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일상의 시작 - 종이책을 기대하며

every moment of life

by 흐를일별진



몇 년 전부터 나는, 내가 느꼈던 일상의 의미를 짧은 글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에세이 작성 계획을 세웠다.


처음엔 쓰려고 하는 글의 소재가 ‘일상’이다 보니 작업이 쉬울 거라 판단했다. 나는 늘 생각에 잠겨 있었고, 일상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24시간 이어지는 거니까 힘들 게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도 깨달음을 얻었다)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 막히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도 확신했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나는 시작과 동시에 높은 벽에 부딪혔다. 아무리 소재가 많다고 해도 정리가 안 되니 쓸모가 없었다. 생각은 깔끔했으나 글로 옮기니 어딘가 이상해졌다. 누구나 읽기 쉽게, 담백하게 쓰고 싶은데 자꾸만 기름이 꼈다. 요리로 생각하면 키친타월로 기름기를 빼버리면 된다지만, 글에 스며든 기름기는 좀처럼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글에 담긴 허세를 빼지 못했다. 있어 보이는 척했고 많이 아는 척했다. 지나친 미사여구가 문장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몇 번을 써도 매번 같은 문제에 부딪혔다. 나 자신이 변하지 않고선 도저히 글 속에 스며든 안 좋은 습관을 뺄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한동안 글쓰기를 중단하고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것을 보고 찾아 읽기 시작했다. 주로 일상을 담백하게 담아낸 글과 만화, 웹툰이었다.


타인의 작품은 나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그들의 생각을 보고 읽다 보니, 조금씩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깨달음이 나의 깨달음이 되고, 타인의 일상이 나의 일상을 제대로 마주하게 했다. 더 나아가 나를 반성하는 계기도 됐다. 그들의 작품을 통해 내 글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거다. 물론 가끔은 질투가 나기도 했다. 왜 나는 저들처럼 할 수 없었던 걸까 속상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질투는 '나도 잘하고 싶다'는 꿈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자신에게 솔직해 질 수 있었다. 나의 부족한 면, 바보 같은 면, 감정의 불완전함, 미완성의 나를 글 속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게 됐다. 신기하게도 내가 변하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이전보다 글 쓰는 일이 수월하게 느껴졌다. 생각했던 게 그대로 글 속에 담기기 시작했으니까. 글에 씌워져 있던 그럴듯한 가면을 벗기고 나 자신의 '있어 보이는 척'을 빼니, 그제야 글의 기름기가 사라졌다.



이 긍정적인 변화를 시작으로, 나는 타인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지속적으로 끌고 나갈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글쓰기에 새로운 과정을 추가했다. 가볍게 1차로 작성한 글을 몇 번씩 소리 내 읽어보는 것. 라디오 사연을 읽어주는 DJ가 된 것처럼, 천천히 글을 낭독하며 객관적으로 들어보는 것. (물론 글에 어울리는 음악 선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실제로 그 과정은 내가 타인의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느끼게 했다. 내 글을 객관화시키니까 고칠 점이 또 한 번 보이는 거다. (다행히 장점도 보이고) 사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는데, 나는 그 연속된 퇴고의 순간이 즐겁게만 느껴졌다.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드디어 내가 일상의 의미를 알릴 준비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도, 매번 마주하는 일상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 행복함을 느끼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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