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여자답다는 것

every moment of life

by 흐를일별진



한때의 나는, 연애 실패의 원인이 여자답지 않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창 그 고민을 할 무렵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여자라면 연약한 척도 좀 하고, 할 줄 아는 것도 못 하는 척하고, 못 이기는 척 남자에게 도움을 구해야지. 너무 혼자 잘 사는 것도 매력 없다.”는 거였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연애의 진리인양 착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착각 한다 해도, 나는 결국 그들의 말처럼 될 수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여자>는 너무나도 수동적이었으니까.


반면 나는 지나치게 독립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 상대가 소중하게 느껴질수록 오히려 그에게 의지하지 못했다.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함께 있을 때는 두 사람이, 그저 행복했으면 했다. 무엇보다 그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그에게 맡기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가끔 혼자가 쓸쓸해질 때면, 지난날 들었던 말을 곱씹곤 했다. 정말 그렇게 해야만 연애라는 걸 할 수 있는 건가. 나는 여자다운 구석이 하나도 없는 건가. 그래서 한 번은 애써 연약한 척도 해 보고 남자에게 의지해 보려는 노력도 했다. 그런데 그 노력 자체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하더라. 도대체 왜 내가 가진 걸 없는 척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남자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왜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 예쁘게 포장해 봤자, 어차피 그 포장지는 뜯으면 그만인데. 나는 결국 얼마 못가 <여자다워지는 것>에 대한 시도를 포기하고 말았다. 솔직히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자답다는 프레임을 잊고, 지극히 나답게, 사람답게 살고 있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을 찾아가면서 말이다. 솔직히 아직도 나는, 어떤 게 여자다운 건지 모르겠다. 요즘은 특히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보니까 오히려 더 헷갈리곤 한다. 그러니 가볍게 1차원적으로 생각한다면, 어차피 나는 생물학적인 여자니까 내가 하는 행동은 모두 여자답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씩씩하고 굳센 내가 좋았다.



회사 정수기 생수통이 비어 있는 걸 보면, 누군가를 부를 시간에 직접 갈아 놓는 것이 편하고, 힘쓰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즐거워했다. 외형적인 것을 가꿀 시간에 책이나 영화를 하나 더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제법 긴 시간 동안 나를 파악하는 일에 공을 들였다. (물론 아직까지도 완벽히 끝내지 못했기에, 그저 나날이 바뀌는 나에게 적응 중이다)


집에서 제일 아끼는 것은 온갖 도구들이 들어 있는 공구함이고, 남들이 가구 판매장에 예쁜 가구를 보러 갈 때 나는 신나서 전동 드라이버를 집어왔다. 심지어 홈쇼핑에서 구성 좋은 공구 세트가 나오면 홀린 듯이 휴대전화를 집어 들기도 했다. 늘 번호를 누르기 직전에 진정을 하게 되지만.


혼자 뚝딱뚝딱 캣타워를 조립하고 커다란 블라인드를 단시간에 설치하고, 어지간한 수리는 모두 혼자 도맡아 한다. 솔직히 나는 이런 모든 일을 혼자 해내는 나 자신이 너무 만족스럽다. 가족과 떨어져 문제없이 지내고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 지금의 감정적 평온이 그저 행복하게만 느껴진다.



그런 의미로, 나는 어떠한 프레임 속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지금처럼 <나다운> 모습으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애써 나를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비치는 모습으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연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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