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를 좋아한다. 어린이집에서 집에 오는 길에는 꼭 화단에 있는 나뭇가지를 골라 집어 들곤 한다. 매끈하고 멋지게 생긴 나뭇가지를 발견하는 게 신나고 기분 좋은 일인 건 알겠는데, 얼마 전에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유난히 눈을 반짝이며 허공에 휘적이길래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 기사가 와서 용을 혼내주는 거야
- 아 기사가?
- 응. 내가 나무 요정을 나뭇가지로 이렇게 찌르면!! (나무 요정이) 아야! 할 거야. 그러면, 내가, ^^(눈웃음) "이야~ 신난다~" 할 거예요. 그러면, 공주가, "이야~ 잘했어, ㅇㅇ(자기이름)아~~" 하는 거예요.
- 아~ ㅇㅇ이가 기사야?
- 네, 난! 용감한 기사야!
언제가 본 그림책에서 공주를 잡아간 용을 기사(Knight)가 물리치는 게 나왔었고, 다른 숨은 그림 찾기 책에서는 악당이 나무 요정으로 변신해서 잠자는 공주방에 숨어들은 장면이 나왔었다. 두 내용이 섞이긴 했지만 어쨌든 나뭇가지를 든 이상 자신은 나무 요정이든 용이든 나쁜 악당을 물리치는 기사라는 것이다.
말을 시작한 순간의 이야기와 끝맺는 순간의 이야기가 전혀 달라지는 게 우스웠지만, 그걸 논리적이고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쓰는 아이는 말도 못 하게 사랑스럽다. 게다가 두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를 용감한 기사에 대입한 것은 놀라웠다. 페미니스트 엄마로서 딸이 대견하기 말로 이룰 수가 없을 정도. 자신을 "용감한 기사"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완벽한 플롯을 가진 이 순간을 운이 좋게도 모두 영상으로 담았다. 2022년생 여아가 나쁜 악당을 물리치고 같은 여성을 구하는 이 멋진 영상을 어찌 혼자 보리. 팔불출이니 당장 그만두라는 내 마음 한 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현재까지 약 7명 정도의 친구에게 영상을 보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개별 연락 주시면 기꺼이 송부드립니다.)
오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몇 층 아래에서 다른 사람이 탔다. 아니, 엘리베이터가 속도를 줄이고 8층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문이 열리고 사람이 타고 문이 닫힌다는 멘트가 나오고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용감한 기사가 말했다.
- 엘리베이터는, 눈 코 입이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하지?
대답을 하는 대신 안고 있던 꼬마 기사의 관자놀이에 뽀뽀를 쪽 해줬다. 그래도 계속 쫑알쫑알. 그냥 웃고 넘어가기엔 아까운,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엉뚱함과 천진함이 매일 퐁퐁 솟아난다. 요즘 쌍둥이 꼬마들의 희망 사항은 엄마처럼 신발을 서서 신을 수 있게 되는 것. 이젠 혼자서도 신발을 잘 신지만 엄마와 꼭 같아(똑같아를 '꼭 같아'라고 발음한다) 지고 싶어 하는 꼬마들이 참으로 당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