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진아, 먹고 싶은 거 없나.”
“찌개 끓여도, 나는 김치찌개 하나면 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다.
그래서 매번 포항 본가에 가면, 매일같이 찌개를 끓여달라며 엄마를 졸랐다. 한 번은 찌개 끓이는 엄마를 가만히 지켜본 적이 있었다. 뭔가 특별한 조리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의 조리법은 지극히 평범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조리법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만큼 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내 인생 최고의 김치찌개를 뽑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엄마가 해 준 찌개를 뽑을 거다.
짭조름한 국물에 군침이 도는 김치. 푹 끓여 깊은 맛이 일품인 엄마의 찌개와 새하얀 쌀밥. 그 두 가지만 있으면 한 끼 식사는 진수성찬이 됐다. 엄마의 찌개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그래서 아빠도 나도 동생도, 우리 가족은 모두 엄마표 찌개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김치찌개는 우리 가족의 많은 순간을 <소울푸드>로 함께해 왔다.
올해 초부터 엄마 아빠가 일 때문에 포항과 부산을 오가는 주말 부부가 됐는데, 그때도 두 사람을 위로한 건 찌개였다.
엄마 아빠는 평생을 붙어살았다. 그러다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둘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엄마는 혼자 있을 아빠가 걱정되고 안타까웠던 거 같다. 특히 아빠의 식사가 제일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늘 입이 떡 벌어지는 큰 냄비에, 일주일 치의 찌개를 끓여놓고 부산으로 돌아갔다. 아빠가 일주일 내내 찌개 걱정은 안 하게끔 말이다. 엄마가 없는 일주일, 아빠는 찌개를 먹으면서 아내를 생각했을 것이고 엄마는 찌개가 있으니, 남편 걱정을 조금은 덜었을 거다.
그리고 서울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홀로 떨어져 살던 첫 딸에게는, 종종 엄마의 마음이 듬뿍 담긴 얼린 김치찌개가 배달됐다. 한 끼 먹기에 적당한 양으로 나눠진 찌개를 보면서, 나는 엄마가 어떤 모습으로 음식을 만들었을지 상상하곤 했다. 그렇게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찌개를 꺼내 데워 먹었는데, 가끔은 냉동 찌개가 서러워서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그냥 집에 가서 엄마가 따뜻하게 해 주는 거 먹으면 되는데.'
엄마가 해준 찌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나, 음식의 온도가 나를 서글프게 했다. 그래서 사실은 서울 생활이 힘들어질 때마다 더 찌개에 집착했다. 완벽하게 똑같은 맛은 아니어도, 먹을 때마다 위로받는 기분을 느끼곤 했으니까.
한때는 엄마의 맛을 똑같이 요리해 보려고도 했었다. 단순한 조리법을 그대로 살려, 내가 제2의 김치찌개 장인이 되겠다 마음먹기도 했었다. 그러나 매번 실패했다. 어떻게 끓여도 그 맛이 나지 않았다. 김치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어서, 엄마와 같은 김치를 써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맛이 안 났다. 나는 결국 <엄마의 손맛>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내 요리 실력은 엄마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그런데 얼마 전,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내가 엄마의 찌개를 흉내 내지 못한 건, 두려움이 앞서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것. 내 마음속 가장 완벽한 음식은 엄마의 찌개인데, 누군가가 그 찌개와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맛은 오로지 엄마만이 낼 수 있는데, 거기에 다른 누군가가 겹쳐지는 걸 원하지 않았던 거다.
나의 <소울푸드>인 찌개는 <엄마의 김치찌개> 단 하나면 됐다. 그 맛이 그리워 엄마를 찾아가고, 찌개 끓이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함께 있음을 실감하고, 완성된 찌개를 엄마와 함께 나눠 먹고 싶었다. 김치찌개에 관련된 모든 추억은 엄마로 시작하고, 엄마로 끝이 나야만 했다. 우리 엄마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이고, 엄마가 해주는 찌개도 단 하나면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