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 번외 편 "페르시아어 수업"

모두 이름이 있었다

by Illy

본편도 못쓰고 있었지만 번외 편을 쓰게 되었다.


작년부터 시작된 육아 때문에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글을 쓸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정말 정말 오랜만에 전쟁영화를 볼 수 있었고 나에게 큰 자극이 되어서 다시 기록을 하고 싶어졌다.


전쟁 영화를 보는 데에는 시간이나 심리적인 여유보다는 내 안에 있는 공포심을 직시할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이번에 고른 영화는 "페르시아어 수업".

영화를 보기 시작할 용기가 생긴 것까지는 좋았으나 2시간 자리 영화를 쭉 볼 체력은 없었나 보다.

3일에 걸쳐 쪼개서 보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나치에 잡힌 유대인 레자는 처형을 피하려고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마침 수용소에 근무 중인 코흐 대위가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위해 페르시아인을 찾고 있어 레자는 살아서 수용소에 가게 된다.


레자는 주방에서 일하면서 업무가 끝난 다음 코흐 대위에게 페르시아어 단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당연히 레자는 페르시아어를 할 줄 모른다.

수감자 명단 작성 업무도 맡은 레자는 수감자들 이름을 따서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들을 만들어 코흐 대위에게 가르친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개인'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 수는 약 600만 명이라고 한다.

이 대학살 외에도 방대한 희생자가 나온 전쟁, 분쟁, 테러사건, 사고 등이 일어났었고 슬프지만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방대한 숫자에 놀라는 나머지 개인을 보지 못한다.

600만 명, 30만 명, 1만 명, 100명.

어떤 숫자가 됐든 거기에는 한 명 한 명 각자 다른 인생이 있었고 그들이 살아갈 하루가 있었고 그들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던 그들 속에만 존재한 생각이 있었다.


몇만 명의 희생은 몇 만개의 인생/하루/생각의 소멸인데 그걸 몇만이라는 숫자가 덮어버려 그 무게에 대해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사람의 이름이고 얼굴이고 목소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중 하나인 이름을 레자가 기억함으로써, 코흐에게 기억하게 함으로써 흔적을 남겼고 우리에게 그 무게를 알려준 것 같다.



1940년대 수용소 내부.

자신이 배우는 게 페르시아어인지 무언지 검증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정보도 없고 자료도 없고 뭐든 다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시대인데 대량 살육은 가능했고 수감자를 죽일 방법과 이유는 다양했다.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인간과 전쟁의 광기인 것 같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전쟁을 하고 있고 포로가 있고 민간인 희생자가 있다.

광기에서 벗어나길. 광기가 일상이 되지 않길.

이미 늦은 감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럼에도 그것만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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