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덕분에 인생학 수업을 다시 듣고 있다.
"엄마, 아무나 따라가면 안 돼요. 나쁜 사람일 수 있어요."
"엄마, 우리 집에 불이 나면 대피해야 되지요?" (물어보는 거 아님)
좋은 건 혼자 알 수 없다는 따수운 마음. 혹시 내가 앞가림 못 할까 봐 자신이 배운 지식을 나에게도 전수해 주기 바쁜 거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가르쳐 줄 때처럼 명확하게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이지만, 자주 말이 꼬인다. 다행히 꼬이지 않고 말을 마치는 때에는, 만족스러움에 입꼬리는 씰룩하고 웃으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단호함을 유지한다. 곧 인생학101 강의를 시작해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이다.
근데 이러는 것도 성격이다. 인생학 강의를 펼쳐놓는 쪽은 주로 "용감한 기사"를 자처하는 아이이고, 다른 한 명은 잔소리가 좀 적다. 최근엔 우는소리 내는 재미에 들렸는지, 매사 당당한 한 명과는 다르게 별것도 아닌 일에 울상을 쓰며 징징 거린다. 눈물 한 방울 안 나오면서 괜히 그러는 거다. "울지 말고 제대로 말해줘~ 뭐 해달라는 건지 엄마가 못 알아듣잖아" 하고 내가 말하면, 우는소리로 "엄마,,, 가위랑 색종이 듀세요,,," 라던가 "쌀과자 먹고 싶어요,,, 쌀과자,,, 쌀과자,,, "라며 온갖 불쌍한 척은 다 한다.
그러지 말고 너도 용감한 기사 하라고 부추겼더니, 자기는 용감한 기사의 친구라며 선을 긋는다. 정말 둘이 어쩜 이리 다르냐. 둘이 서로 놀다가 갑자기 나한테 달려와서는 "엄마,,, ㅇㅇ이가 같이 안 놀아줘요,,,"라고 말하는 쪽도 언제나 기사 친구다.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길래 "가서 같이 놀자고 말해. 'ㅇㅇ아, 같이 놀자' 하고 물어 바 봐~"라고 알려준다. 우리 집 인생학 강사가 보면 놀랄 만큼 현명한 조언.
우는소리에 덧붙여, 기사 친구가 또 재미를 붙인 건 '삐진 몸짓'이다. 그림책이나 만화에서 누군가 화가 나면 팔짱을 낀 채로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는, 두 팔로 팔짱 흉내를 내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격한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팔이 짧아서 팔짱이 안 껴지기 때문에 자신을 감싸안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미간 찌푸리는 것도 익숙지 않아서 눈썹 사이가 일그러졌다고 보이기보단 '코를 왜 저렇게 들창코를 만들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뭔가 잘 안되고 있다고 느끼는지 나에게 와서 "엄마 팔짱 어떻게 끼는 거예요?" 하고 물어본다. 이럴 땐 우는소리 하나 없이 어찌나 또렷한지. 어릴 때만 발휘되는 총명함으로 이런 것만 흡수하고 있다.
많이 큰 것 같지만 둘 다 아직 밤에는 기저귀를 한다. 잠들고 나면 기저귀로 갈아입히는데, 갈아입히느라 몸을 들썩거려도 깨는 법이 없다. 나라면 아무리 깊은 잠이 들어도 누군가 건드리면 바로 깨버릴 텐데. 인생학 이론을 열심히 배우긴 해도 아직 세상에 대한 경계심이 하나도 없는 것 아닐까. 그래서 누가 건드려도 졸음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저렇게 깨지 않고 푹 자는 게 아닐까. 잠든 아이를 쓰다듬으며 생각해 본다. 화들짝 깨는 법은 없지만 내가 귀찮게 하니 잠든 머리를 두 손으로 박박 긁적인다. 시원하게 긁고 나면 손을 내리는 와중에 다시 깊은 잠에 빠지는지 손이 바닥에 닿지 않고 중간에 멈춰있다. 자기 손인지도 모르고 그 손을 빤히 바라보던 아기 시절이 떠오른다. 기저귀로 다 갈아입히고 허공에 뜬 아이의 손을 가지런히 바닥에 놓아준다. 잘 자, 기사랑 기사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