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주민 이야기
미국 원주민은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했을 때부터 원주민은 눈엣가시였고, 특히 금이나 광산을 노리고 있던 침입자들에게는 장애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금 앞에 공존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원주민 살해 사건이나 노예로 삼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뿐 아니라 침입자들이 가지고 온 병이나 환경 변화로 인해 많은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부족이 통째로 멸망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일시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가졌던 시기도 있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 원주민을 쫓아내거나 죽이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자체나 언론에서 이런 폭력적인 행위들을 장려,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이 일어난 1861년에는 이미 동부에는 원주민이 살 곳은 없었다고 한다.
원주민과 백인 침입자들의 갈등 끝에 일어나게 된 폭동과 학살 사건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〇다코타 전쟁
1851년, 미네소타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수렵 민족 다코타족은 그들이 가진 사냥터를 미국 정부에게 팔고, 팔았던 땅과 비교가 안될 만큼 작은 땅을 지급받아서 살게 된다.
팔았다고 하면 공정한 거래처럼 보이지만 다코타족에게는 화폐 경제의 개념이 없어 돈은 의미가 없었고 바로 정착해 있던 백인들이 그 돈을 뺏어간다.
수렵 민족이 사냥터를 잃으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데 미국 정부는 매년 식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 조약을 맺는다.
하지만 정부는 그 후 식품 제공에 대한 항목을 조약에서 삭제한다.
제공될 때도 있기는 했지만 관리국에서 가로채는 등 다코타족은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수렵생활을 버리고 농업으로 전환하라는 권고도 있었으나 다코타족은 수렵생활을 이어 나가려 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쉽지 않았다.
백인들도 수렵에 나섰고 다코타족의 채석장까지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다코타족의 울분은 결국 터지게 된다.
1862년 8월, 4명의 다코타족 남성이 수렵을 하러 나갔는데 역시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보류지에 돌아가던 중 백인이 운영하는 농장을 지나가 그 농장주와 가족들을 살해한다.
이를 계기로 다코타족은 백인들을 자신들의 땅에서 쫓아내기 위한 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백인 측에도 많은 사상자가 나오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군사나 장비 규모로 이길 수 없어 결국 다코타족의 전사들은 약 한 달 뒤에 항복하게 된다.
약 2000명이 감옥에 수감되었고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던 여자나 아이들도 이에 포함되었다.
392명이 재판을 받아 307명이 사형선고를 받고 38명이 동시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약 1700명이 수용소로 옮겨지고 열악한 환경 때문에 300명 이상이 사망한다.
한편 이 폭동으로 백인 측에도 450~800명가량의 희생자가 나왔다.
〇샌드 크리크 학살
1864년 11월 29일 콜로라도에서 샤이안족과 아라파호족에 대해 미군이 학살을 감행했다. 원주민 투쟁 중 막바지에 일어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콜로라도에서는 신문사 주최하에 "원주민 몰살 캠페인"도 개최가 되는 등 지금은 상상도 못 할 공포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샤이안족과 아라파호족의 수장들은 백인들과 공존하고 지금까지의 분쟁들을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콜로라도 중부 덴버에 있는 미군기지를 찾아가 군의 대령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대령은 그들에게 이주를 명령했다.
원주민들 중 호전적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주를 하려고 하다가 중간 지점에서 야영을 했다.
사건은 이때 일어난다.
원주민들에게 군 대대가 대포를 발사했고, 평화를 원했던 수장은 필사적으로 하얀 깃발을 흔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포함한 무기를 들지 않았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학살을 원주민 몰살 캠페인까지 했던 여론은 극찬했고 일부 동부 백인사회는 미군에게 반발도 보이지만 그래도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도 컸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과 부유함를 구축하는 과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침범이고 배척이다.
다코타 전쟁에서는 미군 및 민간인들도 상당수 희생되었고 일부 원주민에 의한 잔인한 살인 현장에 대한 보고도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코타족을 향한 비판도 크다.
그래도 현대를 사는 내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원주민에게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었다면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든다.
꼭 부(冨)를 독점하고 동화시켜야 만 나라를 만들 수 있는걸까.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위협으로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다음의 한 걸음을 배척이나 공격이 아닌 대화나 이해로 바꾸는 방법은 없는 걸까.
정말 여러 생각이 들게 되는 사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