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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ul 14. 2023

장모님, 밥투정은 금지입니다.

   아내와 나, 둘의 여행에 장모님이 합류하셨다. 피렌체를 시작으로 베로나, 돌로미티까지 54일의 여정을 장모님과 함께 하기로 했다. 장모님은 이제 일흔을 넘기셨지만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에 큰 걱정은 없었다. 걷기 만큼은 젊은 우리보다 나을 거라고 늘 자신하시던 분이었다. 제주 올레길을 정방향으로, 그리고 다시 역방향으로 완주하셨고, 유명하다는 전국의 웬만한 산은 모두 오르셨다. 아직까지도 하루에 몇 시간씩 동네 근처의 산을 산책하듯 다니셨다.


   여행 스타일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모님이 좋으셨다며 알려주신 곳들은 우리 역시 좋았고, 우리가 다녀온 곳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때에도 장모님은 늘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집중하셨다. 기억에 남는다는 여행지 여러 곳이 우리와 겹쳤다. 여행에 있어서 만큼 장모님과 우리는 합이 잘 맞았다. 이탈리아에서의 54일간, 우리가 장모님을 모시고 다니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동료가 한 명 생기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걱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장모님은 몇 년 전 지인들과 한 달간 튀르키예에 다녀오신 적이 있었는데, 귀국하는 날 장모님을 보고 모두가 깜짝 놀랐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신 장모님의 모습은 난민과 다를 바 없었다. 까매진 얼굴에 볼살이 깊게 파이고 피부도 푸석푸석 윤기가 없었다. 고작 한 달 만에 얼굴이 저리 될 수도 있나. 얼마나 굶으셨으면 저런 행색이 되나.


   그러니까 유일한 걱정거리 하나는 장모님이 음식을 가리신다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식재료에 대한 두려움, 낯선 향에 대한 거부감, 이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굶고 말겠다는 각오, 배가 고프고 힘이 없을지언정, 볼살이 파이고 피부가 푸석해질지언정 내가 아는 익숙한 것만 먹겠다는 결의. 장모님이 튀르키예에서 한 달간 드신 거라곤 고작 빵과 샐러드뿐이었다.




   처음 몇 번은 깜빡 속았다. 속이 좋지 않다, 배가 부르다, 혹은 입맛이 없다, 라는 말을 하시며 정말 어딘가 불편하신 듯한 표정을 지으시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튀르키예에서 난민의 모습으로 돌아오셨던 게 떠올라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런 일이 몇 번 이어지고, 아침으로 사놓은 빵이 줄어 있고, 빈 쿠키 봉지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고, 젤라토 가게를 지날 때마다 발걸음이 느려지시는 모습을 보면서 장모님의 투정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장모님, 속이 좋지 않다 하지 않으셨나요, 입맛이 없다 하지 않으셨나요. 분명 아련하게 슬픈 표정까지 지으셨잖아요. 근데 쿠키라니요, 젤라토라니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식사는 멀리하고 달달한 군것질 거리만 찾으시는 장모님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조금씩 볼이 파이고, 낯빛이 어두워지고, 얼굴이 핼쑥해져 점점 튀르키예 난민의 모습으로 변해갈 것 같은 장모님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장모님, 이제 간식은 금지입니다. 젤라토도 이틀에 한 번으로 제한하겠습니다. “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에 놀라 말을 잇지 못하시던 장모님은 이전에 몇 번 통했던 무기인 처량하고 애처로운 표정을 얼굴에 장착하셨다. 저렇게나 쓸쓸한 표정이라니.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했다.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셔도 소용없습니다. 나라 잃은 표정을 지으셔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밥투정도 금지입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쇄기를 박았다.



   할 수 있는 음식은 뻔하다. 길쭉한 면, 짧은 면, 두꺼운 면, 톱니 모양의 면으로 모양을 매번 바꿔 보지만 어차피 모두 같은 파스타. 그날 선택한 면에 토마토소스, 봉골레 소스, 바질페스토 소스로 맛을 매번 바꿔 보지만 어차피 모두 같은 파스타. 마늘도 듬뿍 넣고, 새우도 아끼지 않고, 오늘은 특별히 버섯도 함께 볶아보고, 그럴듯해 보이라고 와인까지 한 잔 곁들이지만 그래봤자 어차피 파스타.



   너무 이탈리아 식단뿐인가 싶어 호박전도 부쳐 보고, 한국인은 아무래도 밥심이라며 아내가 직접 나서 리조토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다음날 저녁은 다시 또 만만한 파스타.


   매번 비슷한 음식이고 그마저 낯선 향과 익숙하지 않은 맛이었을 텐데 장모님은 차려드린 식사를 남기지 않고 늘 깨끗이 비우셨다. 밥투정 한번 없이.




   아침 산책을 하다 발견한 한인마트에 아내와 함께 들렀다. 한 봉지에 2유로 가까이 되는, 그래서 한국에서의 가격과 비교되어 비싸다 주저하던 짜파게티 세 봉지를 샀다. 그동안 부족한 실력으로 내놓은 식사를 투정 없이 드신 장모님을 위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장 봐온 것들을 풀고 바로 장모님을 찾았다. 손에 들린 짜파게티를 보시자마자 장모님의 표정이 한껏 밝아지셨다.

   “오늘은 아니고, 일요일요.”

   장모님은 마치 소풍날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일요일의 짜파게티를 손꼽아 기다리셨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여섯 봉지 살 걸 그랬나.

   “장모님, 일요일까지 밥투정 없이 계속 잘 드시면 짜파게티에 오이하고 달걀 프라이도 얹어 드릴게요.”




이번 매거진은 idle​​​​​​​ 님과 함께 꾸려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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