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할아버지의 입원을 위해 병원을 찾은 어느 날.
평소 할아버지는 폐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입원 전 안정을 위해 필히 응급실에 들러야 했다. 그날은 평일이었고, 이른 아침의 응급실은 한산했다. 심지어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와 나른한 분위기까지 자아냈다. 그리고 휴게실에서 잠을 청한 것 같은 의사는, 뒷머리가 들뜬 채로 우리를 맞았다. 잠이 덜 깬 눈에 멍한 표정으로.
그러나 얼마 후 조용한 응급실 분위기는 한 할아버지의 등장으로 급변했다.
“씨-발! 여기는 뭐 이따우고!”
쩌렁쩌렁 울리는 분노의 목소리에 모두가 달라붙어 할아버지를 달래기 시작했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대충 파악해 보자면 진상은 이러했다. 할아버지는 어딘가 아팠고, 응급실에서 <급히, 접수 없이> 치료를 받으려 했으나 의사가 보기에는 상태가 심각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접수가 필요한> 외래 진료를 추천한 상황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관계자들이 한마디를 하면 할아버지는 열 마디의 욕으로 답했다. 그것도 참신하게! 그 상황은 30분이 넘게 계속됐고, 나도 결국에는 짜증이 폭발했다.
그때 침대에 누워있던 할아버지가 피식하고 웃었다.
“할아버지는 저렇게 소리 지르면 안 된다. 알았제? 저 사람들이 뭔 죄고. 근데 왜 웃는데요?”
“웃음이 나네. 원래 나이 많은 사람이 다 그렇다. 아프면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일단 아프면 화부터 나거든. 니야 안 아프지만 저 할배는 아픈 거다. 무서워서 저란다.”
다행히 얼마 뒤 상황은 진정됐고, 금세 기분이 풀린 것 같은 역정 할아버지는 편안한 표정으로 응급실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문득 죄책감이 들었다. 타인의 입장에서는 그저 응급실의 난동이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 난동은 “너무 아프다. 그러니까 빨리 나를 돌봐 달라. 무섭다.” 말하는 한 노인의 간절한 호소였던 거다. 죽음이라는 삶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한 노인의 압박감을 우리는 감히 예상할 수조차 없다. 할아버지는 불안했을 거고 마음과 달리 뾰족한 말이 먼저 튀어나온 거겠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다면, 아예 이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만약 내게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어떨까?
세상 고상한 표정으로 “제가 몸이 너무 많이 아프네요. 진료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죠? 조금 무섭긴 한데, 절차라는 게 있으니 천천히 하세요. 급한 사람 오면 그 분 먼저 봐 주시고요.”라고 말하며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당장 내가 너무나도 불안한데.
역시 우리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절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의미로 내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아마 [삼십 대 여성, 응급실에서 난동 부려]로 뉴스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뭐, 그 할아버지는 양반이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