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3일 차, 남해 바래길 6코스를 걷다
단식 3일 차 아침이 밝았다. 몸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배 속이 텅 비니 호흡이 드나들고, 물이 들어가고, 안에서 장내균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내 몸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내 몸과 교신하는 기분이다.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무언가 친구가 하나 새로 생긴 기분이다. 친구의 컨디션이 어떤지, 기분은 어떤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신경 쓰는 것처럼 내 몸과 새로 사귀고 있는 느낌? 나에게는 몸이라는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이 새로운 친구는 천재다. 매뉴얼이나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몸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제가 할 일을 알아서 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 경이롭고, 복잡하며, 완벽해서 나는 손도 하나 까딱 할 필요가 없다. 상처가 나도 자연복구 시스템을 돌려 치유를 하고, 복잡한 호흡과 소화과정을 알아서 돌린다. 내가 할 일이란 그저 그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몸에 이로운 채소와 과일, 가공하지 않은 천연식품, 미네랄과 소금, 영양소가 풍부한 식단을 먹고, 스트레스나 무리한 일은 피하고 숙면을 취해주는 것이다. 그것만 해주어도 몸은 아주 부지런히 내가 자는 동안에도 똑똑하게 제 할 일을 한다.
또 이 친구는 과묵한 편이다. 친구가 어떤 상태인지 묻고 주의 깊게 살피며 대화하지 않으면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다. 힘들거나 아픈 곳이 있어도 내가 바쁘게 일하거나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무심하게 내버려 두면 보채거나 따지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할 일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병이 난다. 그 병은 몸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무심하게 방치한 결과다. 이 친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주자주 대화를 나누고, 상태를 물어봐주는 것이 좋다.
오늘 아침도 나는 사과당근주스로 이 친구를 행복하게 해 주며 상태를 묻고,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단식하느라 힘들지는 않은지, 그동안 수많은 음식물들을 소화시키느라 고생했는데 조금이나마 휴가의 시간을 가지니 기분이 어떤지 등을 물었다. 그러자 이 친구는 역시 과묵하게 쉬지 않고, 내 몸에 쌓여있던 노폐물, 독소, 죽은 세포 등을 청소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참 부지런하고 믿음직한 친구다.
오늘은 이 친구와 함께 남해 바래길 6코스(죽방멸치길)를 걷기로 했다. 이 길은 독일마을 근처의 물건마을에서 시작해 지족어촌이 있는 곳까지 이어지는 약 9.9km의 예쁜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며 내 몸친구가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 좋은 공기와 기분 좋은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다.
버스를 타고 독일마을 정류장에 내려 물건리 방조 어부림으로 걸어내려 갔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집들과 바다, 그리고 그 바다와 마을을 잇는 커다란 나무들이 아름답게 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방조 어부림은 물건마을 주민들이 억센 바닷바람과 파도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한그루 두 그루 나무를 심으며 생겨나게 된 숲이다. 나무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서서 겨울과 봄 사이 훈훈한 바닷바람을 즐기며 자유롭게 쉬고 있었다. 짧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숲길이 었다.
남해는 참 아름다운 곳이다.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 순수하게 거기 원래 있었던 마냥 존재하고 있다. 제주의 올레길도 아름답지만 너무나 상업화되고 개발되어 자연 본연의 순수함이 퇴색되고 있다고 느꼈는데 남해는 그 순수함이 남아있다. 작은 마을과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 밭에서 시금치를 따는 사람들,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와 나무들, 둘레둘레 굽이굽이 이어지는 마을 길들, 밭에서 풀을 뜯어먹는 깜장이 염소와 아기 염소, 길바닥에 떨어진 꽃잎과 바람에 나부끼는 대나무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의 윤슬과 뺨을 스치는 봄바람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하게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 배가 비니, 눈이 맑아진다. 또렷하고 청명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남해의 자연.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예쁜 마을.
전도어촌마을 즈음 오니 나의 친구가 신호를 보낸다.
"나 조금 힘든데 쉬는 게 어때?"
머리는 '길이 아름다우니 조금 더 걷자'고 말하지만 몸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10km 14000보가 지금 이 친구의 컨디션에는 딱 좋은 산책인 듯싶다.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카카오 택시를 부르고 몸 친구에게 휴식을 준다. 그러자 친구가 기뻐하는 것이 느껴진다. 몸친구에게 나직하게 속삭여준다.
"고마워 친구야. 네가 조용히 네 할 일을 해 준 덕분에 진짜 예쁜 풍경 많이 봤다. 너도 즐거웠니?"
과묵한 친구에게 물으며 종아리도 주물러주고, 목도 돌려주며 짧지만 달콤한 휴식의 시간을 즐긴다. 택시를 타고 단식원으로 돌아와 따뜻한 황토 바닥에 누우니 온몸의 세포가 찌릿찌릿 노곤노곤 행복하다. 이곳이 천국인가 싶을 정도로 좋다. 아, 행복하다. 단식원에 와서는 참 작은 것 하나에도 행복을 느낀다.
슬쩍 잠이 들뻔했는데 핸드폰이 울려 단식원 강당으로 내려가 오늘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단식원 실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유튜브에 올리실 인터뷰를 요청하셔서 영상도 촬영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단식원을 찾는데 이 단식원은 나처럼 건강한 사람도 오지만 주로 병이 깊거나 아픈 사람들도 많은 듯했다. 그리고 실장님은 자신의 경험과 이곳에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이 힘들면 병이 나더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정말 그렇다. 아무리 라면이나 안 좋은 음식을 매일 먹어도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면 병에 안 걸리지만, 가공식품이나 라면도 일절 안 먹고 건강한 것을 챙겨 먹어도 마음이 힘들고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으면 병에 걸린다. 그것이 몸의 이치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이 단순히 기능적으로 활동한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몸은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나의 몸친구에게 그동안 어떤 친구였을까. 그리고 내 마음에게는 어떤 주인이었을까.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내가 단식을 하며 새로 사귀게 된 몸친구. 이 친구에게는 앞으로 더 많은 관심을 주고,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다. 그리고 이 친구와 아주 깊게 소통하며 사귀고 싶다. 되도록이면 이 몸친구가 좋아하는 건강하고 깨끗한 음식을 먹여주고, 좋은 공기와 햇살을 즐기며 산책을 시켜주자. 그리고 행복하게 해 주자.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기분과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받으면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 잠시 멈춰서 상황을 알아차리고, 그만할 수 있는 것이면 하지 않는다. 타인의 말이나 행동, 외부 환경이나 사회의 잣대에 나를 맞추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있는 그대로 놓아준다. 나의 기분이나 감정의 상태를 내가 아닌 것이 쥐고 흔들지 않도록 내가 주인이 되어 통제한다. 내가 타고난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 나를 완전히 실현하며 산다.
단식 3일차,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많은 생각을 한 보람찬 하루였다. 단식원에서 나가더라도 이 다짐을 이어나가고 싶다.