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홈, 삼십 대의 자취생활 이야기
"그러게 그렇게 급하게 집을 구하면 어떡해?"
"너는 예민해서 탈이야."
역시나 부모님은 나를 나무라시기 시작했다. 나도 혼란스러웠다. 분명 계약 전에는 깨끗하고 예쁜 조용한 집이었는데, 왜 이렇게 살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 걸까? 집주인께 말씀드렸더니 다음 세입자를 구하면 전세금을 돌려줄 테니 다음 세입자를 구하라고 하셨다.
"그래 구하면 되겠네. 구해서 꼭 나갈 거야."
그러나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보고 나갔지만 내가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은 그들도 맘에 들지 않은 게 인지상정이었다. 내가 집을 볼 때와는 달리 사람들은 집을 볼 때 심하게 신중했다. 어른들 두 명과 함께 온 팀도 있었고, 직접 불을 껐다 켰다, 물을 내렸다 올렸다, 옷장을 열었다 닫았다 하기도 했다. 소음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벽을 두드리기도 했으며 심지어 어떤 분은 임장 일지 같은 것을 작성하면서 꼼꼼하게 집을 체크했다. 왜 나는 그렇게 집을 보지 못했나 싶으면서도 다음번에는 나도 이렇게 집을 봐야겠다고 인생에서 큰 공부를 했다. 그리고 다음 세입자는 3달 동안 구해지지 못했다.
"못 나갈 것 같아요. 다음 세입자가 안 구해져서요."
회사 분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던 그때 전화 한 통이 왔다. 세입자가 구해졌다는 전화였다. 1월 1일 자로 나가도 좋으니 그렇게 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집주인의 새로운 계약 복비는 내가 내야 했다. 내가 계약을 파기했기 때문이다. 손해는 컸지만 그보다도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의 전세 상한선은 맨 처음 5000만 원에서 1억 2천만 원으로 높아졌고, 건물과 건물 사이가 멀고 새시가 제대로 되어있는 조용한 오피스텔 집을 원했다. 이제는 지역 인프라도 중요한 요소로 생각됐기 때문에 골목이 으슥한 김포공항 바로 앞보다는 9호선, 공항철도의 더블역세권에,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신도시인 마곡이나 마곡나루를 후보지로 세웠다. 물론 여기는 내가 원래 찾던 지역보다 더 비쌌다. 대출이자를 감안했을 때 1억 2천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은 시세가 주로 1억 6천-8천에 형성되어 있었다. (당시 시세로) 원래 살던 집에서 나오더라도 문제는 내가 원하는 집을 내가 원하는 가격에 구할 수 있느냐였다.
"없어요. 1억대에 어떻게 여기 오피스텔을 구해요. 1억 6천이나 8천은 줘야 돼요."
우선 부동산 플랫폼부터 바꿨다. 직방은 허위매물들이 너무 많았던 걸 직접 체감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추천으로 네이버 부동산을 메인으로 삼았다. 예전에 올라왔던 계약이 완료된 내용도 볼 수 있어서 네이버 부동산으로 매물을 검색해본 결과 전세 1억 6천,7천 인 매물들 사이에서 가끔씩 나오는 1억 정도의 매물들이 보였다. 이건 뭐지..? 왜 이 매물은 이렇게 싼 거지? 융자가 많은가? 눌러보면 무융자라고 쓰여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분양 초기에 세입자를 빨리 구하기 위해서 전세가 설정을 엄청나게 싸게 했는데, 1년에 전세금 5% 상한 제한에 걸린 매물들은 현재 3-4년 차에도 전세가가 1억 정도밖에 안나가게 된 것이었다.
이거다. 이거면 나도 마곡나루에 오피스텔을 1억 정도에 들어갈 수 있겠다. 운만 따라준다면. 이 날부터 나는 한 시간에 한 번씩 네이버 부동산에 들어가 전세매물을 새로고침하며 혹시나 저렴하게 나온 무융자 전세가 없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이런 매물이 쉽게 나오지도 않았다. 혹여나 어쩌다 나오게 되면 매물이 나오기 전부터 보여주기로 약속한 사람이 줄을 서 있으니 그 차례가 끝나고 보여준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근무시간에도 전셋집을 얻기 위해 줄 서서 다 같이 구경하니 시간 맞춰 나오라는 전화도 받았었고, 혹은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하겠다고 결정했다는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어떤 날은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집에서 출발해서 부동산으로 달려갔는데, 나보다 집이 가까웠던 사람이었는지 1분 먼저 온 앞에 여자분이 계약을 하기로 했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일들을 2-3달 정도 겪다 보니 그렇게 나는 내가 원하는 집에 영영 들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