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거짓말
회사와의 계약이 만료됐다. 그 사이 대근이에게 사고가 났고, 아이는 빠르게 내 곁을 떠났으며 나는 서울 집을 떠나 부산에 임시로 자리를 잡았다.
하루 중 과반수의 시간을 가족과 붙어 있었다. 슬픈 티를 낼 수 없었다. 울지 않으려 버텼던 건 나를 위한 것이기도 대근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슬픈 나를 보며 속상해할 부모님의 마음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상처를 피하는 편이 아니라 마주하는 편이었기에, 대근이를 떠올리며 글을 쓰고 사진을 모아 올렸다. 모든 작업은 엄마 아빠가 출근 중으로 나 혼자 있을 때 이루어졌고 나는 있는 힘껏 울었다. 감정에 자극을 주는 그 어떤 것도 배제하고 대근이를 잃은 슬픔 자체에 집중해 현실을 받아들였다. 글을 쓰고 사진을 고르고 내 나름대로의 추모 기간을 거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다. 긴 시간 글을 쓰면서 깨달은 건 우리가 행복했다는 사실이었다. 사진 속 대근이는 행복해 보였고 나 또한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머리로만 그 사실을 이해한 게 아니라 가슴으로도 그 기억을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랬다고 생각했다. 나는 타고난 ‘회복 탄력성’이 좋다고 생각하며, 씩씩하게 잘 이겨냈으니 환생한 대근이를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간혹 친구들이 괜찮냐 물으면 괜찮다 답했고, 나는 정말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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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근이가 살아 있을 때 기계식 키보드를 샀었다. 휴대용 블루투스 키보드에는 세트로 구성된 커버가 있었는데, 그 커버의 바깥은 인조 가죽 내부는 스크래치를 방지하기 위한 벨벳 느낌의 천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그 커버는 평소엔 커버 역할에 충실했지만 필요할 땐 커버를 접어 거치대로 쓸 수 있었다.
기계식 키보드의 타건감이 좋아서 주로 거치 커버에 아이패드를 세우고 상 위에서 글을 썼다. 커버의 모서리는 대근이의 키와 딱 맞았는데, 대근이는 내가 글을 쓸 때마다 커버 모서리에 자기 턱을 비비며 냄새를 묻혔다. 나도 내가 쓰는 모든 것도 대근이의 소유물이나 다름없다는 일종의 도장.
한 번은 엄마의 경주 출장을 따라간 적이 있었다. 엄마가 미팅할 동안 나는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와 커버를 챙겨갔는데, 카페에서 커버를 꺼내 거치대로 뒤집는 순간 엄마가 말했다.
“아이고, 이거 다 대근이 털이가”
심장이 내려앉았다. 무슨 말인가 싶어 바깥쪽 커버를 바라보니 대근이 털이 가득했다. 중간부터 끝은 하얗고 시작은 검은 내 고양이의 털. 불시에 공격을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엄마의 앞을 벗어났다.
몇 주가 지난 지금, 나는 커버에 붙은 대근이 털을 한 가닥도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대근이가 아닌 흔적일 뿐인데, 온갖 의미를 부여하며 그대로 두고 있다. 대근이는 없지만 대근이가 찍어놓은 도장이 깊게 남은 탓일까. 괜찮다던 내 말이 거짓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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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근이를 잃은 건 내 사정일 뿐이었다. 여전히 서울의 일은 돌아가고 있었고, 내가 프리랜서로 돕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에도 한 아이돌이 컴백을 앞두고 있었다. 상실은 상실이고 미래는 미래였기에, 나는 일을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대신 나는 이제 서울에 집이 없었기 때문에 PD로 지옥 체험을 하는 조카의 집에서 며칠을 신세 질 예정이었다.
일할 때는 괜찮았다. 좋아하는 일이고 신인 아이돌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자극받곤 했으니까. 솔직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오히려 나는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집에 돌아온 뒤에 벌어졌다. 조카는 첫 촬영 준비로 거의 집에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있었다. 애석하게도 조카의 집은 내가 예전에 살던 집의 옆 동네였기에,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꾸만 대근이가 생각나긴 했다. 그러니 ‘혼자’는 더 감당할 수 없었다.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 작은 고양이의 발소리, 오롯이 나 혼자 있다는 실감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뭐라도 해 보려고 인스타그램을 보면 온통 고양이뿐이었다. 유튜브를 포함해 모든 알고리즘이 고양이를 가리켰다.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한 고양이를 보고 있다가 울음이 터졌다. 글을 쓰면서 모든 감정을 해소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슬픔이 눌려 있었던 건지 한순간에 그 모든 게 터져 나왔다. 울면서도 당황했다. 눈물을 그치지 못해서 당황했다. 그 순간 내가 있던 곳이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다.
한때 내가 작가의 꿈을 꾸고 올라온 희망의 도시, 지금도 그 꿈을 위해서라면 머물러야만 하는 도시. 하지만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낸 최악의 기억이 그 희망을 덮었다. 나는 그 도시에 서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아아,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가. 나는, 괜찮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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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 한때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모두 가족과 석이가 곁에 있기 때문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니, 나 자신이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대근이가 떠난 지 49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불교의 교리상 49일 째는 망자의 다음 생이 결정되는 날이기에, 그날 대근이를 보냈던 그 산에 다시 오름으로써 감정을 털어내고자 했던 거였다. 나는 기독교인이며 불교의 교리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게라도 대근이와 건강하게 이별할 수 있다면 나는 못 할 게 없었다.
49일째 되던 날. 이른 아침부터 엄마와 함께 산에 올랐지만, 대근이를 보낸 그 장소까지는 갈 수 없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주요 길목이 보수 공사 중이었다. 어떻게든 들어가 보려고 시도했으나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리 속상하지 않았다. 전날 비가 와 축축해진 흙을 밟으며 돌아내려 가는데, 문득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괜찮으니까, 청승 떨지 마. 안 와도 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뇌리를 스친 문장이었다. 괜찮아지고 싶은 내 무의식의 발현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게 대근이의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려가는 길, 엄마는 대근이를 부르라고 듣고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소리 내 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으로 “사랑한다” “고생했다” “곧 보자” “우리 대근이” “대근이”를 주문 외우듯 읊조렸을 뿐. 솔직히 말하자면 소리 내 대근이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긴 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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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근이가 없다는 사실은 받아들였다. 사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 어디에도 아이가 보이지 않으니까. 몸이 사라졌을 뿐 마음에 영원히 살아있다는 말도 위로가 되진 않는다. 아이가 없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슬픔은 해소되지 않았다. 누군가의 상실에도 그 주변의 삶은 돌아가기에, 슬픔의 감정은 결국 묻어둘 수밖에 없다.
감정을 묻어두되 그 방을 자물쇠로 잠갔다고 생각하지만, 물의 속성을 가진 슬픔에 자물쇠는 ‘괜찮다’는 착각으로 녹슬어 간다. 녹슨 자물쇠는 아주 작은 자극에도 긁히고 부서져 형태를 잃었다. 형태를 잃은 자물쇠는 감정을 위태롭게 만들었고, 결국 나는 컵에 고인 물이 넘쳐흐르듯 감정을 쏟아냈다. 감정을 쏟아내고 평정심을 찾으면 나는 다시 괜찮아졌다고 착각하며 새로운 자물쇠로 감정을 닫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감정을 닫은 것이 아니라, 닫았다고 착각 중이라는 걸. 감정을 쏟아냈다고 착각하지만 말 그대로 쏟아냈을 뿐, 잔여 감정은 그대로라는 걸. 나는 그 모든 걸 무시하고 자물쇠가 또다시 풀리지 않게 몇 번이나 확인하지만, 앞으로 또다시 자물쇠는 순식간에 녹이 슬고 부서지게 될 거다. 그 모든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무표정으로 감정을 닫고 쏟아내고 다시 잠글 수 있겠지.
빈자리는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도 그 자리의 온기는 마음에 남는다. 온기를 채우던 주인공이 사라졌기에, 두 번 다시 그 온기는 같은 방식으로 내게 다가올 수 없다. 나는 믿을 뿐이다. 대근이의 영혼이 어떤 모습으로든 내게 다시 돌아올 거라고. 대근이가 이전의 생을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기억하면 된다. 그래, 난 대근이를 알아볼 수 있을 거다. 내가 가두어둔 슬픔은 곧 대근이를 향한 사랑을 의미하기에 나는 앞으로 그 슬픔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생각이다.
행복했던 기억은 이별의 고통과 비례하고 이별의 고통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우리는 행복했기에 이 고통스러운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우리가 행복했기에 그 고통 너머 다시 만날 순간을 기대할 수 있다.
우리의 만남이 운명이었듯 우리의 이별도 운명이었다.
네가 없어도, 나는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