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 성추행 및 폭행 트라우마 이야기니 꼭 주의 부탁드립니다.
겨우 다섯 살이, 고작 여섯 살에 저런 기억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오히려 그렇다면 당신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무엇을 위한 것인가 질문하고 말해주고 싶다. 오래된 나의 여섯 살을 지배한 '오빠'의 이야기를. 오늘의 결심이 이르기까지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미리 고백한다. 일 년 전 글을 쓰겠다고 각오하고도 나는 '오빠' 이야기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오랜 고민이 있었다. 이미 캐캐묵은 이야기로 치부될 만큼 오래된 시간이 흘렀다. 부모는 부정하거나 잊으라 말할 뿐인 대안 없는 분노와 증오 속에서 나는 한 번도 한순간도 그 일을 잊어 본 적 없다. 떠올리는 것 만으로 죽고 싶어 지던, 죽이고 싶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 뼈에 새겨진 기억이 오래된 흉터가 되었다. 분노로 글을 쓸 수 없었고 증오로 마침표는 찍기도 싫었다. 눈물 흘리며 원망하고 저주하거나, 이젠 말할 수 있다와 같은 단단한 각오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저 흐르는 세월 속에 그가 남긴 없앨 수 없는 흉터를 품고 혹여나 그가 나에게 용서를 구할 것을 기다렸다. 그래도 적어도, 미안하다고는 해야지. 그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할까. 수십 년을 죄인이 고백하지 않는 죄를 되새기며 구하지 않는 용서를 기다렸다. 그 사이 나는 세상으로부터, 내 가족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고립당했다. 결코 받을 수도 할 수도 없는 용서를 기다리면서 계속 나는 죽어가고 있다. 신은 용서를 구하는 자를 구원한다고 했던가. 나는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그의 죄를 여기에 고백한다.
3-1.
다섯 살의 나는 매일 아침 노란색 가방을 메고 매일 아침 새초롬한 얼굴로 엄마가 공들어 땋아준 머리에 핑크색 리본을 달고 유치원을 가는 두 살 터울의 언니가 부러웠다. 아침마다 언니를 따라 유치원을 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실제로 며칠 같이 등원하여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유치원에 가면 선생님이 끊임없이 칭찬해 주며 예쁜 말을 했다. 언니가 쓰다 버린 지점토를 주워서 아무렇게나 만져서 보여줘도, 한글을 다 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들은 나에게 천재라고 크면 훌륭한 조각가나 미술가가 될 거라고 칭찬했다. 천국이었다.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내가 유치원을 가고 싶어 하는지. 그것이 단순히 언니가 부러워서, 동경해서가 아니라 벗어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는 걸. 천국이 있다는 걸 가장 가깝게 믿기 위해서는 지옥에 두 발 담그면 된다. 한 발만 빠져도 이게 천국이라는 걸 지옥에 있는 사람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다섯 살 나의 지옥은 어디였을까.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오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오빠는 나이 차이가 꽤 차이가 난다. 사실은 덜 차이 나거나, 혹은 더 차이가 날 수도 있다. 학교에 일찍 입학해서, 엄마는 늘 그렇게 궁상맞게 변명했다. 당신의 잘못도 아니면서, 생일은 상황이 생기면 이랬다가 저랬다가였다. 일찍 입학하기 위해 2월이라고 했다가 6월이라고 하고 나중에는 음력이라고 하면서 다시 바뀌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잘 몰랐다. 왜냐면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오빠가 있었고 몇 살의 차이가 나든 중요한 것 하나도 없었다. 그가 나에게 지옥을 만들어 줬다는 것 외엔.
처음은 아주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놀이의 연장으로. 기억하는 처음은 우리가 빨간 벽돌집 2층으로 이사를 간 날이었다. 동네 이름은 모른다, 그런 것을 기억하기에 다섯 살은 너무 어리다. 이사 당일은 그렇듯 부모님은 바쁘고 아이들은 짐짝처럼 이리저리 날라졌다. 갓 태어난 동생, 뽀얗고 예뻐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한 언니를 각각 부모님이 데리고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이 나는 오빠의 손을 잡고 우리가 살게 될 집으로 들어왔다. 내 키의 곱절의 큰 장롱과 거울장들은 먼지가 잔뜩 묻은 감색 천에 쓰여 있고 둘둘 허리를 감았던 끈 들이 마치 오래된 서낭당의 그것들처럼 풀럭거리며 먼지를 뿜어냈다.
창문으로 햇빛이 선명하게 쏟아지는 화창한 날이었다. 나는 오빠와 함께 장승처럼 서있는 짐들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다. 여느 다섯 살처럼. 나보다 열 살은 많은 오빠가 나를 부르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린다. 오빠보다도 키가 큰 농들 사이에서 숨이 넘어가듯 웃으며 서로를 찾다 지쳐 어느새 숨바꼭질이 꼬리 잡기로 변할 때까지도 부모님도 할머니도 우리를 찾지 않았다. 청으로 된 반 바지와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그렇게 뛰어놀다 보니 어느새 이마 가장자리에 땀이 맺혔다. 웃느라 목이 아프고 가슴이 아플 정도라 결국 나는 지쳐 오빠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멈춰 서고야 놀이가 끝났다.
오빠는 나를 번쩍 들어 무등을 태워 다섯 살 나는 까치발을 해도 볼 수 없는 커다란 거울장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안경을 끼지 않던 오빠는 눈이 매우 컸다. 마치 낙타의 눈처럼 커다랗고도 동그래서 툭 치면 튀어나올 것 같았고 나는 그 눈을 부러웠다.
'왜 나는 아빠 닮아서 이렇게 눈이 작아? 나도 오빠처럼 엄마 닮았으면 눈도 크고 이뻤잖아. 바꾸고 싶어.'
내 말에 오빠의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비웃었을 수도 있고 자괴했을 수도 있다. 다섯 살의 나는 내가 한 말이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으니까. 내 말 끝에 오빠의 큰 눈에, 늘어뜨려진 서늘함은 기억난다. 땀이 식어가며 웃음소리가 사그라들었다. 오빠는 무등 태운 나의 허벅지를 꽉 쥐고 작심한 듯이 빙빙 돌았다. 방 안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오빠가 일으킨 바람을 타고 오래된 장롱을 붙잡고 있던 먼지들이 반짝거리며 날리는 것을 봤다. 왠지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손을 뻗었더니 휘청거리게 되어 오빠의 머리카락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재미있었다. 다시 웃음이 터져 허파의 산소를 다 비울 것처럼 크게 웃었다. 숨이 넘어가는 것처럼. 그리고 오빠와 함께 바닥에 자빠졌다. 거침없이 빙빙 돈 덕에 나의 눈앞에는 아직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느 틈에 구레나룻을 넘어 뒷덜미까지 땀이 흐르고 있었다. 오빠의 옆구리에 누운 채 아직도 돌고 있는 천장을 보며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오랜 침묵이 흘렀다. 지금의 나에게는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겠지만, 다섯 살 나에겐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의 시간을 갖게 만드는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오빠의 손이 내가 입고 있는 청바지 단추에 닿았다. 그리고 익숙하게 한 손으로 그 단추를 풀러 벌리고 거침없이 팬티 위를 덮쳤다. 어린 시절 했던 유치한 장난의 연장인 줄 알고 난 조금 웃었던 거 같다. 하지만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지만 영문이 모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 없었다. 그저 서늘한 오빠의 눈빛에서 지금의 상황을 읽고 이해하려고 했다. 이건 무슨 놀이인가? 그 순간 만지작 거리기만 했던 손가락이 팬티 속으로 들어왔다. 숨이 멈추고 뱃가죽이 바짝 긴장했다. 목 줄기에 흐르던 땀이 순식간에 차갑게 느껴졌다. 숨이 멈춰진 건 공기 중에 흩날리던 먼지가 내려온 걸 마셔서 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숨이 막힌 것은 오빠의 손가락이 내 성기를 파고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의 이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3-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