 패배의식이 찾아옵니다. 이 불편한 글을 보며 세상의 다양성을 깨우치는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한 궁극의 태도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잖아요. 그리고 이미 글쓴이 모르는 곳에서 제 편들 과 그를 비판했어요. 이것도 모자라서 글쓴이에게 말을 걸며 '그냥 못 지나치는 속 좁은 인간'이라고 자진신고를 하려는 참이에요. 고상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도 크지만, 그럼에도 저의 좁은 원리원칙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한마디를 해야겠다는 욕구가 이번에는 승리를 했습니다.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전 싸움을 진짜 진짜 못 하거든요.
댓글이 하나도 없는 글에 댓글을 남기는 것이 쉬울까요,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는 글에 남기는 것이 쉬울까요? 내가 최초의 댓글을 남긴다고 생각하면 좀 부담스럽기는 하죠. 글을 읽는 사람들이 죄다 나의 댓글을 읽어보게 되니까요. 글쓴이만큼 주목받고 싶지는 않은데 편지 마지막에 붙어있는 추신처럼 첫 댓글에도 눈길이 가게 될 거예요. 댓글이 이미 많이 달려있다면 여러 목소리를 내는 군중 속에 숨어 있는 기분이라 익명성이 보장되는 느낌이에요. 저처럼 싸움을 잘 못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댓글 다는 게 마음이 편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본 거슬리는 글에는 댓글이 하나도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업로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제가 그 글을 읽었기 때문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댓글을 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의 꼰대는 꼭 한마디를 하고 싶었기에 첫 댓글을 다는 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내가 제일 처음 댓글을 달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댓글을 더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거예요. 댓글에 글쓴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똘똘 뭉쳐있는 걸 본다면 저도 뒷걸음질 쳐서 하던 대로 제 SNS에서 꿍얼거리는 걸로 만족했을 거예요. 하지만 체스에서는 먼저 움직일 수 있는 백이 조금 더 유리하다고 하잖아요. 저도 이 기회를 첫 수(gambit)를 놓을 기회로 삼았어요.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거죠. 글쓴이를 비판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자처한다는 것, 좀 못 됐나요?
댓글을 달고 난 후
꽤나 대범하게 행동했지만, 역시나 인터넷에서 댓글을 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댓글을 올리고 나자 전 자연스럽게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입술을 뜯었어요. 글쓴이가 점잖은 사람이 아니면 어쩌죠. 일단 저보단 쎈 사람일 것 같아요. 글쓴이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댓글이 달릴 것을 감수하고 이런 글을 올렸잖아요. 제 댓글쯤은 그의 말빨에 손쉽게 그리고 허무하게 퇴치될 지도 몰라요. 어쩌면 그는 키보드 워리어인 거예요. 제 댓글을 보고 기분이 나빠져 저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시작합니다. ‘그럼 님은 *** 상황에서도 이렇게 행동하겠네요? 님은 ***한 것도 불편하겠네요? 님 되게 있어 보이는 것처럼 말하는데 솔직히 설득 안 되는 거 알아요?’ 으….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전 자꾸 새로고침 하면서 글의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었어요. 제 밑으로 누가 어떤 글을 달지 너무 초조했거든요. 제 댓글이 발단이 되어 저와 다른 입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봉기해서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의 댓글을 줄줄이 단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 개의 불편한 글로도 모자라 n개의 불편한 댓글까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꼴만 나는 겁니다. 조용히 ‘뮤트’ 기능을 썼으면 볼일 없었던 건데 쓸데없는 짓을 한 거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엔 저의 카르마겠지요. 다 함께 사는 세상인데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이렇게 힘들어서 반박 댓글까지 달고, 노심초사하며 페이지를 새로고침하고 있는 것이요.
글에는 댓글이 총 4개가 더 달렸습니다. 제 밑으로 연속 3개는 글쓴이의 의견에 동의하는 댓글이었고, 마지막 한 개가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내용이었어요. 3개의 댓글에서는 글쓴이에 동조하는 의미로 ‘헐’이라는 감탄사를 빠짐없이 쓰고 있었습니다. 그 ‘헐’이 나를 위한 것이어야 했는데…. 그래도 마지막 댓글이 달려서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었어요. 3 대 2, 글쓴이를 포함하면 4 대 2 스코어이지만 어쨌든 전 혼자가 아님을 확인한 것으로 댓글을 단 행동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미련을 못 버리고 제가 첫 댓글을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달았다면 아래 달린 댓글들의 내용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제 필력을 탓하게 되네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더 보고 싶다는 욕망은 언제쯤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자세로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 좋게 마음먹고 넓게 마음을 쓰는 것.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전 그걸 하고 싶었던 건데 말이에요. 옹졸한 성격이 매번 사고를 칩니다. 참, 제가 댓글 단 글의 내용이 궁금하실 것 같네요. 글쓴이는 최근 개봉한 디즈니의 인어공주 실사판 영화를 자녀에게 보여줄 것이냐고 묻고 있었습니다. 그는 보여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인어공주가 너무 못 생겼고 영화가 예전과 달라져서 싫다고 했어요. 이 영화에 대해 요즘 말이 많은데 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이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글쓴이도 개방적인 자세로 다른 의견을 들으려고 했네요. 댓글이 5개 달리자 원글을 삭제 하긴 했지만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은 한 것 같습니다. 비록 ‘겨울왕국 3편’도 언급하면서 엘사가 퀴어일 가능성에 대해서 ‘디즈니가 막 나간다’고 비판하긴 했지만요. 저는 어디까지 개방적 이어야 이런 글을 성인군자처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을까요? 인격 수양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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