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인지 능력이란
사람의 인지 능력이란 건 참 우습다. 평소엔 신경쓰이지 않던 것들도 어느 순간 ‘눈치’를 채면 존재감이 어찌나 커지는지.
늦은 밤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서 콘텐츠 소스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생각이 떠오르면 영화 재생을 멈추고 내용을 작성했다. 그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집중이 깨졌다. 한 순간이었다. 벽 너머로 드르렁 드르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은 건가 집중해서 들어보니 코골이가 맞았다. 규칙적인 소리였다. 한번 들리기 시작하자 온 신경이 거기에 집중됐다. 영화를 다시 재생해도 내 귀는 코골이 소리를 찾고 있었다. 아니 소리가 날 찾아온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 하다. 신경쓰지 않았을 땐 들리지 않던 게 인식하고 나니 엄청난 소음처럼 들렸다.
모든 건 인지의 영역이었다. 아무렇지 않던 감정이 어느 순간 커져버리고 마냥 커질 것 같던 감정도 어느 순간 멈춰버린다. 신경을 쓰는 만큼 존재감이 커진다. 다시 앞선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한 번 들린 소리를 없애는 방법은 다른 소리 즉 음악으로 집중했다 돌아가는 거였다. 인지의 대상을 바꿔버리는 것. 시선을 돌리는 것. 내가 나를 속여야 했다.
물론 외부적 요인인 소리나 시선과 마음은 다르다. 그래도 인지 영역에서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건 똑같다. 다만 불가능한 건 외부적 요인과 달리 마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열과 성을 다해 다른 것에 집중해도 그 크기만큼은 그대로 남는다. 상처받지 않을 만큼 형태가 바뀌고 속도가 느려질 뿐 없던 일이 되진 않는 거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그를 좋아하고 있다. 좋아할 이유보다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더 많은 사람이었지만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줄 알았는데 인지와 관계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대신 달라진 게 있다면 밖으로 향하던 감정이 지금은 온전히 나를 향해 있다는 거다. 좋아하는 마음과 별개로 내가 더 중요해졌다.
사람이 만나게 된 데엔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인지하지 못하던 걸 인지하게 된 데에도 이유가 있을 거다. 코골이를 인지하게 되면서 음악을 들었고 음악을 들으면서 글이 쓰고 싶어진 상황도 그러하다. 같은 맥락으로 그를 만난 이유가 있었을 거고 그 이유 끝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