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한 남자와 두 번째 이혼을 말했다

by IlOB

'너한테 염치가 없어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전화기 속 익숙한 서두에 나는 염치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대충 '응'이라고 대꾸한 것 같다. 대규모 통신장애가 터져 이 순간을 회피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추임새였으나 김여사가 어떤 사람인가, 염치가 없다는 그녀는 속사포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풀어냈다. 아마 이 순간 세상의 모든 딸들은 한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감정쓰레기통'. 나오는 한숨 대신 익숙하게 TV 리모컨을 들어 재빨리 소리 볼륨을 줄이고, 보고 있던 드라마의 자막을 켰다. 이것으로 앞으로 한 시간은 족히 이어질 김여사의 염치없는 어떤 말에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감정쓰레기통도 눈이 있으니 비록 귀는 그녀가 전세를 놓을지라도, 내 뇌는 시각적 쾌락으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참의 신세 한탄과 망설임 끝에 김여사가 본론을 꺼냈다.


'네 아빠와 이혼하려고. 이번에는 확실하게.'


내 무언의 대꾸를 의식한 듯이 덧붙이는 뒷말이 가소로웠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꽤나 불분명한 서술어였다. '하려고'라고 미래지향적인 말은 주어 자체가 없었고 쉽게 내뱉는 '네 아빠'라는 단어가 주는 무책임을 이미 경험해 봤기에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혼은 '가을이면 전어가 제철이다'라고 외치는 전형적인 제철팔이 장사치의 프레이즈이고, 그냥 김여사에게 그렇게 남 탓을 해야 하는 시기가 돌아온 것이다.

감정쓰레기통의 대답은 필요치 않을 테니 나는 이어지는 그녀의 그럴 수밖에 없는 다양한 사유들 사이에 빈 공간에 '응'이라는 무의식에 가까운 한숨 같은 것을 날렸고 계속 TV 속 드라마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에게 김여사가 말하는 이혼은 북한이 날리는 로켓포 같다. 어딘가엔 떨어지겠지, 또 뭔가 요구하는 게 있나 보다, 상관없다. 그저 내가 보지 않는 8시 뉴스의 첫 꼭지로 소화될 뿐이다. 물론 처음부터 나도 이랬던 것은 아니다. 앞으로 왜 나는 이렇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어머니에 대해, 그 아픔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변명을 적어 내려갈 예정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절대적으로 소설이기를 바라는 어느 딸이 가족과 인연을 끊게 완벽히 혼자 살게 된 변명이자 고백이다.


1.


10여 년 전의 어느 날, 다니던 회사에 연차를 내고 본가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갔다. 연차 사유를 적어내라는 회사의 요구에 '부모님 병환'이라고 거짓으로 적었다. 하지만 내가 간 곳은 지방 가정 법원이었다. 계절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메마른 낙엽들이 을씨년스러웠고 법원 특유의 메마른 길고 가라앉은 복도의 벽과 돈 좀 들인 두꺼운 목재문, 금속의 손잡이를 쥐고 법정을 들어서던 순간의 감각만 기억난다. 수 없이 봤던 드라마와 다른 모양의 법원에 압도되었는지 더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위치라던가, 층수라던가, 복도의 색, 혹은 그 냄새라던가. 법정 안까지 들어가기 전의 기억은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오직 남아 있는 기억은 법정 안, 내가 증인석에 섰다는 그 사실뿐이다.


'증인석'이라는 말이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의자가 없었다. 그때부터 내 두 다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상상 속에서 보던 법정과 너무나 달랐다. 당연했다. 내가 보는 드라마와 달리 여긴 지방가정법원이었으니까. 내 허리춤보다 높은 단상 위 마이크 한 대. 그리고 1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내 늙은 아버지와 더 늙어 보이는 아버지의 변호사, 김여사와 그녀의 늙은 변호사가 자리했고, 순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었다. '증인'이란 대명사로 내 이름과 나이를 밝혔고 내가 그들의 '딸'이라 소개하면서 처음 본 판사들 앞에 내 존재의 증명을 하고, 이어서 이 자리에 하게 된 이유를 낱낱이 말했다.


사시나무 떨 듯 떨리는 오금만큼 목소리도 염소 울음소리 떨려 마이크를 타고 그 목소리가 좁은 장내에 퍼지자 아버지 쪽 변호사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귓속말을 했고 비릿한 웃음은 아버지에게도 전파되며 증언하는 내내 그는 시시덕거리던 피식거리며 내용을 비웃고 단어마다 모두 사실을 부정했다. 부정당해도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어느샌가 소리 없이 흐르기 시작한 눈물을 들이키며 준비해 간 증언의 낭독을 마쳐야 했고,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적게 훌쩍거리는 것과 재판장님께 어머니가 왜 이혼을 신청할 수밖에 없는지 그 사정을 최대한 처연하게 나열하며 사정하는 것뿐이었다.


증언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고 30분도 걸리지 않고 재판이 끝났다. 어머니는 지방으로 와준 것에 감사하며 얼마의 돈을 건넸다. 그게 증인공탁금이라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 흰 봉투에 든 돈은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알감자와 커피 한 잔, 자취방의 밀린 공과금으로 동전 한 닢까지 순식간에 자본주의 시장으로 흡수되었다.


텅 빈 봉투와 남은 것은 부모님의 이혼 법정에 증인으로 서서 한쪽 편을 들어 부모의 이혼을 독려한 나, 네 명의 자식들 중 유일하게 가정의 결속이 아니라 파괴를 바라는 나뿐이었다.


부모의 법정에 서 '두 분은 그만 헤어지는 것이 좋겠어요'라는 증언을 한 유일한 자신인 나는 형제들 사이에 새로운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가족의 파탄자'. 각오는 했으나 새로운 정체성을 느끼며 서울로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오롯이 혼자인 기분을 느꼈다. 가정법이 왜 어려운지 아는가? 혈연 사이에서는 정의가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가정의 '정', 그 '정'의 논리가 유구하게 흘러온 것이 가정법이다. 가족들 조차 부모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 어렵기에 가정법이 있고, 판사가 개입을 하게 된 것인데 유일하게 그 '정'을 저버리고 한쪽의 편을 들어 자식인 내가 증언대에 오르기로 결정한 순간, 나는 배신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서울로 오는 버스에서야 나는 5시간을 걸려 차를 타고 증언을 하러 내려갔으나 밥 한 끼 먹었냐는 질문을 듣지 못했고, 부모 중 누구와도 한 끼도 하지 않고 돌아오고 있단 사실을 알아차렸고, 휴게소에서 산 알감자를 입에 넣고 씹다가 깨달은 사실에 느닷없이 울음이 터졌다. 결국 붕괴된 것이다. 법정에서 흘리던 눈물과는 다른 그 어떤 것이 가슴에서 뜨겁게 터졌다.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증인석에서 본 아버지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가정의 붕괴의 탓을 나에게 떠넘기던 그 눈빛. 법정 한편에서 흐느끼며 내 증언에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눈빛도. 이 가정의 붕괴가 나의 증언에 달려 있다는 애절한 눈빛. 그러나 지금 흐르는 내 눈물의 의미는 하나뿐이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겐 부모가 없구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며 스스로 동정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제정신을 차린 것은 내 자취방 싸구려 스프링 침대 위였다. 긴 이동 시간에 지친 몸을 뉘일 때까지 흐르던 눈물을 찍어내며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내 눈물은 닦았다. 늘 그랬듯, 내 눈물을 닦아주는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눈물을 나만이 닦을 수 있다. 부모가 없어진 게 아니다. 원래 나는 부모가 없었다.


그제야 눈물이 멈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