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식에게 항상 부모의 사랑은 빈곤하다. 첫째는 첫아들이라서, 둘째는 첫 딸이라서, 막내는 막내아들이라서 더 주는 사랑이 존재하는 사이의 셋째로 태어난 나에게, 그것도 셋째 딸에게 부모는 어땠을까. 그것은 지독하게 외롭고 빈곤하다. 마치 마실 수록 더 갈증이 솟구치는 소금물 같은 바닷물이다. 마시면 내가 말라죽을 것이 분명히 알고 있지만, 부모라는 바다에 갇힌 나에게는 마실 것이 채 그것밖에 없었다.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네 남매다. 누군가 형제관계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오빠와 언니, 그리고 남동생. 그리고 나'라고 하거나 '남자 둘, 여자 둘의 사 남매, 그중에 셋째가 저'라고 말한다. 나는 한 번도 첫 번째로 언급하지 않는다. 마치 그게 무한하고 절대적인 무언가처럼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학습되어 살았다. 셋째, 그것도 딸이란 그런 존재다. 누군가 올림픽 경기의 순위처럼 금, 은, 동메달까지 세상이 알아주니 너는 그래도 '동메달' 인생으로 태어나 좋겠다고 말한 적 있지만, 그렇게 말한 사람은 외동이었다. 독자로 태어나 받은 사랑을 껴안고 빈곤한 나의 부모를 칭찬하는 것이 나는 가소로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내가 세 번째이니 적어도 나는 세 번째의 사랑은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어릴 때 나는 일찍 말을 뗀 아이였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이미 한글을 쓰고 읽을 수 있었는데 그 원동력은 당연히 부모에게 칭찬을 받고 싶다는 뚜렷한 욕망이었다. 사랑받고 싶다는 그 순수한 열망을 부모는 순진하게도 똑똑한 아이라며 나중에 큰 인물이 되겠다고 기뻐하기만 했다. 부모의 기쁨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다섯 살의 나는 더욱더 조잘거렸다. 궁금하지 않은 어떤 것도 알고 있는 모든 것도, 모른 척, 궁금한 척 물어보며 부모를 피곤하게 하고 그들의 잘난 콧대를 세웠다. 끊임없는 질문에 답을 하며 놀아주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했으니까. 그날도 늘 바쁜 엄마를 붙잡고 오래된 앨범을 꺼내서 사진을 보며 이건 뭐야, 이건 뭐야 하고 질문하고 있던 날이었다. 아마 비가 왔을 것이다. 엄마는 비가 와야 집에 계셨고 눅눅한 비냄새 속에 엄마의 살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옆구리에 달라붙어 엎드려 앨범을 넘겨 봤다. 막내 동생이 태어나 품으로 더는 나를 안아줄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다른 여섯 살도 이렇게 일찍 엄마 품을 내어줬을까.
'네 원래 이름은 '사남'(*지금의 남동생 이름)이었어. 난 네가 내 뱃속에서 노는 걸 느낄 때마다 한 번도 남자애가 아닐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거든. 하지만 태어나보니 계집애였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세녀(**지금의 내 이름)'가 되고 지금 네 동생 '사남'이가 태어난 거야.'
몰랐다. 열 달 만에 태어난 내가 처음 그녀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줬는지. 엄마도 그 모습을 상상하며 다섯 살 내 심장이 얼마나 잘게 부서졌는지 모르겠지. 엄마와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서로를 상처 입혔다. 그때부터 나는 '사남'이가 원래 내 이름이 아니라, 그저 아들을 위한 프리퀄이었다는 확신 없는 삶이 시작됐다.
사 남매 중에 유일하게 나는 백일 사진도, 돌 사진도 없다. 찍을 수 있는 정 조차 없었을까 나는 매일 괴로웠다. 오빠와 언니의 사진이 대부분인 사진 앨범 한 장, 한 귀퉁이에 태어난 지 몇 년 후에야 겨우 찍은 한 장의 사진이 꽂혀 있는 나의 세 살. 얼굴조차 다 보이지 않는 그 낡은 사진에 나는 몇 년을 발목 잡혀 있었다가 겨우 일말의 기대를 품고 '왜 나는 돌 사진이 없냐'라고 엄마에게 물었을 때, 당신은 '네 아빠' 탓을 했다.
'네 아빠 때문이야. 또 낳았더니 딸이라고. 네 뱃속에는 계집 씨 밖에 없다고 아들 못 낳는다고 나를 얼마나 구박하던지. 그래서 사진이 다 뭐야, 백일도 안 된 너를 데리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끌고 내려갔잖아.'
'집에 불이 나서 다 타고 겨우 살림살이 조금이랑 너를 데리고 내려간 거야. 앨범 같은 걸 챙길 시간이 어디있 니. 네 아빠 발령에 겨우 몸만 갖고 간 거지.'
물어볼 때마다 답이 바뀌었지만 '엄마 왜 나는 아기 때 사진이 없어?'라는 질문에 엄마가 어린 나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여섯 살의 나에게는 그렇게 대충의 애정이 주어졌다. 그때마다 옆에 꽂힌 엄마가 그토록 원했던 막내 '아들'의 백일 사진을 부러움과 시샘으로 봤다. 그럴 수밖에. 형형색색의 아이의 키보다 높게 쌓인 화려한 돌 상 앞에, 파란색 남아용 한복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입은 '사남'이의 사진이, 피곤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노려보는 그 사진이, 입가에 흘린 침까지도 부러웠다. 꺼내 보는 것 만으로 엄마에게 '얼마나 이쁘니'라고 행복하게 웃게 만드는 그 사진이 부러워 죽을 것 같았다.
엄마는 지금도 오래된 그 사진을 종종 꺼내본다. 앨범이 아니라 이젠 휴대폰 앨범에 담아 꺼내 보고 나에게도 보내주면서 자신의 모든 행복이 존재한 사람처럼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 난 것 같은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을 잊지 않는다. 만약 그 사진 속 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자애로운 미소가, 내 사진을 들여다볼 때는 찾아볼 수 없다. 가장 큰 성공은 가장 큰 절망을 넘어서고 온다고 누가 말했던가. 나를 낳고 5년 만에 태어난 아들은 10년 넘게 기다린 이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절망이 되었고 나의 유일한 아기 사진조차 당신에겐 꺼낼수록 나는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와의 다툼의 상처만 되새기는 트리거였다.
그래서 엄마를 원망하냐고? 아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사랑했다. 매일 밤 엄마에게 버림받고, 쫓아가도 쫓아가도 언니만 안고 도망가는 엄마 꿈을 꾸면서 깨어난 나를 안아주는 엄마의 살냄새에, 밥 먹으라고 불러주는 내 이름 한 마디를 더 듣고 싶어 항상 방에서 뭉그적거릴 정도로 사랑했다. 질리도록 '엄마 나는 왜 돌 사진이 없어?'라는 질문에 결국 귀찮다며 왜 매번 같은 질문을 하냐고 성을 내는 엄마도, 매번 달라지는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순간도 곁에서 엄마를 느낄 수 있기에. 그 빈곤한 사랑도 사랑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나는 그럼 누가 출생 신고 해줬어?'
'네 아빠가 했지'
엄마의 그 말에 나는 그나마 한 줌의 애정을 느꼈다. 그래, 나도 태어난 순간에는 아버지도 기뻐했을 것이라고 착각한 시기도 있었다. 우연히 본 호적 등본에 잘못 적힌 내 이름 한자와 한 달이나 잘못 신고된 나의 생일을 내 손으로 정정 신청을 해 보기 전까지는.
'네가 태어났을 때, 서울대학병원 의사들이 널 얼마나 이뻐했는데.'
이름 모를 레지던트들과 의사들이 자기 딸이라고 매일 같이 안고 다녔다는 그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재밌는 이야기처럼 포장된 이 이야기 속에는 아버지조차 안아 주지 않은 아이인 내가 존재했다. 딸이란 이유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기에게 품 동냥을 주신 분들을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내가 계집애라는 이유로 병원에 찾아오지 않았으니까. 계집애 보다 회사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아버지의 고집이었다.
물론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조차, 아버지의 알 수 없는 고집이 이어졌다.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던 아들을 드디어 낳았으나 아버지는 여전히 회사에 있었다. 회사에서 엄마의 병원까지 걸어서 10분이었으나 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 사실에 애가 탄 동네 이모가 겨우 집에 있는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엄마를 만나러 가자고 이끌었다. 난 다섯 살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이모의 손을 잡고서야 겨우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짧은 다리였다. 이모가 조심스레 문을 열어 들어갔을 때도 기억도 선명하다. 엄마는 어두컴컴한 방 한가운데 새하얗게 혼자 누워있었다. 따뜻했지만 이상한 냄새와 서늘한 기운이 방에 가득했고 팔에 소름이 올라 가려웠고 목덜미가 허 했다. 누군가 당장 들어와서 내 허전한 목을 낚아채 쫓아낼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 뒤를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죽은 것처럼 누워있던 엄마는 애써 웃으며 우리 둘을 반겼다. 그리고 이내 엄마와 이모는 눈물을 흘렸다. 그때는 그 눈물의 의미를 전혀 몰랐지만, 내가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 같았다. 아는 척하는 순간 뭔가가 깨질 것 같은 조마조마한 느낌에 애써 밝은 다섯 살을 연기하며 두 분이 얘기하는 사이 방 한구석을 빙빙 돌았다. 아무것도 모른 척, 눈가가 젖어드는 것을 들키지 않게, 애써 밝게 갓 태어난 남동생을 궁금한 척하며 보고 싶다는 궁색한 말을 뱉으며 한 구석에 놓인 문을 열었다. 그 안엔 산더미처럼 쌓인 피에 젖은 기저귀들이 있었다. 방 공기를 서늘하게 메우던 냄새는 엄마가 출 산 후 내내 흘린 오로와 피냄새였고 나와 이모가 오기 전 급하게 치운 것이다. 자존심 강한 엄마는 그 전쟁터에서 홀로 살아남아 증명했다. 봐라, 나도 아들을 낳았다. 계집애만 낳는 몸이라 손가락질하던 아버지를 향해 갈라진 배를 붙잡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퇴원하는 날까지 아버지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신에게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낳아온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