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이유가 필요한 나
2022년 초여름.
어느 금요일 날 나는 오후 반차를 쓰고 안국역으로 갔다.
서울 공예 박물관에 가기 위해서였다.
애초에 박물관에 가기 위해서 휴가를 쓴 건 아니었다.
나는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이왕 벗어난다면 재택근무로 인해 일터가 된 자택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생겨 박물관을 가보기로 했다.
마침 며칠 전에 SNS에서 본 서울공예박물관에 관심이 생기던 참이었고, 또 당시 신분당선이 연장되어 3호선 신사역까지 바로 간다는 것도 내 외출 욕구를 조금만 더 부추기었다.
그렇다.
나는 소위 말하는 집순이이며 몇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어야만 외출을 하려고 하는 편이다. 벗어나고 싶다. 그 마음 하나였으면 집에서 영화나 보면서 "정신적 벗어나기"만으로 만족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가기로 결정하면 일단 옷을 골라 입어야 한다.
외출이니 예쁘게 입고 싶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것 같아 치마는 별로 좋은 선택지가 아닌 듯했다. 꽃무늬 자수가 들어간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입었다.
얼마 전에 남편이 선물해 준 팔찌도 차고, 가방은 거의 10년은 쓰고 있는 작은 가죽 가방에 지갑과 전자 서적 리더기, 이어폰을 넣었다.
마지막에 신발을 골라야 한다. 신발은 늘 고민거리다. 오래 걸을 것 같으니 편안한 신발을 신고 싶은데, 블라우스에는 약간 불편하더라도 예쁜 신발을 신어야 한다. 결국 캐주얼에도, 예쁘게도 신을 수 있는 검은색 샌들을 신었다. 늘 이렇게 골라 이 샌들만 빨리 닿는다.
어찌어찌 외출 준비를 끝내고, 업무도 마무리를 짓고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을 타니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코로나가 일상에 스며들어서 그런지, 지하철 안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도 보인다. 몇 달 전까지는 분명 그런 모습에 예민하게 반응했었는데, 지금은 거슬리지 않았고 되려 흐뭇하기도 했다.
종점인 신사역까지 가고, 3호선으로 갈아타고 안국역까지 간다.
안국역 주변은 나한테 관광지이다.
한국에서 살기 전 가끔씩 관광으로 놀러 오면 꼭 들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일을 겪은 요 몇 년 사이에 가게들도, 분위기도 많이 변한 듯했다. 외국인의 모습은 확연히 줄었고 가게들도 소심하게 안쪽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문을 닫아버린 빈 점포도 눈에 띄어서 마음이 아프다.
비교적 조용한 금요일 오후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박물관을 좋아하지만, 내 부족한 집중력 탓에 한 번에 여러 전시품이 눈에 들어와 산만해지고, 귀한 정보나 지식을 놓치는 기분이 든다.
내가 유리 상자 안에 들어가고, 전시품이 하나씩 나를 찾아와 준다면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어 좋지 않을까, 겸사겸사 지금까지에 산만함에 대해 전시품들에게 사과드리고 싶다, 이런 쓸모없는 생각들을 하면서 구경을 마치고 골목을 걸어본다.
지하철 안에서 찾아본 바로는 정독도서관 쪽에 카페가 있다.
물론 카페야 여러 곳에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격대와 분위기에 맞아 보이는 카페가 있는 것 같아 가보았다.
검색하지 않으면 어디든 못 들어가는 이 소심함과 신중함도 내 3대 싫어하는 부분이다.
물론 남은 하나는 산만함이고.
도착한 카페는 적당히 넓고, 자리도 많으며 좋아 보였다.
다양하게 빵도 팔아 계속 걸었던 나는 여기서 작은 빵을 하나 먹기로 했다.
빵을 집으면 떠오르는 남편의 얼굴. 무언가 선물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어디론가 혼자 간다면 어김없이 남편에게 선물을 사곤 한다.
딱히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 마음에 들면 티셔츠나 양말을 살 때도 있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많이 사는 건 빵이나 과자류다. 왜일까. 나는 여기서도 아몬드 쿠키를 골랐다.
커피까지 계산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에게는 빵이나 쿠키에 대한 믿음이 있다.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점.
식탁에 이들이 있으면 든든하다.
타지에 왔고, 외출을 했다는 기념품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점.
설령 평범한 빵/쿠키라고 할지라도 그 지역에서 파는 것을 먹어봤다는 게 신기하게도 흡족함을 준다.
나는 빵과 쿠키를 정말 사랑하나 보다.
아무튼 빵류는 힘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싫어할 일은 없고, 집에 아무리 많아도 버리게 될 일은 없다.
구매한 쿠키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좋은 선물을 산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내가 의아했다.
헛되어도 내가 사주고 싶은 것, 남편이 썼으면 하는 것을 사도 되는데.
내키지 않으면 안 사도 되는데.
선물은 사야 되고, 실수하면 안 되고.
기념이 되어야 하고, 버리게 되면 안 되고.
그렇다고 특별하지는 않다. 집에 넘치는 게 쿠키다.
쿠키에게는 약간의 실례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의아함 다음에 찾아오는 씁쓸함.
외출을 위해 몇 개씩이나 구실을 찾는 내가.
욕심은 많지만 산만해서, 급해서, 늘 정보의 절반을 놓치는 내가.
아깝다. 이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용기가 있고 호기심을 행동에 옮길 수 있었다면 더 넓은 세계를 보았을 텐데.
쿠키가 아닌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집에 가져갈 수 있을 텐데. 참 아깝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커피를 본다.
아이스아메리카노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나온 건 따뜻한 아메리카노였다.
바람도 부니 따뜻한 것도 괜찮아서 그대로 받았다. 하지만 말할 수 도 있었다.
나는 차가운 커피를 시켰다고.
이런 소심한 내가.
아쉽고 밉고 후회가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나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고, 쿠키는 언제나 맛있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