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기념, 셀프 촬영기

“웃어줘,호은야!”

by 일리


요즘 백일 사진들은,

인형들 사이에 나란히 앉아 누가 인형인지 찾아보라는 듯 앙증맞거나, 장원급제하고 금의환향 한 선비처럼 고운 한복을 입고 앉아 근엄하거나. 또는 실오라기 하나 없이 가죽의자에 앉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옛날 동네 사진관마다 걸려 있던 그런 사진들.

그중 눈에 띈 건 노란 튤립과 뒤엉킨 형형 색색 꽃들 사이 앉아 있는 잎새보다 작은 아이 사진. 통창 너머 햇살을 온전히 머금은 모습이, 꽃 속에 살포시 내려앉은 듯했다.


"백일 사진은 여기서 찍어야지!"

마음에 드는 스튜디오를 발견했지만, 4시간마다 잠드는 아기와 1시간을 이동해 옷을 여러 번 갈아입히고, 조명을 번쩍 터뜨리며 촬영하는 건 상상만 해도 숨이 찼다. 낮잠 시간을 피해 동선을 짜는 것도 쉽지 않았고, 잠을 방해하는 것 자체가 조바심이 났다. 결국, 잠도 자고, 편하게 수유도 하면서 쉬엄쉬엄 집에서 촬영하기로 했다.

메리모먼트 구성이 예뻐서 팬심으로 컨셉을 참고해 봤을 뿐. 전문가의 영역이기에 감히 비슷할 수도 없다. 미숙하기만 한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1박 2일에 걸쳐 촬영했다는 웃픈 이야기.




꽃을 쓴 오잉

꽃과 방수천, 담요, 애착인형을 준비했다. 자주 가는 꽃집에 샘플 사진을 보내고, 촬영용 화관을 주문했더니 아기 머리둘레를 쟤달라고 했다. 41cm. 작은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평균 이상이었구나 너.


첫날, 울거나 인상 쓰거나


호은이가 단잠에서 깨어 맛있게 맘마를 먹은 후 정오가 되어서야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 당일엔 다행히 날씨가 좋아 거실창으로 햇살이 부드럽게 드리웠다. 혼자 앉지 못하니 아빠가 옆에서 잡아주는데, 한 번도 앉아본 적이 없어 앞뒤로 기우뚱했다.

낯선 상황이 어색한 듯 호은이의 표정도 영 미묘해

"우를루루루룰루, 까꿍"

"은~호야~여기 여기 봐봐!!"

카메라로 얼굴을 가리고 딸랑이를 흔들며 소리치는 엄마를 보고는, 호은이는 입을 삐죽이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 컨셉은 중심을 잡아주는 아빠의 팔힘과 아이의 컨디션, 화관의 각도가 매우 중요했다.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아쉬워서, 다음날에도 한번 더 촬영했다.


둘째 날, 울지 않았으니 성공이야


낡은 DSLR과 아이폰을 번갈아가며 찍었는데, 실력이 부족하니 DSLR은 거추장스러웠다. 아이폰 인물모드만으로도 충분했다.

화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누워서도 찍었다. 매일밤 호은이와 자는 토끼 손수건도 옆에 두고.

인생에 한번 전라로 촬영할 수 있는 기회지만(?) 음. 별로 귀엽지 않았다. 중요 부위는 이불로 살짝 가리는게 좋겠어.


찍고, 울고 먹고 쉬다가, 또 찍고


아차차.

벗기고 찍으니 쉬야를 했을 때 막을 수가 없지. 누워있다가 시원-하게 볼일을 봐버렸다. 이건 예상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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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끼 토끼 오잉

아기들은 모자를 썼을 때 귀여움이 배가되는데, 무려 토끼 모자라니.

배 위에 올린 고사리 손, 누워서도 볼록한 배를 보니 뿌듯하다. 촬영하다가 쉬어갈 때 추울까 봐 수건을 덮어주었다.


아직 모자가 헐렁하네. 천천히 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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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내요 미스터 오잉

벌써 밤이라니..?

오늘의 마지막 씬은 터미타임을 선보일 차례. 가슴까지 들어 올려 볼록한 쿠션 위로 얼굴이 다 나와야 하는데, 한두 번 하고는 힘들어해서 더 찍지 않았다. 운동하고는 피곤했는지 수유 중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낑낑, 힘을 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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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오잉이의 소원

"네가 이만큼이나 작았어!"를 표현하고 싶었다. 너무 빨리 크니까.

식물 바구니 안에 범보 의자를 넣어 이불로 푹신하게 만들고 앉혔다. 꽤 편안해 보이는 호은.

꽃을 한두 송이 꽂아주니 우리에게 온 선물 같았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초점이 맞지 않았지만, 말미에 찍은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꼭 소원을 비는 것 같아서.

... 혹시 빨리 촬영이 끝나게 해 달라는 소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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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평소 내가 컨디션 좋을 때 남기던 매트 성장샷을 남겼다.

할머니가 가장 마음에 든다 했던 가장 자연스러운 사진들.


다리를 쭉 펴니 제법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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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나라 파티

이틀간의 촬영을 마치고 우리끼리 단출하게 축하하려고 셀카봉을 준비하고 부엌 조명아래 섰다. 종일 촬영과 모유수유에 잠옷바람이었던 나는 호다닥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런데 그 사이 잠든 호은.


꿈나라로 먼저 출발한 주인공


이것도 추억이다. 그렇게 잠든 호은이를 안고 10초 동안 조용히 웃으며 우리 셋의 기념사진을 남겼다.

친구가 직접 만들어준 케이크 토퍼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각기 다른 10개 그림마다 친구의 마음이 스며있다.




그냥 편하게 가서 찍지,
왜 이렇게까지 고생을...


촬영 후 허리를 펴지 못하는 나를 보고, 시어머님이 안타까워하셨다. 게다가 웃는 모습을 담고 싶어 광기 어린 눈으로 노래를 부르고 온갖 재롱을 부렸더니, 다음 날 호은이가 나와 눈을 마주쳐 주지 않았다.


이날 이후, “다시는 셀프 작업을 하지 않으리" 하다가도, 입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컨셉으로 촬영하면 300만원이 넘었을 텐데, 1/10보다도 적은 금액으로 해결했으니. 허리 하루쯤은 기꺼이 내줄 만하지 않나-생각했다. 경제적인 대신, 그만큼 내 시간과 체력을 맞바꾸는 일이었다.


아이를 낳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소비의 선택 기로에 선다. 내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것들은 직접 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과감히 생략했다.

셀프 촬영도 그중 하나였다. 고군분투해 아낀 비용으로 우리의 첫 제주도 비행기표를 사고, 가족들과 가까운 친지에게 맛있는 떡을 돌렸다. 코로나 때문에 모두 함께 모이진 못했지만, 호은이가 쑥쑥 잘 크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엄마 친구, 형지 아줌마는 ‘백일 떡은 100명과 나누어 먹어야 호은이가 건강하게 오래 잘 산다’며 동네 분들과 넉넉하게 나누어 드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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