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2005년 6월, 막 여름이 시작되던 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푹 빠져있었다. 매일 같이 드라마를 이야기했고 많은 친구가 <현빈>이라는 열병을 앓았다.
우리는 단 한 번의 본 방송도 놓칠 수 없을 만큼 드라마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고3에게만 해당하는) 평소보다 긴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우리의 즐거움에 제동을 걸었다.
드라마는 10시에 방영됐고 우리의 야자는 11시가 넘어야 끝났다. 결국, 온갖 핑계를 들어 조퇴하지 않고서는 본방송을 볼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묘책을 생각해냈다. 텔레비전으로 볼 수 없다면 라디오로 듣자. 지금도 그런 채널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생중계해 주던 FM 라디오 채널이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김삼순>의 본방송을 라디오로 들었다.
단 공식적으로 우리는 공부 중이었다. 그래서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해, 각자의 방법으로 이어폰을 숨겨 들었다. 나의 경우는 MP3 라디오 본체를 치마 배 부분에 끼우고, 교복 상의 속으로 이어폰을 올려, 목 카라로 빼는 방식을 애용했다. 귀에 튀어나와 보이는 이어폰은 머리카락으로 가리거나, 턱을 괴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숨겼다. 몰래 듣는 <김삼순>은 긴장감이 넘쳤다. 아마 하루를 통틀어 최고의 집중력을 요하는 순간이었을 거다.
그러나 우리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바로 다니엘 헤니의 영어 대사였다. 고3이긴 하지만 우리는 회화에 취약했고, 그의 대사는 너무 길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우리는 때마다 헤니 통역사를 만들었다. 먼저 조퇴할 친구가 정해지면 그 친구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대사를 번역, 실시간으로 문자 공유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 방법은 의외로 효과적이어서, 듣는 <김삼순>을 더 완벽하게 했다.
다만 이 완벽한 비밀의 순간을 깬 건, 우리의 웃음이었다. 대체로 야자 시간은 정말 조용한 편이었다. 진짜 공부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김삼순>에는 코믹 포인트가 아주 많았고, 우리는 웃음이 많은 열아홉이었다. 결국, 조용한 와중에 동시다발적으로 모두의 웃음이 터지는 순간이 잦았다. 뜬금없이 <김삼순>의 웃음 폭탄이 학교에 떨어진 거다. 그럼 우리는 선생님의 눈치를 보면서 한참을 더 깔깔거리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고3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몇 달 남지 않은 수능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아무것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했다. 그저 <김삼순>이 재밌었고, 그걸 몰래 듣고 있는 우리가 웃겼으니까. 열아홉의 우리는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던 소녀였다.
교실 안팎으로 모든 창문을 열어놓고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가며, 함께 같은 드라마를 보고 웃던 그때. 사는 걱정 없이, 관계에 대한 불신 없이, 그저 친구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순수'하게 즐겼던 그때.
나는 늘 여름이 되면 그날이 떠올랐다. 아직도 회자되는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서 늘 그 시절을 생각했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의 나는 드라마 속의 김삼순보다 더 많은 나이를 먹었다. 그 무렵 꿈꿨던 화려한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당시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게 행복할 따름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추억들은 모두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그런 의미로, 매일매일의 추억이 쌓여 인생의 드라마가 완성된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이 순간 ‘미래의 나를 위한’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희로애락을 마음껏 즐겨야 할 것 같다. 미래의 내가 오늘의 이 순간을 떠올리며 실컷 웃어줬으면 좋겠으니까. 그리고 '나는 추억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며 행복해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