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너는 왜 힘들다는 말을 안 해

every moment of life

by 흐를일별진



사람들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금기어가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사람들은 곧 죽어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과 절대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는데 아주 긴 시간 그 때문에 고민에 빠졌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힘들다.”는 말은 나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힘든 것을 티 내지 않고 있으면 어떻게든 지나가기 마련인데,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순간 마음에 돌덩이가 매달렸다. 내 상황을 알게 된 많은 사람이 나를 걱정하고 “괜찮냐?” 물어보는 호의가 반갑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나를 위하는 소중한 마음인 건 알지만, 그 마음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 아주 작은 위로가 됐을 뿐, 서글프게도 순간의 위로는 바람처럼 나를 스쳤다. 결국, 걱정해주는 사람도 그 마음을 받는 당사자도, 문제의 해결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허공만 맴돌았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다 지나가겠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괜찮은 척 애써 자위해가며 버티던 날들이 끝나면, 또 다른 부담이 나를 찾아왔다. 내 상황을 아는 이들에게 문제의 종결을 설명해야 하는 부담감. "덕분에 잘 해결됐어. 이제 나 괜찮아. 정말 고맙다." 소중한 마음을 향한 당연한 보답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그 순간을 망설였다.


분명 괜찮아졌다고 생각해서 종결을 알렸는데 "고마워" 말하는 순간 감정이 요동쳤다. 내가 판단한 종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고, 얼마나 많이 고민했었는지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기억이 나는 거다. 봉인이 해제되듯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까지 되살아났다. 결국, 나는 다시 힘들어졌다. 그리고 두 번 다시 힘들다는 말을 꺼내지 않겠다며 다짐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매번 같은 패턴이었다. 말하고, 후회하고.



내 나이를 서른셋이라 말하는 지금, 나는 아직도 그 금기어를 깨지 못했다. 다만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는 중이다. 찰리 채플린의 말에 의하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다. 깨달은 게 있다면 세상엔 의외로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과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 힘들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조차,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 때는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


결국, 자신만의 금기어를 가진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게 아닐까 싶다. 묻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고, 잘 이겨내기를 바라며 <서운함 없이> 기다려 주는 일. 힘들어하고 있을 소중한 이들의 비극이 끝나길 바라며 기도하는 일. 아마도 그 진심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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